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시장·재활용품 처리·세차·경호 등 최대 수억 원 비리
정부 ‘관리비 비리 처벌 강화·관리지원 센터 운영’ 대책 발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은 지난 6일 서울 잠실동 A아파트 1,2,3단지와 잠실동 B아파트 단지, 삼성동 C아파트 단지 등 총 17개의 서울·경기 소재 유명 대단지 아파트의 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비리를 집중 수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각종 용역업체 선정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관리회사 임원 및 재개발조합 조합장 등 18명이 적발됐으며 그 중 9명이 구속 기소됐다.
최대 8억 원 뇌물 수수
검찰은 ‘아파트 관리의 구조적 비리에 대한 집중단속 지시’에 맞춰 서울·경기 지역의 유명 대단지 아파트 관리 비리를 집중적으로 수사한 결과 속칭 ‘랜드마크’로 불리는 유명 대단지 아파트에서의 비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잠실동, 삼성동, 암사동, 반포동의 대단지 아파트의 이권 선정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확인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잠실동 아파트 단지의 경우 관리회사가 조합장 등에게 거액의 로비를 통해 관리업체에 선정된 후 이를 보전하기 위해 광고, 세차업체 등 전 부분의 용역업체로부터 모두 8억500만 원을 챙겼다. 또 삼성동과 암사동 반포동의 아파트 단지에서도 알뜰시장, 어린이집, 휘트니스 센터 운영권 취득 및 관리업체로의 선정을 위해 최소 3000만 원부터 최대 2억2000만 원까지 로비 자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수사에서 적발된 관리 단체는 수백 개의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국내 유수의 대형 관리업체다. 이 업체는 조합장 등을 상대로 거액의 금품로비를 통해 관리업체로 선정된 후 자금 회수를 위해 각종 이권 선정의 대가로 거액을 챙겼다. 또 전문 브로커를 통해 광고, 재활용품 처리, 세차, 경호, 어린이집, 휘트니스 센터, 알뜰시장 등 아파트 내 모든 분야에서 금품로비가 범해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A아파트 단지 관리회사는 입주민과 직접 거래하는 세차 영업권을 준다는 명목으로 3000만 원을 챙기기도 했다.
95% 국비 받는
어린이집 매매 악용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의 경우 원생 확보가 매우 쉽고 운영비의 95% 이상을 국가에서 보조받아 고수익이 보장되는 구조적 특성을 악용해 고액의 권리금을 붙여 매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6000만 원의 로비를 통해 아파트 내 어린이집 운영권을 취득했으며 그 후 3억 원에 판매해 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듯 아파트 내 모든 사업이 운영권 취득을 위해 관리회사에 뇌물을 주고, 그로 인한 피해는 아파트 주민에게 돌아온 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파트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자신들의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잠실동 A아파트 주민 김모(43·여)씨는 “관리업체와 연계된 비리가 만연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 바보 같았다”라며 “그동안 업체들끼리 주고받은 뇌물 덕분에 주민들만 피해를 입었다. 억울하다. 업체들은 형사 처벌은 물론이고 주민들에게 적절한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또 다른 주민 최모(38·여)씨도 “수사 결과 드러난 아파트를 제외하고도 대다수의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법이 개정되거나 강력한 단속 조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리비 둘러싼 갈등 ‘빈번’
관리비에 대한 문제는 뇌물 비리뿐만이 아니다. 관리비를 둘러싸고 입주민과 관리회사 간의 갈등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의 총상인회는 지난 2009년 관리단이 설립된 이후 징수한 관리비의 세부내역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며 지난해 11월 4일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총상인회 관계자는 “임대료를 내지 못해 명도소송에 걸리는 상인과 관리비 체납으로 전기가 끊기는 상가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관리비 감사를 촉구했다.
지난 2012년 경기도의 어느 아파트에서는 전기료를 내지 못해 입주민들이 전기가 끊길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시 관리회사는 아파트 입주가 절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민들의 관리비로는 빈 집들의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매달 관리비를 지불해 온 입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핑계에 불과했다. 또 지난해 인천에서는 아파트 관리비 4000만 원을 빼돌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총무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렇듯 관리비를 둘러싼 횡령과 갈등은 지속적으로 있어온 문제다.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민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서울시에서는 ‘맑은 아파트 만들기’ 사업을 실행중이다. 이 사업은 관리비 절감, 정보공개를 통한 관리 투명화, 공동체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도봉구 S아파트는 전기요금계약방식을 바꾸고 형광등을 LED로 교체해 관리비를 절감했다. 창동 S아파트는 전기의 계약방식을 종합계약에서 단일계약으로 바꿔 4000여만 원의 전기요금을 절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는 공동주택 관리비 비리 근절을 위한 공동주택 관리실태 시범조사를 실시한다. 고양시청 산하 3개 구청 공무원과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상설 조사반이 공동주택 단지에 출장해 관리주체, 입주자대표회의의 공동주택관리에 따른 위반사항과 우수모법사례를 발굴하는 조사다. 이번 조사는 관리 비리 없는 투명한 아파트를 만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또 정부는 아파트 관리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오는 2015년부터 3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는 매년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아파트 공사·용역 시행 시 전자입찰제를 의무화하고 금품 수수 처벌을 기존 1년 이하 징역, 1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2년 이하 징역,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했다. 또 ‘아파트 관리제도 개선대책’도 마련토록 했다. 입주민이 아파트 공사·용역비용의 적정성 등에 대한 상담·자문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 관리 지원 센터’도 설립·운영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아파트 입주민 김모(32)씨는 “정부 정책으로 아파트 관리비 비리가 근절되길 기대한다”라며 “다시는 입주민을 돈으로 보는 업체들이 아파트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