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진 고미술품 “감정평가, 객관성 실종됐다”
부풀려진 고미술품 “감정평가, 객관성 실종됐다”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1-13 10:47
  • 승인 2014.01.13 10:47
  • 호수 1028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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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현주소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한국미술시장이 위기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대미술시장은 물론 고미술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압류품들이 경매에서 완판되면서 가라앉은 분위기가 살짝 뜨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고 미술품을 포함한 일반 미술품들은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업 비자금 수사에 미술품들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한 고미술품 등의 대중화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일요서울]에서는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을 진단해보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분석해 봤다.

한국고미술협회 영향력 너무 커 문제

상인, 학자 간 의견 다르고 비리도 많아

“요즘 우리나라 미술 시장은 침체기다. 오랫동안 갤러리를 운영했지만 이렇게까지 나빠 보기는 처음이다” 20년 간 갤러리를 운영해온 한 인사가 표현한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현주소다. 미술품은 경제상황과 상관없이 꾸준히 거래돼온 인기품목이다.

하지만 2007년 호황기 이후 최근의 상황은 심각하다. 그렇다면 미술시장의 불황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의 진위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가지 미술품을 놓고도 진위문제는 물론 가격도 다르게 책정된다. 파벌, 소속 협회, 신분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미술시장 한 원로는 “위작들이 헐값에 거래되다보니 오히려 진품을 찾는 게 쉽지 않을 정도다”라고 표현했다.현대미술품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고미술품들의 경우는 감정가를 전적으로 감정사들에게 의존한다. 각종 비리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판매자와 감정사가 의기투합하면 1000만원짜리 도자기가 1억도 될 수 있고 10억도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이러한 사기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두 번째는 부풀려진 가격이 문제다. 작품의 진위 파악도 어려운데 작품이나 작가의 명성보다 부풀려진 가격에 거래되는 작품들이 많았다.

실제 화랑들이 수집가들에게 미술품을 판매할 때 무턱대고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정작 수집가들이 미술품을 되팔 때는 구매가의 반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화랑들에게 이렇게 덤터기를 쓴 컬렉터들은 미술시장에서 발길을 끊었다.

한국 미술시장

경매가 이끌어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알고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결국 시장은 침체기에 빠졌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미술시장의 성장은 경매 도입과 맞물렸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이뤄진 경매는 모두 77건에 총 출품작은 1만 2천여 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시장은 전년도에 비해 170억 가량 하락했음에도 720억 748만 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경제침체 속에서도 700억 원이 넘는 낙찰 총액을 기록한 것은 서울 옥션이 홍콩에 진출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한 것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올해 경매 최고가에 거래된 미술품은 지난달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낙찰된 리히텐슈타인의 ‘토마토와 추상’으로 26억여 원에 팔렸다. 중국 작가 산유의 ‘하얀 꽃병에 분홍장미’가 15억여 원으로 뒤를 이었다. 국내 작가 가운데 호당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는 박수근 화백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작품들로 2억9천여만원을 기록하며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고, 대표작 '황소'로 유명한 이중섭과 김환기 화백이 그 뒤를 이었다.

감정시장 주도권 잡은

한국고미술협회

한국 미술시장에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들은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불황이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술품에 대한 감정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매시장의 기본이 되는 고미술 시장의 검증능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미술품의 진위를 검증하는 필터링 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자리 잡힌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현재 국내 고미술 시장 감정은 한국고미술협회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이 협회는 1972년 2월 협회 창립 이후 1973년부터 1985년까지 한국고미술상협회, 한국고미술상중앙회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대다수 고미술품 상인들을 중심으로 지금은 고미술품 감정업무를 하고 있다.

비리 끊이지 않고

관리·감독도 없어

문제는 이 협회가 과거부터 감정업무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미술품은 그 특성상 전문가의 육안감정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적 감정방법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연스럽게 협회의 입김이 세지기 시작했고 이를 이용해 비리가 저질러지기도 했다. 실제로 2002년 11월에는 변조품을 진품으로 감정한 혐의로 당시 회장이 구속됐다. 2007년 12월에는 돈을 받고 감정한 혐의로 감정위원이 입건됐다.

2008년 7월에는 가짜 고미술품을 진품이라고 보증하는 허위감정서를 협회로부터 발급받아 이를 골동품상에 넘긴 혐의로 감정위원이 입건된 적도 있다.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감정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역할과 지위는 막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감정업무를 관리·감독하지 않고 있다. 비리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는 셈이다. 일부 고미술품 전문가들은 협회의 감정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감정평가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어떻게 감정을 하느냐는 것이다.

동시에 감정을 사단법인인 협회에서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담당하거나 시장에 넘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반 협회에서 과학적인 기준 없이 감정사에 의해 육안으로 감정평가를 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정부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근간이 되고 있는 고미술품시장이 감정문제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데도 아직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과거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 감정제도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무산됐다.

김종춘 회장

장기 집권도 문제

한국고미술협회가 비판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김종춘 회장의 장기집권 문제다. 김 회장은 199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17년째 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다. 재계에서도 보기 힘든 장기집권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비판하기도 한다.

김 회장이 장기집권하기 위해 정관을 개정했다고 의심받기 때문이다. 개정된 현재 정관에 따르면 회장은 회장단의 추천과 이사회의 인준 그리고 총회 참석자 과반수 이상의 찬성에 의해 추대된다. 그러나 회장 추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사 선임에 협회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장기집권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김 회장은 서울 인사동에서 ‘다보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오랫동안 고미술계에서 일을 해온 터라 대표적인 ‘큰손’으로 불린다. 하지만 김 회장조차도 회장 재직 동안 강진청자박물관 유물 고가 매입 논란, 도굴된 중국 내 고구려 고분벽화의 국내 유입설 등 많은 의혹의 중심에 서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토기 등을 국가 보물로 지정해 줄 것처럼 속여 비싼 값에 팔아 치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협회 김 회장 측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국가보물로 지정되게 해주겠다며 미술품을 판매하거나 고미술품 투자 명목으로 남에게 돈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김 회장은 “2000년 초부터 고미술품 가짜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가짜로 돈을 부당하게 챙긴 사람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깨끗한 감정평가 시장

정부가 만들어 줘야

국내 미술시장 활황기를 이끌었던 고미술시장은 침체된 지 오래다. 가격도 10분의 1로 떨어진 미술품들이 수두룩하다. 중국과 북한 등지에서 고미술품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대부분 가짜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 고미술품 시장에서 가짜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상황이 어렵다보니 1억짜리 진품을 절반 이하로 할인해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고미술시장이 회복되지 않는 한 국내 미술시장도 활기를 띠기 쉽지 않다. 현대미술품이든 고미술품이든 감정이 문제다. 이제 더 이상 정부는 감정평가를 한국고미술협회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국내 미술품시장 활성화와 거래의 투명성을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감정평가 시장을 바로 잡아야 할 때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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