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검찰이 한 중견 건설사 분양사기 사건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당 회사는 참여정부 시절 승승장구하던 르메이에르 회사다. 정경태 회장은 지난해 11월 5일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혐의는 분양대금과 차입한 대출금 500억여 원을 가로채고 직원들 임금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은 정 회장이 민주당 전직 국회의원 친형을 부회장으로 임명하고 자신의 학력마저 거짓으로 위장해 정치권 인맥과 친분을 과시한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중진이자 호남 출신인 P, L, C 전 현직의원을 비롯해 수도권 중진급 의원인 J, M씨가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 “민주당 중진급 L, P, C, J, M 의원 거론”
- 중앙지검 조사부 르메이르 건설 회장 구속 파장

아울러 여당 역시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발 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경우 ‘야당 죽이기 논란’과 맞물려 ‘형평성 차원’에서 여당에게도 불똥이 튀었던 것이 과거 검찰의 정치권 수사에 대한 전형적인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르메이에르 건설사 정권 교체에 ‘몰락의 길’
특히 정 회장이 구속된 이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쪽은 민주당이다. 정 회장의 고향이 광주인데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종로타운 5층에 위치한 ‘재경광주서중·일고총동창회’ 사무실은 정 회장이 기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정 회장이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주장이 거짓이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고교 동문들마저 ‘황당’하게 만들었다. 학연·지연을 이용해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한 배경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한 2010년에 르메이에르 부회장으로 채수찬 전 민주당 국회의원의 친형인 채수일 전 전북 정무부지사가 재직한 점 역시 야당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채 전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동영 전 국회의원 지역구를 물려받아 압도적인 표로 당선된 인사다. 정 전 의원의 고교 후배이자 친형 채 전 정무부지사는 정 전 의원과 친구로 알려질 만큼 친분이 깊다. 한 마디로 전직 국회의원 친형을 통해 채 전 의원과 친분을 맺고 민주당 중진급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게 아니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정 회장의 민주당 인사들과 인연은 함께 근무했던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평소 정 회장은 공석이건 사석이건 상관없이 열린우리당 시절 고위직 출신인 L 전 의원과의 인연을 강조했고 임원회의 자리에서도 “민주당 중진 인사인 J씨, C 의원과 영원히 함께 갈 사이다”, “그동안 선거때마다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는데 어려울 때 모른 척 하겠냐”는 등 수차례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L 전 의원은 정 회장이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VIP 회원권(5천만원 상당)을 무료로 제공받아 최근까지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L 전 의원의 처남인 K씨는 한때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던 르메이에르 자회사인 범아자원개발의 대표를 지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르메이에르가 잘 나가기 시작했던 2002년 정 회장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협회 회장은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그리고 2003년에는 미국 헤리티지재단 이사를 맡는 등 대외적인 활동도 넓혀갔다. 현재 배구협회 회장은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이고 부회장중에는 정옥임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하산 의혹이 일지 않을 수 없다.
‘학력’까지 속여 정치권 인맥쌓기?
정 회장의 부침은 르메이에르 회사 연혁을 봐도 민주당 정권과 부침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메이에르는 1988년 부동산개발 컨설팅 업체로 출발했다. 1996년 (주)르메이에르 건설사를 설립하기 전까지 전국적으로 눈에 띄는 사업은 일산과 신촌, 역삼동에 주상복합오피스텔을 세운 게 전부였다.
하지만 1997년도에 들어서면서 사업이 본격궤도에 오르기 시작, 2000년도에 경남지역 도로관리소 사업, 사당동 재건축아파트인 르메이에르 타운 조성, 강남 노란자위 땅에 르메이에르 강남타운 조성, 2001년 대한체육회 선수촌 신축공사, 한국도로공사 구미지사 부속동 신축 등 공공기관 사업까지 따기 시작했다.
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남산공원 남측순환도로 주차시설 공사,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토지 매입, 동대문 장안동 재건축 아파트 공사, 호주 호라이즌 골프리조트 인수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도맡아 했다. 특히 2007년도에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완공하고 자회사 ‘범아자원개발’을 설립해 이라크 쿠르드지역 5억 배럴 석유광구를 확보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 당시 매출액만 2000억원에 직원수도 건설사 직원들만 450여명으로 ‘잘나가는’ 중견기업이었다. 직원들 평균 월급이 당시 440만원으로 삼성전자 직원(407만원)보다 높았다.
