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회장 내정자, 기대와 우려 시선 교차…노조 입장 ‘주목’
태광·동부·농심 등 업계 막론하고 ‘삼성맨들 모시기’에 주력
지배 구조 재편 시작됐다…2·3세 경영 포석 마련
여성 임원 약진 “이제 시작일 뿐, 비율 점점 증가할 것”
재계 연말 인사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다. KT 회장추천위원회는 지난 16일 “4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한 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황 내정자는 다음달 27일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KT 본사 및 계열사 임직원들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에 오른다.
이와 같은 황 내정자의 등장은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주파수 마케팅 전쟁이 본격화될 이동 통신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미 일각에서 황 내정자의 등장으로 업계의 경쟁구도는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더욱이 KT 내부적인 상황을 봤을 때도 이석채 전 회장의 검찰 수사, 낙하산 문제가 대두된 계파 인사, 끝을 알 수 없어 보이는 실적 악화 등 회사 갈등이 심각해 차기 회장의 역할이 막중하던 터라 황 내정자는 KT가 내세운 마지막 히든카드라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황 내정자의 등장이 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까. 황 내정자를 둘러싼 대부분의 평가는 황 내정자가 삼성전자 출신으로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룩한 주인공이라는 이력에서 시작된다.
먼저 삼성 출신인 황 내정자가 KT에 둥지를 틀면서 향후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 삼성전자와 KT의 협력관계가 급격히 돈독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관측된다.
특히 KT의 라이벌 SK텔레콤은 삼성전자와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을 놓고 대립하고 있어 이 전 회장의 재임 당시 다소 소원했던 양사의 관계만 개선되면 파급 효과가 대단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순혈주의를 버리고 외부수혈을 한 만큼 민영화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성격이 여전히 짙다는 지적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낙하산 인사 논란이 유독 많았던 KT지만 황 내정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를 이식해 공기업 성격을 지울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KT 역시 이와 같은 기대를 감추지 않는 눈치다. KT 관계자는 “황 내정자는 대표적인 IT분야 전문가”라면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으로서 국가의 CTO를 지내는 등 ICT 전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도 강점”이라고 전했다.
이어 “경영공백으로 이완된 조직을 조기에 정비하고 내부결속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경쟁사 등 회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도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황 내정자에 대한 모든 평가가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황 내정자가 통신사업 분야에 정통하지 못하다는 점과 노사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은 우려가 되고 있다. 황 내정자의 친정인 삼성그룹은 아예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이 영입한 올레KT와 원래 KT(기존 임직원)로 나눠진 조직 분열도 골치다. KT는 2009년 KTF와 합병했지만 아직도 조직 내부적인 융합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황 내정자는 사업구조 혁신과 더불어 조직 구조 안정화라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KT 노조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본다”면서도 “황 내정자가 노조와의 협력 관계를 인정하고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삼성 출신 인사 대거 포진
이렇게 재계 인사 중 가장 큰 화두를 던진 황 내정자 다음으로도 2014년을 준비하는 재계에는 삼성 출신 인사들이 곳곳에 대거 포진했다. 삼성 출신 임원들이 선호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독 삼성 출신 인사가 많이 눈에 띈다.
더욱이 전직 삼성맨들의 인기는 업계를 가리지 않는다. 태광그룹은 지난 15일 정기임원 인사에서 삼성물산 섬유원료사업부 출신 조경구 상무를 섬유사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앞서 지난 2월 최중재 전 삼성물산 화학사업부장을 사장으로, 정경환 전 삼성토탈 상무를 석유화학본부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세 번째다.
지난 5일 메리츠화재 사장에 오른 남재호 사장도 삼성화재 전신인 안국화재에 1983년 입사해 삼성화재 부사장까지 지냈다. 남 사장의 전임 송진규 전 사장 역시 삼성화재 출신이었고 원명수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 역시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에서 근무한 바 있다.
또 지난 9월 선임된 허기열 동부 대표이사도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국내영업마케팅 상무와 중국영업총괄 부사장 등을 지낸 전직 삼성맨이다.
