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현대산업개발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정몽규 회장(사진)이 두 마리 토끼 사냥에 힘겨워하는 모양새다. 현대산업개발은 계속되는 건설 경기 불황 속에 수주 실적에서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고, 대한축구협회는 탈세 혐의를 비롯한 문제점들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평소 팔색조로 불릴 만큼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정 회장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더욱이 정 회장은 두 단체 외에도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 포니정재단의 설립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어 “너무 다양한 활동범위로 인해 어느 한 쪽도 완벽하지 못한 게 아니냐”라는 지적의 목소리도 들린다.
현대산업개발 수주 감소…신용등급 하락
축구협회 탈세 논란…경영 투명성에’경종’
우선 정 회장의 본업인 현대산업개발은 실적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올해 3분기까지 따낸 신규 수주액은 1조6160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8.2%나 감소했다. 특히 현대산업개발이 상반기 1월부터 6월까지 따낸 수주액은 5211억 원에 그쳤다. 마지막 4분기까지 더해진 수주 총액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신규 수주액 3조1569억 원을 넘어서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처럼 현대산업개발이 올해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건설부문 매출의 대부분이 국내 주택사업과 관급공사에서 나오는 현대산업개발에 국내건설 경기의 불황이 치명타가 된 것이다. 특히 민간 주택부문 수주 감소가 가장 심각한데 지난해 자체사업을 제외한 주택부문 수주액은 1조260억 원에 달했지만 올해 3분기 기준 수주는 4550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박형렬 KDB대우증권 연구원 역시 “현대산업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9.2% 감소한 175억 원으로 추정되고 4분기엔 일회성 손실 확대에 따라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할 것”이라며 “연말까지는 부진한 실적 흐름에 따른 주가 조정국면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실적 부진의 여파로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NICE)신용평가는 현대산업개발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내린 상태다. 기업어음(CP) 신용등급도 ‘A2+’에서 ‘A2’로 강등됐다.
한기평은 “3분기 영업 손실이 68억 원으로 누적 영업이익률이 -0.4%에 그친다”며 “지난 5월 제시한 대로 금융비용 대비 조정영업이익(EBIT)이 2배에 미치지 못해 등급을 하향한다”고 말했다.
나이스신평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은 국내건설 발주 감소에 대비해 해외사업 수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사업의 경우 아직은 수주실적이 마땅히 드러난 곳은 없다.
나이스신평도 “총 차입금이 분양 부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대위변제 등으로 지난달 말 기준 2조111억 원까지 증가했고 매출 감소와 사업수지가 악화된 지연사업자의 사업 개시 등으로 수익성이 저조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과욕이 부른 ‘화’ 될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 회장은 “악화되는 실적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됐다. 이 같은 지적을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정 회장이 축구협회 회장직 등을 겸하고 있는 것이 과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이 서너 단체의 회장직을 오가다보면 어느 한 곳에는 반드시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정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축구협회도 몸살을 앓고 있긴 마찬가지라는 점이 이들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시기 역시 정 회장이 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1월을 기점으로 조금씩 더 불거지고 있다. 정 회장의 축구협회는 지난 5월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 당시 2010 남아공 월드컵 배당수입 110억 원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아 국세청에 적발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추징 금액은 15억8000만 원에 이르렀다.
당시에 대해 축구협회 측은 “고의적인 탈세가 아니다. 과세 대상 기준을 정확히 몰라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고 있다.
추가로 축구협회는 지난 달 25일부터 특별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기세무조사가 끝난 지 7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세무조사에 들어갔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축구협회 경영 투명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한편 양쪽 모두 경영이 악화된 상황에서 한쪽 문제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정 회장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이러한 잡음은 “집안 살림부터 챙겨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해답을 내놔야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 회장이 축구협회장 자리를 꿰차면서 종합경영인 칭호를 얻기도 했고, U-20 세계대회 개최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나 재계 주변에선 경영인 본연의 임무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수시로 들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축구협회 회장 자리는 축구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특별한 경영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며 “정 회장이 축구협회에 빠져 현대산업개발을 소홀히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겸임으로 시간을 절대 뺏기지 않는다는 말도 조금은 어폐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 회장이 프로축구연맹 수장을 지낼 당시처럼 균형감 있는 실적을 내야 빈축을 안 사지 않겠냐”면서 “축구협회가 정 회장의 취임 이후 여러 가지 성과를 보인 것처럼 이번에는 현대산업개발에서 내세울 만한 실적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