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과 별거중인 어여쁜 30대 여자 있어요~”
동창회 밴드가 불륜 모임으로 떠올라…
연말연시를 맞아 길거리에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곳곳에는 화려한 조명이 빛이 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들떠 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거운 연말연시를 보내기 위해 다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함께 보낼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인연을 찾기 위해 소개팅을 하거나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특히 결혼한 사람들은 은밀한 웹 사이트를 찾기 위해 더더욱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
“혼자 보내는
유부녀 찾습니다”
“외로운 유부남, 유부녀들의 은밀한 만남을 위한 공간입니다. 쓸쓸한 밤 더 이상 외롭다고 한탄하지 마세요.”
포털사이트에서 ‘유부남’, ‘유부녀’, ‘사랑’ 등을 검색하다 보면 위와 같은 안내문구가 적힌 웹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이 사이트의 가입 조건은 딱 하나다. 바로 ‘기혼’상태여야 한다는 것. 미혼이거나 이혼한 사람은 가입할 수 없다. 연령층은 다양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부터 50대까지 많은 사람이 기혼 남·녀임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호소하며 사이트를 찾는다. ‘부담 없이 만나고 싶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줄 당신을 기다립니다’ 등의 제목을 클릭하면 자신이 사는 곳, 나이, 결혼 몇 년차 등의 기초 정보를 볼 수 있다. 연락처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고 메일이나 쪽지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 뒤 만남이 이루어진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2건 정도의 만남이 성사됐지만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10건이 넘는 만남이 이뤄졌다. 외로운 남녀가 모여든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까지 한 사람들이 왜 외로움을 호소하며 급 만남을 찾는 것일까.
결혼한 지 13년 됐다는 A(40)씨는 기러기 아빠다. 그는 타국에 있는 가족들을 볼 수 없는 허전함을 만남으로 채운다고 말했다. A씨는 “아내와 자식들이 캐나다로 떠난 지 5년이 넘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동의했지만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크리스마스, 연말에 더더욱 그렇다. 옆에서 함께 대화도 나누고 시간을 보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 이런(유부남녀 만남) 사이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결혼 23주년을 맞은 B(53)씨의 아내는 갱년기다. 우울증도 찾아와 서로 대화가 끊긴 지 오래라고 한다. B씨는 “특별한 날,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데 아내와는 힘들다”라며 “연말에 함께 해돋이를 보러 갈 여성을 찾는다”고 말했다.
대화 통하는
기혼자 선호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한 만남은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다. 채팅 사이트를 통하면 젊은 20대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젊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뒤로 하고 기혼자를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이유는 ‘대화가 통해서’다.
A씨는 “채팅 사이트를 통해 20~30대 직장인 여성을 만나본 적도 있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쓸쓸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라며 “단순히 밤을 보낼 여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같이 대화를 나눌 대상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기혼자를 찾게 됐다. 현재 A씨는 자신처럼 가족과 떨어져 지낸 여성을 만나 가족 이야기, 자신의 처지 등을 서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이모(39·여)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남편은 지난 여름 중국으로 해외파견을 나갔다. 1년 단기 파견이었고 자신도 직장인이라 상의 끝에 남편 혼자 나가기로 했다. 이들 부부는 딩크족(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으로 자식도 없어 이씨는 혼자 남겨지게 됐다. 밤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이씨는 A씨처럼 채팅사이트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싱글 남성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자기 또래부터 40대 초중반의 중년 남성까지 만나봤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텅 빈 마음을 보듬어 주지 못했다. 결국 이씨 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남성을 찾게 됐다. 이씨는 “기러기 아빠나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남성을 만나면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며 “범위가 좁아지니 만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만날 때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떠오르는 샛별
소모임 ‘Band’
“아내가 초등밴드에 가입하면서 남자 동창들과 해서는 안 되는 성(性)적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1박2일 펜션 모임까지 갑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저와 아내 사이에 갈등은 커져갑니다.”, “밴드에서 만난 동창 여자가 신랑 회사로 선물을 보내고 신랑은 그 선물의 답으로 아주 멋진 연애편지를 썼더라고요.”, “동창 모임을 나가면 40대 초반들의 사람들이 ‘초등 학교 때 누가 누굴 좋아했네’, ‘그러니 오늘 네가 책임지고 집까지 바래다 주라’ ‘매일 집에서 아내만 보다 니들 보니까 너무 좋다’는 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서로 만지면서 하는데 보기에 안 좋다. 주위에 밴드 때문에 이혼한 사람도 있다.”
최근 떠오르는 불륜의 근원지가 있다. 바로 네이버 밴드(소모임 앱)다. 학교 이름과 졸업 연도만 적으면 동창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제2의 아이러브스쿨로 떠오르고 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항상 소지하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연락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옛 추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성 동창들이 만나 새로운 사랑(?)을 속삭인다는 점에서 요즘 기혼자들의 경계 대상 1호로 떠오르고 있다. 부부토크와 관련된 웹 사이트에서는 위와 같은 밴드 고민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배우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창들과 수다를 떠느라 휴대전화,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이성 동창과의 통화부터 만남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며 밤새 술 마시고 외박도 서슴지 않는다는 글들이 주를 이룬다. 김모(42)씨는 “요즘에는 연말 분위기를 타고 번개모임을 자주 한다. 크리스마스 기념, 송년회 등 술자리, 그렇게 시작된 자리는 밤 12시가 넘어도 끝날 줄 모른다”라며 “동창 중에는 서로 눈이 맞아서 사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 첫사랑과 이야기하며 술 한잔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관계가 진전되는 것 같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박스) 유부남 만나보니, 쓸쓸한 불륜女 “그를 사랑하는 일은 무척 행복합니다. 바라만 볼 수 있어도 만족합니다. 그렇지만 기념일을 함께 보낼 수 없을 때마다 현실을 깨닫게 돼 가슴이 아픕니다.” 유부남을 사랑하는 미혼 여성 A씨에게 겨울은 유독 쓸쓸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연이어 있는 12월은 더욱 그렇다. 남들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날 혼자 있는 티를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인’은 자신의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그녀는 기념일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보낼 수밖에 없다. A씨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가 가족을 내버려두고 기념일을 나와 함께 보내기를 기도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 더욱 좋다”면서도 “그렇지만 한쪽 가슴이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다 한번 오는 문자메시지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슬퍼진다. 내 사랑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B씨는 지난 24일 오전에 연인의 얼굴을 잠깐 본 것이 전부다. 잠시 외근을 나온 B씨의 연인은 그녀의 회사 앞에서 커피 타임을 가진 후 한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인사를 하고 갔다. B씨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얼굴이라도 본 나는 행복한 편”이라며 “날씨가 추워지면 더욱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이 간절해지지만 나처럼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혼자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록 지금은 쓸쓸해도 그만큼 다음에 만났을 때 기쁨이 배가 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