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의 딜레마 깨고 부자증세 ‘첫발’ 떼나
조세의 딜레마 깨고 부자증세 ‘첫발’ 떼나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4-01-06 10:26
  • 승인 2014.01.06 10:26
  • 호수 1027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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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의 종말?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정부가 지닌 과세의 화살이 서민에서 고소득층으로 일부나마 방향을 틀었다. 그것도 고액연봉자들이 속한 과세구간을 조정해 세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이는 직접적인 증세가 아니기 때문에 ‘증세 없는 복지’는 유효하다는 항변도 여전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실감 없는 공약을 지적하며 향후 증세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율 인상ㆍ세목 신설 대신 과세구간 조정해 세수 확보

지나친 감세 되돌렸을 뿐…적극적 증세라는 숙제 남겨

새해부터는 근로소득자 중 연 1억5000만~3억 원을 벌어들이는 고액연봉자 9만1000명이 최대 450만 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됐다. 소득세 최고 과표구간이 낮춰지면서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대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 과표기준 1억2000만~1억5000만 원 소득자는 평균 256만 원을, 1억5000만~3억 원 소득자는 342만 원을, 3억 원 초과 소득자는 865만 원을 추가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하면 3억 원 이상 고액연봉자 중 일부는 최고 1000만 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과표 3억 원의 경우 각종 공제를 감안하면 실제 연봉은 3억2000만~3억3000만 원에 이른다.

원래 최고소득세율을 적용받던 대상은 전체 근로소득자 1550만명중 4만여 명으로 0.26%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13만2000명으로 0.85%까지 늘어났다. 그래도 상위 1%가 채 되지 않는 범위에서 과세대상을 늘린 셈이다. 이로 인해 얻는 세수 효과는 연 3200억 원으로 현재 부족한 예산을 채우는 데 쓰일 전망이다.

“마이더스의 손은 없다”

세원을 확보하려면 세율을 직접적으로 올리거나 세목을 새로 개설해야 한다. 그렇지만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의 경우 납세자들의 저항이 큰 편이다. 반면 그동안 주어졌던 비과세 감면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비교적 거부감이 덜하다.

이번 세법 개정안이 소득세율은 건드리지 않고 과세구간을 조정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사실 세율 손대기는 각국을 막론하고 굉장히 민감한 문제로 분류된다. 게다가 현 정부는 대선 때부터 ‘증세 없는 복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공약으로 내걸어왔다. 그런 탓인지 세수 부족이 거론될 때마다 “증세는 없다”고 못박으며 배수의 진을 쳤다.

전문가들을 이번 과세구간 조정처럼 어떠한 방식으로든 계속 증세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결같이 ‘증세 없는 복지’의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일각에서는 국가재정이 7년째 적자에 처해 있는 만큼 적극적인 세수 확보 노력이 없다면 재정파탄이 올 수도 있다는 경고도 이어진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8월 연봉 3450만 원 이상인 근로소득자 434만명의 세 부담을 가중시키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며칠 만에 기준선을 연봉 5500만 원 이상인 근로소득자 205만명으로 급히 고친 수정안을 내놓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러나 수정안 역시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에만 한정돼 있어 고소득층이 아닌 서민을 겨냥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은 전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세 없는 복지확대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이라며 “처음부터 무리한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의 증세지만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이 아니라 비과세 감면 축소이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는 교묘한 논리도 조롱거리가 됐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이유를 붙이든 납세자가 내는 돈이 많아지면 증세”라며 “이는 세무학자라면 인정하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번 안은 고액연봉자를 대상으로 한 과세구간 조정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반발이 덜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오히려 세수 부족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향후 증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형국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소요되는 추가 복지재원만 5년간 135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증세로는 어림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예산이 357조7000억 원인데 반해 재정관리 적자는 25조 원을 넘는다.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500조 원의 벽을 깨며 증가하고 있으며 공공기관 부채를 합치면 1000조 원을 웃돈다. 이 교수는 “아마도 국채 누적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면 당연히 세율 인상을 고려하게 될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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