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네 야채가게 ②] -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총각네 야채가게 ②] -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3-12-30 10:34
  • 승인 2013.12.30 10:34
  • 호수 1026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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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보다 열심히 일한 머슴…1%의 마음을 잡다

한국 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서른아홉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무일푼 오징어 행상에서 시작해 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드라마와 연극의 소재로까지 다뤄지고 있는 ㈜자연의 모든것의 ‘총각네 야채가게’다.

20대에 트럭행상·노점으로 장사 노하우를 터득한 이영석은 수백 억 매출을 올리는 현재도 명함에 대표 직함을 빠트린 채 자신을 ‘야채장수’라고 소개한다.

그는 트럭행상으로 돈벌이에 나선 첫 무렵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아버지 산소 앞길 닦기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 갚기, 마지막으로 어머니 집 사드리기였다.

이영석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달 용돈 2만 원으로 생활하고, 벌이의 90% 이상을 저금했다고 한다.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애는 꿈도 못 꿨다. 칼바람 부는 겨울에도 200원짜리 장갑 하나 사는 게 아까워 맨손으로 일하기도 했다. 밥값이 아까워 점심을 거르기도 일쑤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아끼고 열심히 일한 청년은 6년 만에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뤄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노점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금의 총각네 야채가게를 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이영석은 연매출 600억 원의 농수산식품유통업체 ‘자연의 모든 것’을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 ‘총각네 야채가게’는 손님들이 붙여준 야채가게의 애칭이다.

또한 이영석은 성공을 하기 위해서 세 가지의 생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첫째, 직업에 대한 선입관을 버린다 둘째, 남들과 다르게 한다 셋째, 주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머슴이 되라.

직업에 대한 선입관을 버려야 함은 아름다운 직업을 꿈꾸기 전에 그거을 즐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 남들이 안 한다고 할 때 혼자서라도 밀어붙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듯, 자신의 주관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안 돼’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남들과 다르게 해야 함은 상품을 파는 행위 그 자체가 즐거움을 파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든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내가 즐기지 못한다면 절대로 튀지 못한 채 고객들의 눈길을 받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주인보다 더 일하는 머슴이 돼야 한다는 것은 비전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석은 주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머슴이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개발되는 신제품 과일에 대해 연구하고 보관온도와 맛있게 먹는 법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승승장구의 비결을 엄격한 품질관리와 서비스에 있다고 자부한다.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싼 가격이 아닌 품질이라고 말한다.

재고 0%에 도전하라

총각네 야채가게의 생선들은 단 하루만 그곳에 머물 수 있다. 이틀도 사흘도 아닌 단 하루 만에 고객들에게 넘겨진다. 그런데 이런 원칙은 생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야채나 과일도 마찬가지다. 그날 떼어온 야채와 과일은 그날 다 팔고, 다음날 새벽시장에서 새로운 물건들이 들어온다.

이것은 총각네 야채가게의 상품이 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우선 그는 그날 떼어온 야채와 과일을 그날 다 팔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들여올 과일과 야채의 수량을 결정하는 노하우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주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 시금치와 단무지, 김 등을 많이 들여놓는다. 소풍에 빼놓을 수 없는 게 김밥이다. 당연히 이런 품목들의 소비량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또 주변 아파트에서는 종종 부녀회가 주최하는 바자회가 열린다. 그럴 때는 바자회에서 취급하는 품목들의 소비량이 감소한다. 이영석과 총각 직원들은 단골손님들을 통해 바자회에서 취급하는 품목들이 무엇인지 사전조사를 한다. 그리고 당일이 되면 그런 품목들의 수량을 줄여서 구매한다.

이처럼 그날 구입할 물품의 양을 결정하는 데도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일기예보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린다고 하면 부추나 파를 조금 더 많이 구매한다. 그는 비가 오면 전이 생각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고려해 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영업 방식을 본 손님들은 총각네 야채가게의 야채와 과일이 모두 신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폐장 시간이 돼도 총각네 야채가게는 손님이 줄지 않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재고 0%에 도전한 이영석의 도전이 날마다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끔씩 남는 재고가 생기더라도 절대 재고로 남기지 않는다. 그 즉시 바로 ‘도보’를 나간다. ‘도보’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직접 야채를 들고 주변의 식당에 팔러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날 하루 동안 미처 팔지 못한 것들이기에 가격은 당연히 낮춘다. 이렇게 해서 도보로 남은 야채까지 다 팔고 나면 비로소 그는 하루를 마감한다.

