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문화가 중요하다 청산유수…어떤 방향으로 시책 펴야 할지…”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문화가 중요하다 청산유수…어떤 방향으로 시책 펴야 할지…”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3-12-30 11:19
  • 승인 2013.12.30 11:19
  • 호수 1026
  • 6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우리 문화를 도외시하는 사람들

일제가 남긴 잔재
 
1945년 8월 15일, 독립운동가와 우국지사 등 모든 국민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광복의 날이다. 지방에서는 숨어 지내던 우국지사들이 태극기를 만들고 주민을 설득해 신작로로 나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본 주둔군이 철수하면서 몇 천 몇 만 명이 완전무장하고 위협적으로 마치 진군하듯 지나가면 무슨 행패를 자행할지 몰라서 모두 무서워 집으로, 산속으로 숨곤 했다. 20대 전후 30대의 젊은 사람들은 일본군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일본군이 왜 물러가는가, 광복이 무엇인가 하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것이 바로 왜인이 우리의 정신을, 우리의 얼을 빼 놓은 것이다.
 
표면적으로 우리문화는 보이지 아니하고 일제의 잔재가 쓰레기같이 남아있었다. 외국문화는 접근조차 못하던 우리 민족은 남쪽은 미군들의 진주로 비로소 외래문화와 접할 수 있게 됐다. 우선은 소위 ‘지아이’ 문화가 판을 쳐서 일부 여인네들은 머리를 지지고 볶고 입술은 쥐 잡아 먹은 것처럼 하고 다녔다. 점차 외국 문화잡지가 어렵게 들어오고 신문 라디오가 소식을 전해 주고 외국에 있다가 귀국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간혹 있어 신문화에 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때가 문화적으로 참으로 암담하고 참혹한 시대였다. 우리문화의 뿌리를, 우리의 전통문화를 얘기하면 고리타분하고 뒤처진 사람으로 가련하게 생각하고 도외시했다. 얼이 빠지고 머리가 텅 빈 상태로 외국의 문물이 너무 쉽게 들어와 미국문화 서양문화만이 새로운 문화요, 앞서가는 듯했다. 간혹 미술전시가 열리면 서양 잡지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자연과 자연과학과 우리 전통미술의 조형정신은 어디로 간지 모르고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거기다 북한군의 6·25남침으로 폐허가 됐다. 북한은 학자 문인, 예술가, 정치가, 군인, 경찰, 기술자 할 것 없이 대한민국에서 남쪽으로 피난가지 못한 인재들은 수십만 명을 북으로 끌고 갔다. 끌려가다 학대로 죽고 지쳐 죽고 굶어 죽은 우리의 인재가 부지기수이니 그분들이 여기 그대로 계셨다면 우리문화가 좀 더 빨리 제자리를 잡아 나갔을 것이다. 9·28수복도 잠시, 1·4후퇴로 다시 대구 부산으로 쫓겨 갔다가 휴전이 되고 나서야 폐허로 돌아와 복구도 하고 건설도 하고 차차 옛 모습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 백마도 공재 윤두서(1688-1715)는 조선중기회화와 후기 회화를 이어주는 시기의 학자요 문인화가였다. 그는 후기회화를 여는데 크게 공헌했고 산수, 인물, 영모를 다 잘하였는데 말 그림에도 매우 뛰어나서 “이미 당시에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했다.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한 이 백마그림은 준마의 기상이 뚜렷하면서 준수하고 순후한 덕을 지녀 갑오새해의 서광을 드리우는 듯하다. 현재 백마도는 해남 본가에서 소장 중이다.
권력자들도 
외면한 전통문화 발전
 
그러나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은 정부요, 정치요, 법원과 검찰 등이다. 정부와 국회에서 우리 문화 우리 전통미술에 대해 간혹 알 만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가 중요하다는 말은 청산유수로 잘하지만 그 말이 다 거짓이요, 사기요, 공허한 말장난이었다. 어떤 사람도, 어떤 기관도, 어떤 단체도 올바른 정신과 얼이 있어 줏대와 주관을 가지고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고 기관과 단체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고 정부는 어떤 시책을 펴야 하고 국회는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할지를 가늠해야 하지만 권력과 돈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개인의 이기주의, 당의 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심지어 반 국가단체의 거침없는 이기주의와 자기 편의주의만이 존재한다. 문화의 발달, 특히 우리문화의 미래의 초석이 될 전통문화의 연구와 보존, 발달은 정말 설 자리가 없었다.
 
역대 대통령 모두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을 뿐 전통문화에 대해 언급조차 없었다. 실행에 옮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권력자들이 금력과 권력에만 온 정신을 쏟고 나라발전, 문화발전, 더더군다나 전통문화 발전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한 일도 없었다. 전통문화는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런 중에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한류도 만들고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렸고 대기업도 크게 공헌했지만 중소기업도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금년 봄 새 정부가 들어서 대통령이 ‘문화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연금술이다’라고 4대 국정기조 중 문화융성을 실현할 컨트롤타워인 ‘문화융성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첫 회의를 주재했다. 또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학계의 중요인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했다. 실제로 재단을 중요기구로 출범시켜 벌써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참으로 가뭄의 단비 같은 실제조치로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크고 감격스럽다. 그런데 지금 전통문화 전반이 너무 침체돼 있고 이제 거들떠보는 사람조차 없다. 전통문화는 남아있는 문화재가 잘 보존되고 연구 전시 홍보돼야 한다. 
 
그런데 개인과 기관에 보존돼있는 것 못지않게 지하에 아직도 상당량이 매장돼 있다. 그 매장문화재가 개발의 미명하에 매일 불도저에 깔려 없어지고 파헤쳐지고 있다. 혹 문화재가 발견돼도 쉬쉬하고 어디론지 헐값에 팔려나가 흔적도 없다. 전국 각지에 도굴이 아직도 성행해도, 유적이 송두리째 없어져도 누구 하나 관심이 없다.
 
 
세검정도
 
유숙 혜산(1827-1873)은 조선 말경의 역량 있는 화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중 수작도 꽤 눈에 띈다. 이 그림은 지금 우습게나마 남아있는 세검정을 그린 것으로 계곡도 조금 과장되고 그 뒤의 넓은 하천은 더욱 과장됐다. 
 
그러니 진경이며 필치가 유려하고 스케일이 웅혼하며 정자에 갓 쓴 사람 등이 있고 물가 바위에도 스님이 보이며 남이 장군의 웅혼한 기개를 말해주는 것 같다. 지금 이 유적에 계곡을 침범해 그 옆에 큰 도로가 나고 또 계곡에 오르는 길이 따로 나고 다리가 지나서 아주 초라하게 변한 모습을 보면 문화재와 고적과 아름다움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모두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