지난 10월 CJ CEO가 된 이채욱 대표도 마찬가지로 삼성물산 출신이며 일진그룹도 안기훈 전 삼성전기 전무를 새로 설립한 일진LED 대표로 선임한 상태다. 그 외에는 오세용 SK하이닉스 사장과 이재형 동부대우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김경조 농심 부사장, 박성칠 동원F&B 대표가 삼성을 친정으로 두고 있다.
이러한 삼성 출신 인사 모시기 현상에 대해 업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삼성과의 인맥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의견이다.
한 헤드헌팅업체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기대치는 누구나 높다. 혁신적인 기업, 글로벌 기업 출신이라는 믿음이 아무래도 작용한다”며 “특히 업무적으로도 유행을 읽어내는 능력, 철저한 인사 관리 등은 삼성 출신 임원들의 강점으로 부각된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 삼성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재계를 막론하고 분포해 있는 삼성 인맥이 주는 메리트가 분명히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전했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들은 “삼성이 여러 기업과 유착관계를 갖게 되면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대립한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18일 KT 회장 내정에 대해 “황 내정자가 삼성전자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온 인물로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KT의 관계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는 매우 밀접한 사업적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기간통신사인 KT와 글로벌 단말기 제조사로 발돋움한 삼성전자가 유착된다면, 이는 관련 산업분야의 건강한 생태계에 치명적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며 통신사와 제조사 간의 유착관계를 걱정했다.
한 노조 관계자 역시 “삼성뿐만 아니라 어느 기업 출신이라도 출신에 따라 경영이 좌지우지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며 “적어도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면 모든 관계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기업의 경영 방침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 출신 인사들이 이러한 우려를 깨끗하게 없애고 올바른 기업 문화를 이끌어 나갈지도 내년 재계의 볼거리다.
또 하나의 키워드 경영승계·여풍당당
한편 올해 또 다른 재계 인사 특징으로는 경영승계와 여성 임원의 강세가 꼽힌다. 대림그룹은 지난 16일 2014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의 삼남인 이해창 대림코퍼레이션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로써 대림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일가는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이해창 부사장 등 2명이 돼 경영 구도를 재편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광실업도 무상증여와 합병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후계자 박주환 부실장에게 지분을 넘긴 결과 박연차 전 회장 1인 체제에서 박 전 회장·2세 박주환 체제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제약업계는 동아제약과 일동제약, 녹십자, 광동제약 등 업계 전반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은 창업주인 고 허영섭 전 회장의 차남으로 지난 11월 말 임원 인사에서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동아제약이 강정석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고, 4월 일동제약에선 윤웅섭 부사장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바 있다.
아울러 여성 임원들의 약진은 대기업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LG생활건강은 임원 인사에서 최연희 페브릭케어 마케팅부문장을 상무로 선임하면서 여성 임원 비율이 10%를 넘어섰다. 이랜드그룹 임원 승진 인사에서는 총 15명 중 절반에 가까운 7명이 여성이었다.
또한 지난 5일 삼성그룹이 단행한 총 475명의 임원 승진 인사에서도 여성 임원 15명이 포함돼 서서히 여성의 임원 진출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승진으로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을 이부진·이서현 사장이 책임지게 됐다.
이는 여성 임원의 약진과 경영 승계가 한 번에 드러나는 경우로 볼 수 있는 일례인 셈이다. 경영 승계 구도가 탄탄해지는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 승계라는 것을 기업 입장에서 대놓고 밝히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올해 연말 인사를 살펴봤을 때 확실히 경영 승계를 여러 곳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며 “여성 임원들의 진출 역시 아직 시작점으로 생각되지만 향후 여성임원 비율이 더욱 높아지는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 측은 이러한 해석을 아직은 부정하는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이서현 사장의 승진은 성과에 따른 보상이었을 뿐, 경영권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못 박았다. 여성의 임원 진출 확대에 대해서도 “성과에 따른 것”이라며 “1990년대 초반 여성 인력들이 재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을 생각했을 때 지금이 여성 임원 배출이 점차 확대되는 시기가 맞다”고 설명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