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 부자가 5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두 부자가 주주로 머물고 있는 효성그룹의 비상장법인 공덕개발이 유상감자를 통해 자금줄을 쥐어준 덕분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총 자본 총액이 158억 원으로 그리 크지 않은 공덕개발이 500억 원 규모의 유상감자를 감당하지 못해 자본 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는가 하면 또 다른 일각은 “조석래-현준 부자가 확보한 자금이 어떻게 쓰일 것이냐”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공덕개발의 유상감자에 대한 내막을 알아봤다.
추징금 위한 결정인가 경영 승계를 위한 선택인가
무리한 자금 마련…계열사 자본잠식 우려 시선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공덕개발은 지난해 12월 24일 총 발행 주식 16만주 가운데 보통주 9만2000주(57.5%)를 유상감자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유상감자란 기업이 주식 수를 줄여 자본을 감소시키면서 해당 주식 가액의 일부를 주주에게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효성그룹이 균등 감자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인다면 조 회장 부자는 각각 387억 원, 129억 원 등 모두 516억 원가량을 지급받게 된다. 이는 또 두 부자가 회사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한 채 주당 5000원에 획득한 주식을 56만 원에 되파는 셈이 된다.
공덕개발은 효성그룹 내에서 1992년부터 20년 동안 차명 소유 방식을 통해 위장 계열사로 운영되다가 2012년 자진 신고를 통해 공정위의 경고 조치를 받고 계열사에 포함된 회사다. 현재 효성그룹이 입주한 서울 마포 효성빌딩을 소유·관리하고 있으며 효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를 발판 삼아 덩치를 키워왔다.
그런데 여기서 공덕개발의 지분을 조석래 회장이 75% (12만 주), 조현준 사장이 나머지 25%(4만 주)를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계열사를 동원해 재벌 총수 일가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웠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공덕개발의 자본 총액은 158억 원 수준에 불과해 공덕개발이 500억 원대의 유상감자를 강행하면 자본 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덕개발은 지난해 매출이 65억 원, 영업이익은 30억 원이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자본금(8억 원)과 이익잉여금(150억 원)을 합친 자본 총액은 158억 원이다.
효성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자본 총액의 3배가 넘는 금액을 감자하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거나 “보상액으로 책정된 주당 56만710원은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결국 특별한 사유가 있어 이번 유상감자가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들은 자본 잠식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상감자 계획을 밀고 나간 것일까. 업계는 조 회장 부자가 이번 감자를 통해 얻은 자금을 국세청 추징금 납부나 대출 상환 등에 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앞서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해 10월 탈세·횡령 혐의를 받아온 효성그룹에 추징금 3651억 원을 부과하면서 조 회장과 조 사장 등 경영진에게 별도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또 효성그룹과 조 회장 부자는 국세청으로부터 부과받은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등 4700여억 원을 납부했다.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은 효성 주식 218만여 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조 사장은 관계사의 주식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한 바 있다.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거액의 현금 확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이번 자금을 장남인 조 사장이 지분 매입 용도로 활용해 삼남 조현상 부사장과 후계 경쟁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두 형제는 현재 보유 지분이 각각 9%대의 비슷한 상황으로,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지분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실제로 조 회장이 비자금 조성과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두 아들은 지주회사에 해당하는 (주)효성에 대한 자사주 매입을 계속하고 있다.
불과 지난해 12월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7∼19일 장남인 조 사장은 7만8천577주를, 삼남인 조 부사장은 2만5천145주를 각각 장내 매수했다. 조 사장의 개인 지분은 9.63%에서 9.85%로 증가했고, 조 부사장의 지분은 8.99%에서 9.06%로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 사장이 후계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번에 자금을 확보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한편 당초 유상감자의 배경을 경영상의 이유라고만 밝혔던 효성그룹 측은 추징금과 관련한 부분만 어느 정도 인정했고 나머지는 모두 부정한 상태다.
효성 그룹 관계자는 “500억 원 중 35% 정도인 175억 원은 배상소득세로 납부해야 한다. 나머지 340억 원가량은 추징금과 관련된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한다. 혹은 회장 일가 개인적인 용도나 그룹 경영 차원으로 좀 더 쓰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 사장이 조 부사장과의 후계 구도 경쟁에 자금을 사용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말도 안 된다. 두 아들 사이에서 후계 구도를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전혀 의미 없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조 회장이 은퇴하게 될 때 지분을 넘겨주는 쪽이 무조건 이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라며 “단순하게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지속적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정도”라고 반박했다.
또 공덕개발이 자본 잠식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여유 자금과 운영 자금을 조달하면 충분하므로 자본 잠식 걱정은 전혀 없다”며 “자본 잠식이 언급되고 있는 재무제표는 1990년대 초반의 작성됐던 장부가가 반영돼 있다. 보유 건물의 현재 가치는 1000억 원 이상이 책정돼 있고 자본 상태 역시 좋다. 오는 20일 정도면 현재가치가 반영된 재무제표가 새롭게 작성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주당 가격이 56만 원선으로 결정된 주당 보상액이 너무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회사 마음대로 책정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외부 회계법인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결정했다”고 일축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