정 회장은 참여정부 임기말에는 미군 부대 시설을 보수 사업까지 맡으면서 정 회장은 2008년 2월에 국방부로부터 감사패와 감사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선 2007년 2월 이후 정 회장과 회사는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사 연혁에도 2009년 4월 르메이에르 스타플러스(주) 인천대교 운영관리 계약을 마지막으로 사업시행 자체가 없다.
정치권과 검찰은 2003년 7월 종로타운 사업의 시작인 ‘피맛골’ 토지 매입한 과정과 2007년 11월 이라크 쿠르드 지역 유전 사업 참여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 사업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 시작한 종로타운 사업의 경우 500억원 대 분양사기혐의로 정 회장은 2013년 8월 고소를 당해 검찰에 구속됐다.
특히 종로타운이 위치한 서울 청진동 일대가 본래 현대자동차 소유의 부지였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노른자위 땅으로 1980년대 초반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선정된 이후 대형 건설사들이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였지만 피맛골 보전, 유물 발굴 문제로 누구도 쉽게 차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중견 건설사인 르메이에르가 2004년 해당 지역에 종로타운을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 권력의 핵심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뿐만 아니다. 이라크 쿠르드 광구 유전개발 사업의 경우 당시 한국석유공사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이 쿠르드 지역에서 5억배럴 가량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탐사 광구를 확보할 당시만해도 노다지 사업으로 여겨졌다. 당시 르메이에르 자회사인 범아자원개발은 해당 컨소시엄의 9.5%의 지분을 차지하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대성산업, 삼천리, 등 에너지 사업 경험을 지니고 있는 여타 참여사와는 달리 르메이에르는 석유 사업과 전혀 무관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업은 참여정부시절 검찰에서 ‘해외유전개발사업 로비의혹’사건 중 한 지역이다.
2008년 9월 검찰은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인 최규선 유아이에너지 대표를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최씨를 상대로 이라크 지역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회삿돈을 빼돌려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업성을 부풀려 투자금을 끌어들이거나 허위공시 등을 통해 주가를 조작했는지 여부를 추궁했다. 아울러 검찰은 또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컨소시엄에 포함되기 위해 정치권 등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조사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 건립 사업 역시 정 회장이 큰 기대 속에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이로 인해 르메이에르 임직원들은 2011년부터 3년간 임금체불이 72억원에 달했다. 전 직원인 이모씨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도와주세요, 3년간의 임금 체불...싸워보렵니다”의 제하의 글을 작년 10월에 올려 화제를 낳았다.
이씨는 정 회장이 임금체불로 불만에 찬 임직원들에게 “동계 올림픽이 평창에서 개최되기로 결정만 되면 선수촌 아파트에 대한 시행권을 따게 되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 “이라크 석유 광구에 투자를 해서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핑계로 임금 지급을 미뤄왔다고 증언했다.
이어 이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확정된 후에 투자자에게 사무실을 내줬지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서류마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유전 사업 역시 이라크 광구에서 유전이 발견됐다는 말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에 따르면 결국 임직원들 다수는 임금체불에, 수억원대 대출 그리고 스포츠회원권 강매로 시달리다 못해 ‘신용불량자 양산’, ‘가정파탄’, ‘돌연사’ 등을 당하는 등 막대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검찰, 정회장 검은 자금 저수지 찾기 ‘관건’
결국 정회장은 수십 억원의 임금체불에다 낮은 분양가로 분양 자금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사무실.상가 등 100호실, 피해자 118명, 피해액만 49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결국 피맛골 상인들이 평생 고생하며 모은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임금을 체불 당한 전직 임직원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로 인해 분양사기 피해자들과 르메이에르 전직 임직원일동은 정 회장이 구속된 이후 정치권 로비를 위한 비자금 조성 의혹, 비자금 조성 규모 등 돈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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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