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 감독 박지성을 마지막 퍼즐로 지목…대표팀 위기 인정
박지성 거부의사에도 일방적 복귀 강요…묵묵부답으로 일관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축구의 새 역사를 써왔던 박지성에게 홍명보 감독이 다시 러브콜을 보내면서 축구대표팀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월드컵을 5개월 여 남긴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박지성을 거론하면서 후폭풍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아직 박지성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속내가 축구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산소탱크’ 박지성은 그간 축구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왔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하며 세계적 축구스타로 자리매김한 그는 해외팀에서 뛰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축구대표팀의 중심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2011년 아시안컵 출전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하며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우선 홍 감독은 지난 8일 브라질 전지훈련을 앞두고 “대표팀 복귀 문제에 대해 서로 부담 없이 한 번은 만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박지성이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소식은 전해졌지만 내가 직접 만나서 들은 것은 아닌 만큼 만나서 생각을 들어볼 것”이라고 운을 띄운 상태다.
또 그는 대면 시점에 대해 “2월에 대표팀이 그리스를 상대로 원정 평가전을 치르는 만큼 그때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성 선수에 대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서로 간에 부담이 상당히 갈 것으로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또 허 부회장은 “여러 가지 매스컴도 있고 팬들의 기대도 있고 박지성 선수로서는 지금 현재 상태에서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여태까지 쌓아오고 그동안 잘해왔다. 4강도 올라가고 16강도 올라가고 그랬는데 혹시라도 누가 된다면 박지성 선수로서는 상당히 부담 가는 일이다. 그런 점을 곰곰이 생각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박지성 선수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둘이서 만나서 얘기를 해 본다면 좋은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비교적 긍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다만 박지성은 지난해 6월 국내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표팀 복귀에 대해 “홍 감독이 요구하더라도 대표팀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복귀의사가 없음을 못 박은 상태다. 또 은퇴선언 이후 수차례 대표팀 복귀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NO’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혀 복귀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감독이 요구하더라도
대표팀에 안 간다”
그나마 나이가 많은 이근호(29·상무)는 아직 월드컵 경험이 없고 골키퍼 정성룡(29·수원)은 최근 김승규(24·수원)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형상이다. 결국 대부분 주전급 맴버중 월드컵 출전 경험은 기성용(25·선덜랜드), 이청용(26·볼턴), 정성룡 정도 갖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청용과 구자철(25·볼프스부르크)이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 선수단 내에서 구심점이 되기에는 시기상조다.
반면 박지성은 이미 3번의 월드컵(2002, 2006, 2010)을 경험했고 PSV, 맨체스터 유나이티그 등 메이저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그 경험만으로도 선수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박지성의 실력과 성품은 홍 감독이 선수단을 이끄는 데 있어 더욱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경험이 적은 젊은 선수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박지성이 기량과 실력면에서 예전만 못하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 등 본선 무대에서 만나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 박지성이 올 시즌 친정팀인 에인트호번으로 복귀한 이후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선보였다.
안톤 두 사트니에 신임 축구대표팀 코치도 지난 9일 “2주 전 네덜란드에서 오베르마스 아약스 기술이사를 만났는데 ‘박지성을 왜 안 데려왔느냐’고 농담을 하더라”며 “박지성은 최근 몇 달 간 부상을 겪었지만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홍 감독은 박지성을 ‘마지막퍼즐’로 점찍으면서 그간 “선수가 원하지 않는다면 없다”고 선을 그었던 입장과 상반된 모습을 취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의 발언
‘묘수가 아닌 악수’
이번 홍 감독의 발언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박지성이 대표팀에 필요한 사정은 이해해도 접근방식에서 묘수가 아닌 악수가 되어 버렸다는 것.
홍 감독은 대표팀 감독 부임 초기에는 바빠서 박지성 문제를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유럽파 점검을 위한 해외출장이나 전화 등으로 사전에 박지성의 의중을 물어봤어야 했다. 특히 박지성에 대한 배려나 팀 분위기 차원에서 되도록 일을 조용히 진행했어야 했다.
박지성의 의사를 타진하고 동의하에 추진했다면 축구대표팀에게는 묘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홍 감독은 박지성과 사전 대화 없이 언론에 그의 필요성을 먼저 흘리면서 대표팀, 박지성 모두 큰 부담을 떠 않게 됐다.
축구대표팀은 그간 박지성 없이도 잘 버텨왔다. 하지만 홍 감독이 월드컵을 5개월여 남긴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박지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내면서 박지성이 없이 쌓아왔던 대표팀의 경쟁력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또 ‘제2의 박지성’ 등장에 대한 기대감도 원조의 출현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한국 축구는 박지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3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또 박지성이 없으면 대표팀의 경쟁력이 낮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박지성 역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에 떠밀려 이를 거부할 경우 난처한 입장에 처해졌다. 대표팀이 필요로 하고 여론이 원하는데 이를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박지성의 복귀가 팀 중심을 잡을 수 있지만 팀 분위기에 미세한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박지성의 현 포지션상 손흥민(22·레버쿠젠), 구차철, 이근호, 김보경(24· 카디프시티) 중 월드컵에 못 갈 수 있는 선수가 나오게 돼 탈락한 선수는 상실감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선수들 간의 갈등으로 팀 분위기를 망칠 수 있어 하나의 팀을 강조하는 홍 감독의 철학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복귀가능성 열어둔 채
박지성의 결정만 남아
현 상황에서 박지성의 복귀는 호불호를 가리기는 힘들 정도로 확실한 답은 없다. 다만 박지성이 결단을 내린다면 대표팀의 전력 상승에 보탬이 된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지성이 자신이 아닌 대표팀 더 나아가 후배들의 성장과 한국축구을 위해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던 약속을 지킨다 해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
더욱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가 은퇴 당시 “지성이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무릎에 물이 찬다. 대표팀 경기에 다녀와서 열흘 넘게 못 뛴 적도 있다”고 호소했던 만큼 개인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또 한국축구가 박지성 없이 살아가는 성장통을 경험해야 진정한 세대교체와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선택은 박지성에게 돌아갔다. 현재로서는 복귀가능성을 열어둔 채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결정을 내리기까지 심사숙고하며 큰 중압감을 견뎌내야 했던 노고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이에 대해 축구해설위원으로 첫발을 내딛은 이영표는 “내 경우는 4년 동안 고민하고 대표팀 은퇴를 결심한 것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박지성도 긴 시간 동안 고민했을 것”이라며 “홍명보 감독이나 박지성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리건 그 결정은 한국 축구에 있어 최고의 결정이 될 것이다. 그 결정에 모두가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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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