여권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백지화 …추측·관측 난무
기초·광역 지자체 공천 앞두고 살생부 작성 소문 나돌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백지화할 의사를 드러내면서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의 기초선거에 대한 공천권 유지안을 밝히자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에 대한 각종 추측과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신당 창당 때문에 새누리당이 기초선거에 대한 공천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이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공천지역을 줄이는 대신 전략공천 지역을 늘릴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미 정치권 일부에서는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지자체로 분류되는 곳은 새누리당이 전략공천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이 공천유지 방침을 고집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권 소식통들은 “이번 공천안 유지의 핵심은 MB맨 색깔을 가진 지자체장들을 교체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지방선거 공천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에서는 “새누리당이 광역을 제외한 기초지자체 공천을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이 돌기도 했다. 최근에는 “새누리당이 기초와 광역 모두 공천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며 공천안 유지가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개혁특위 활동 핵심 현안이 되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와 관련해 위헌문제와 돈선거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다음 주 중에 의원총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당론을 결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정당공천 폐지 반대로 가닥 잡았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새누리당 위원들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의 문제들을 면밀하고 신중하게 살피지 못했다”면서 “여야 모두 국민에게 솔직히 이해를 구하고 실천 가능한 정치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오는 22일 의원총회를 열고 기초선거 정당공천 유지를 당론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공천유지 복잡한 속내
새누리당의 입장 변화는 당내 반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내부 여론조사에서 기초의원을 제외한 그룹에서 반대 여론이 크게 앞섰다. 의원들은 정당공천이 폐지될 경우 지역조직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기초단체장들과 의원들의 성향이 맞지 않으면 지역 행정에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선공약 파기’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당공천 폐지는 어떤 핑계로도 번복할 수 없는 국민적 결의이며 약속”이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 약속을 깨면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약속을 여당이 깨고 있음에도 묵묵부답"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공격했다.
민주당이 공천문제에 예민한 까닭은 텃밭인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의 위력이 거세질 경우 정당 대결 구도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인물론으로 끌고 가야 승부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물론을 내세워야 민주당이 인지도에서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공천과 관련해 야권의 입장은 엇갈린다. 정의당은 새누리당을 옹호하고 나서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공천비리 근절, 중앙당 선거개입, 거대양당의 지역독점 체제와 정당공천제와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대선공약을 번복한, 뒤늦은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옹호했다.
현재 오가는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새누리당이 지방선거 공천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복수의 정치권 소식통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여권은 이미 일부 공천대상자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권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새누리당이 공천 작업을 염두에 둔 여러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아직 공천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 공천에 핵심역할을 할지는 대략 정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 그리고 홍문종 의원 등이 지방선거 공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그림이다. 이 소식통의 전언대로라면 친박계 핵심과 가까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공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형평성을 고려해 비박계 인사들과 비주류 친박계 인사들도 일부 포함되겠지만 주요 지역은 친박계 핵심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공천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를 두고 “전 정권 인사들 즉, 친이계 지자체장들을 물갈이하는 것이 향후 지방선거 공천의 핵심 아니냐”는 추측도 일부에서 나온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핵심부에서 친이계 지자체장들에 대한 교체 조짐을 보이면서 반발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친이계 진영에서는 “친박계 인사들 위주로 공천을 하게 되면 당의 분열을 가져 올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친이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 의원들이 친이계 인맥청산을 위해 공천을 앞두고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도는 상황이다.

친박-비박 공천 쟁탈전 시작?
새누리당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공천을 하게 될 경우 가장 큰 난관은 내부 계파간 갈등이다.
