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정·재계의 미술품 사랑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굵직한 사건·사고엔 빠짐없이 미술품이 등장했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관련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미술품만 총 550여 점이 넘는다.
오리온·대상 등 다수의 기업에서도 이 같은 논란은 법정 공방을 치를 만큼 시끄러웠다. 이 때문에 “정·재계 미술품=탈세 또는 검찰 수사”라는 공식이 당연시 된다. 그런데 미술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범(凡) 에이스침대家의 미술시장 진출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계와 미술업계·사정당국이 예사롭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술업계-재계 비자금 조성 불똥…우려 목소리
에이스침대-노블레스 “관계없다”…소문 무성 왜?
재계의 미술시장 진출은 기업의 대표적 사업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모 기업이 주력하는 사업과는 무관하게 운영되며, 모 그룹 ‘사모’가 관장으로 직접 경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 결국은 검찰 수사라는 오명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례로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와 연계된 비자금 조성 파문’이 꼽힌다.
홍 대표는 CJ ·대상·오리온 등 국내 유수 기업에 고가의 미술품을 판매하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거나 수입 금액을 회계장부에서 빠뜨리는 수법으로 법인세 수십 억 원을 탈루한 혐의로 국세청에 의해 고발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현재 홍 씨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고, 검찰도 불구속 기소로 수사를 일단락 지었지만 그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따갑다.
이런 가운데 범 에이스침대 일가의 미술품 진출 소식이 주목된다. 사실 범 에이스침대 일가의 미술품 시장 진출은 수년 전에 이뤄졌지만 관련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범 에이스침대家로 알려진 노블레스 미디어 인터내셔널(이하 노블레스)은 2011년부터 미술 전문 매거진 ‘아트 나우(artnow)’를 발행하고 있다.
노블레스는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의 사위인 명제열씨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노블레스(Noblesse)’라는 명품 월간지를 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위의 진출
장인과는 무관할까
공교롭게도 침대 사업과는 무관하게 미술품 시장에 진출했고, 오너 일가 중 사위 명 씨가 미술 시장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어 그 배경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명 대표가 노블레스 지분 30%, 부인 안명숙 씨가 30%, 그의 자녀인 혜원, 훈식이 각각 20%씩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명 대표의 부인 안씨 역시 학부에서 공예를 전공했고, 노블레스 홍보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에이스침대 일가의 미술 시장 진출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존 기업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일 때마다 드러났던 위험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계의 미술품 트라우마(과거에 겪은 고통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유사한 상황이 나타났을 때 불안해지는 증상)가 에이스침대 일가를 덮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퍼지고 있다.
에이스침대 관계자는 그러나 “노블레스와 에이스침대는 광고 기획 및 제작을 맡고 있는 것 이외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며 “아트나우를 발행하게 된 것은 기존 노블레스 독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미술이 통하는 부분이 있고, 그 수요 때문에 계속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따가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미술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미술품 거래자는 작품의 가격과 상관없이 양도소득세와 취득ㆍ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전혀 낼 필요가 없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조세원칙의 예외가 인정되는 몇 안되는 품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술품이다.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작품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팔렸는지 잘 드러나지 않고 수사기관의 추적도 그만큼 어려워 자금 세탁이나 ‘준 합법적인’ 탈세 또는 뇌물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특히 작품을 사고파는 고객과 이를 대행해주는 화랑이 손잡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상속ㆍ증여 등 재산 이동과 증식이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미술품은 부동산과는 달리 현금화가 쉽고 보유기간에 따라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어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 된다는 점, 재산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등도 음성적인 뒷거래를 원하는 이들의 ‘구미’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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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