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공안통 검사’로 유명한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2차장 검사가 성추행 구설수에 올랐다. 이 차장 검사는 지난 12월 26일 중앙지검 출입기자들과 송년회장에서 3명의 여기자들에게 ‘부적절한 처신’을 해 검찰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평소 같으면 당장 옷 벗을 일이지만 검찰과 법무부는 ‘유야무야’할 분위기다. 검찰에 출입했거나 출입하고 있는 전현직 법조 기자들은 ‘잘해야 주의나 경고’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왜 이런 것일까. 야당에서 ‘사퇴하라’고 성명서까지 발표했지만 이 차장 검사는 건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진상을 알아봤다.
- 본인 ‘사과’에 검찰 “진상 조사중”, 결과는 “글쎄…”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이 차장 검사는 진보 성향의 일간지 A매체 여기자에게는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면서 신체적 접촉을 가졌다. 또한 보수 성향의 종편방송인 B매체 여기자에게는 ‘손등에 뽀뽀’를 했고 보수 성향 경제지 C매체 여기자에게는 ‘허리를 감싸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뒤늦게 참석한 이정회 국정원특별수사팀장이 만류하면서 이 차장을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 더 이상 여기자들과 신체적 접촉은 발생하지 않았다.
참석 남자 기자들이 항의하면서 불거져
사건이 불거진 것은 해당 여기자들이 아닌 참석했던 타 매체 남자 기자들이 이 차장에게 항의를 하면서 불거지게 됐다. 이 차장 검사는 다음날 27일 중앙지검 기자실을 찾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밝히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단 것이 문제가 돼 출입기자 간사단이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정식으로 면담 신청을 통해 항의 표시를 했다.
결국 검찰 총장은 “진상조사 후 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당 법사위원들은 31일 ‘이진한 차장의 부절적한 처신을 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이진한 차장이 여기자들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 검사가 여기자를 성추행할 때 검찰과 법무부에서는 감싸기만 할 것이냐”고 질타했고 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감찰부를 통해 진상조사 중”이라고 답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명도 아니고 3명의 여기자들과 부적절한 처신을 했지만 법조 출입기자들은 침묵하다시피 했다. 또한 이 차장이 감찰 대상이지만 징계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게 전현직 법조 출입기자들의 반응이었다. 현직 중앙지검 법조출입기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본인이 사과를 했고 검찰총장이 진상조사를 한다고 했다”며 “또한 여기자들의 신체적 접촉 관련 ‘이견이 있다’ 일단 후속조치를 보고 기사화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견이 있다’는 것과 관련해 “A 기자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다’고 밝혔고 ‘포옹했다’는 여기자는 ‘어깨를 감싸는 정도’로 표현했고 ‘손등에 뽀뽀했다’는 기자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이진한 차장의 부적절한 행위를 그나마 타 매체에 비해 자세히 전한 진보성향의 한 인터넷 매체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는 데다 이 차장 검사가 ‘사과’를 했고 출입기자단이 이를 받아들인 상황으로 더 이상 문제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한 마디로 이 차장의 행위는 부적절했지만 술 좌석에서 해당 여기자들이 ‘항의’할 정도로 과하지 않았고 바로 다음날 사과한 데다 검찰 총장이 나서서 진상조사를 약속한 이상 할 도리는 다했다는 설명이다. 중앙지검 출입기자들의 입장은 검찰 결과가 나오면 보도하겠다는 것이다.
전직 법조출입기자 “보도조차 않는 것은 문제”
그러나 검찰과 출입기자들의 속성을 잘 아는 전직 법조 출입기자들의 시각은 현직 출입기자와 차이를 보였다. 다년간 검찰 출입을 하고 정부부처에 근무하고 있는 기자는 “검찰 총장이 출입기자 간사단이나 1진 기자들에게 ‘쓰지 말라’고 부탁을 했고 이에 출입기자들이 진상조사 후 쓰는 것으로 합의를 봤을 것”이라며 “법조 출입할 때 남부지검의 한 검사는 여기자 다리를 쓰다듬어 옷을 벗은 경우가 있다. 출입기자가 보도조차 안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 출입했던 다른 기자 역시 검찰과 출입처 기자간 보이지 않는 끈끈한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시 청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 기자는 직접 경험한 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 기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BBK 특검이 있었다. 당시 특검이 임명된 한 검사가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래방에 데려간 적이 있다. 이 특검이 한 여기자와 블루스를 추면서 등을 쓰다듬었는데 그 정도가 과해 남자 기자들이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자가 조용하게 넘어가자는 의견을 강하게 나타냈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 검사가 오랜 여야 진통 끝에 뽑힌 데다 다시 뽑을 경우 또 시간이 걸려서 대선전까지 마치지 못한다며 검찰 고위인사들이 양해를 구해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 기자는 “성추행이 친고죄이지만 고소에 상관없이 검찰의 명예훼손이나 품위 손상이 있었다면 징계를 받는 게 맞다”며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청와대에 줄이 있다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 차장 검사는 ‘공안통’으로 이명박 정권에서 승승장구했고 ‘공안통’으로 유명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당시 공안 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더 두각을 나타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공안통 검사출신인 청와대 홍경식 민정수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을 정도로 친한 선후배지간이며 이로 인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선 이 차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의혹 사건에서 총괄지휘를 맡으면서 윤석렬 원주지청장이자 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팀장의 수사를 방해한 인물로 꼽고 있는 인물이다.
“2월 정기인사 불이익 받을 수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현직 법조 출입기자들 일각에서는 여기자들에게 부적절한 처신을 했지만 징계 수준은 주의나 경고도 받지 않을 것이란 냉소적인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의나 경고’를 받는다 해도 검찰이 발표하지 않을 경우 일반 국민들은 알지도 못 한 채 넘어갈 수 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실 관계자는 “검찰이 청와대 핵심 실세와 친분이 강한 이 차장이 옷을 벗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하지만 2월 정기 인사에서 ‘불이익’ 정도는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기대했다.
결국 이 차장의 거취에 대한 운명을 쥐고 있는 여기자들은 침묵하고 있고 검찰내에서는 ‘쉬쉬’하며 청와대 눈치를 보고 이를 보도할 법조 출입기자들 역시 검찰 수뇌부의 조치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 차장 검사가 건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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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