친박과 비주류의 갈등은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열릴 계획인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갈등을 빚은 당협위원장은 당대표 투표를 하는 대의원을 지명하는 것은 물론 지방선거에서 후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어 친박과 비주류 모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여기에 하반기 국회의장단 교체기도 맞물려 있어 이를 차지하기 위한 중진 의원들의 손익계산도 분주히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 최고 핵심 서청원 의원과 친이명박계 대표 격인 이재오 의원이 부딪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친박계와 친이계의 갈등이 벌써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이 의원은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의원단의 당협위원장 만찬에 불참했다. 친이계인 정두언 의원도 불참했다. 지난 8일 저녁 열린 상임고문단 만찬에도 친이계로 분류되는 강재섭·김형오 고문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친박이 주도하는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불만을 트위터를 통해 털어 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중국 법가의 고서인 ‘한비자’ 10과편의 고사를 인용해 ‘행소충 즉대충지적야’(行小忠 則大忠之賊也)라고 적었다. ‘작은 충성을 하는 것이 곧 큰 충성의 적이 된다’는 뜻이다. 주군의 입맛에만 맞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부하가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전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자신의 개헌 논의 요구를 정면 반박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선 서 의원과 친박계 핵심을 겨낭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에도 친박계 핵심 인사인 홍문종 사무총장이 이종춘 전 한보그룹 사장을 서울 강동을 당협위원장으로 낙점하려고 하자 친이계로 분류되는 김성태 서울시당위원장이 반발하고 나서는 바람에 난항을 겪었다. 김 위원장은 친김무성계로도 분류되는 인사인데, 이 일은 최근 청와대가 “김무성 의원을 내리고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당을 개편하려 한다”는 소문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또 서울 중구 당협위원장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주류 측은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을 임명하려고 했지만 비주류 측은 나경원 전 의원을 지지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벤트식 개각은 없다”며 직접 선을 긋고 나선 것을 두고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당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고 입을 모은다.
황우여 대표는 시무식에서 “우리는 정체된 보수가 아니라 끊임없는 쇄신과 개혁을 해나가는 개혁적 보수를 지향한다”면서 “당의 이념과 가치를 국민에게 분명히 알리고 지켜서 국민의 사랑과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친박계와 비박계가 쇄신과 개혁을 명분으로 지방선거 전 양측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방선거 후보 선정과 공천문제 등을 앞두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미리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갈등의 시작이 아니라 타협을 위한 신경전이라는 분석이 많다.
새누리 무리수 비판도
새누리당이 공천제도를 유지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악재로 작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공천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심이 선거에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공천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조짐을 보이자 야권도 약속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박기춘 전 사무총장(남양주을)은 지난해 11월 28일 “기초선거정당공천제 폐지를 포함해서 지방선거제도의 혁신 없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발전정책 또한 그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장은 이날 오전 열린 ‘고위정책-약속 살리기’ 연석회의에서 “박근혜정부의 상향식 지역발전정책이 바로 음식이라면 이를 담아낼 그릇이 바로 지방선거제도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야권의 한 인사도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공약을 통해 기초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면서 “심지어 보궐선거에도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던 새누리당이 다시 지방선거에 정당공천을 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는 민주당의 행보와 배치된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당원투표를 거쳐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야권이 개혁에 앞장서는 마당에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기초지방선거 공천제를 유지하는 내용의 제도개편안을 내놓은 것은 결국 권력 강화를 위해 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민주당 내부에서 최근 공천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새누리당이 공천제도를 유지할 경우 민주당도 공천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당원투표를 통해 공천을 없애기로 방향을 정한 이상 이를 번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편 새누리당이 친박계 핵심과 연결된 이들을 중심으로 공천을 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의원 등이 공천에서 주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면서 친박계 핵심에 줄을 대려는 예비 후보들이 늘고 있다.
예컨대 경북 모 지역구 친박계 의원의 경우 벌써부터 특정 인사에게 공천을 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자신이 염두에 둔 지방선거 예비 후보와 자주 만남을 가지고 있으며 이 예비후보를 공천자로 거의 낙점한 상태여서 다른 예비 후보들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정 예비 후보와 지역구 의원이 유착돼 이미 공천에 대한 은밀한 밀월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커넥션이 감지되는 지역을 살펴보면 대부분 친박 핵심부와 선이 닿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공천과 관련해 공천 특혜 의혹, 공천 장사 의혹 등 각종 구설수에 다시 오르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망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이명박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친박계의 움직임이 ‘패거리정치’ 모드로 흐를 조짐을 보이면서 비박계와 친이계 등 비주류 예비후보들 중 일부는 안철수 신당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과거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안산시장에 당선됐던 박주원 전 안산시장이 대표적이다. 안 전 시장은 새누리당을 떠나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기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시장 외에도 새누리당을 떠나는 이들은 더 나올 전망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현재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지만 정치권의 유력인사들 중 일부가 안철수 신당으로 합류하면 여야 예비후보들의 신당합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구태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 지지도는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