또 그는 과일도 A/S가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야채가게를 찾아와 이영석에게 불만을 털어놨다.

“총각, 이 바나나 어제 여기서 샀는데 별로 신선하지 않은 거 같아. 바꿔줄 수 있겠어?”

그 아주머니에게 봉지를 건네받은 이영석이 봉지 안을 들여다 봤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배달을 잘못해드렸네요. 배달이 너무 많다 보니 실수를 한 것 같은데, 다시 새 걸로 바꿔드릴게요”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과일가게들의 영업 방식을 떠올려 봤을 때 하루 지난 바나나를 가지고 와서 바꿔달라고 하는 건 억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싫은 내색도 비치지 않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두말없이 바꿔줬다. 게다가 성의라며 오렌지까지 하나 덤으로 건냈다.

그 아주머니뿐만이 아니라 거실에 방치해둔 딸기가 이상하다며 항의를 하는 손님에게도 아무런 대꾸 없이 물건을 바꿔줬다.

그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물건이 이상하면 일단은 물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름대로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 최상의 제품을 공급하지만 손님들은 물건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하거나 보관법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무조건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화를 낼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화가 난 상태에서는 아무리 조리 있게 설명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손님의 불만을 먼저 잘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손님의 실수라 해도 총각 직원들이 군말 없이 바꿔주며 손님이 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조언해 주는 A/S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리더

이영석은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 일한다. 사장의 위치까지 올랐다면 다른 직원에게 맡기고 편히 쉴 법도 할 텐데 그는 그러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그의 직원들은 이영석 사장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큰형님이라고 한다. 존경하는 마음과 애정이 함께 담긴 호칭이다.

그는 일에 있어서는 단호하고 빈틈이 없지만 인간적으로는 큰형처럼 마음 씀씀이가 넓고 애틋하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경영방식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총각네 직원들도 이따끔 사고를 일으킬 때가 있다. 한번은 장애우인 손님 차량을 주차시키다 사고를 낸 직원이 있다. 대신 주차해주려고 한 것인데 가속기와 브레이크의 위치가 다른 것을 몰랐던 바람에 그만 가속기를 밟아 사고가 났다.

사고를 낸 직원은 어쩔 줄 몰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이영석은 침착하게 사고의 뒤처리를 맡았다. 겉은 멀쩡했지만 혹시라도 이상이 있을까봐 그 직원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고, 손님에게는 모든 변상을 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또 어떤 직원은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갈비뼈와 다리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벗겨지는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자 3000만 원 가량의 치료비를 그가 모두 부담했다. 야채가게의 일과는 상관없는 사고를 당했지만 마음이 쓰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그는 국내 최초로 야채가게 직원들을 모두 4대보험에 가입시켰다. 이처럼 그는 직원들의 복지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의 평생 일터로, 야채장사를 평생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새벽마다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을 여는 그이지만 그도 매일이 즐겁지만은 않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더 하다. 마음속으로 하느냐 마느냐 갈등할 때도 많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49%와 51%의 차이는 50%를 기준으로 했을 때 1%의 많고 적음이다. 그는 바로 그 1%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는 돼도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문제도 답도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더가 된 지금도 자신이 먼저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1%의 기술을 바탕으로 99%의 감성을 가지고 손님을 대한다. 손님 역시 1%의 기술에 응하고 99%의 감성에 답한다.

자세히 보면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거래되는 건 단지 야채나 과일, 생선만이 아니다. 총각네 야채가게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

더 좋은 야채장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며 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리더가 된 이영석. 그의 성공 이야기는 2008년 뮤지컬로 첫 선을 보였고 지금까지도 재연출 되고 있으며 같은 해 TV드라마로까지 제작됐다.

그는 이제 소와 닭, 돼지, 식물 등을 직접 키우며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을 실현시킬 목표를 세웠다. 50세에 창업사관학교를 세우고 60세에 농수산물 테마파크를 설립하는 꿈을 꾸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끝>
<정리=박시은 기자>
<출처=총각네 야채가게 中│김영한·이영석 지음│쌤앤파커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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