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공기업(公企業).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갖거나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업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첫 번째 의무로서 공익성을 요구받고, 두 번째로 관료주의와 비능률을 회피해야 한다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막상 공기업들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공공의 목적을 잊은 채 방만경영 일로를 걷는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공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공기업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와 같은 현실에 [일요서울]은 각 공기업이 어떻게 공익을 해치고 있는지 그 천태만상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그 아홉 번째 대상은 한국철도공사(사장 최연혜·이하 코레일)다.
10천문학적 부채에 연봉킹…성과급 지급 논란
노조 “민영화 前단계” vs 사측 “경쟁체제 도입”
철도 파업이 20일 현재 13일을 넘어섰다. 기존 최장파업 기간인 8일을 훌쩍 넘겼다.
파업 참가자 7900여 명 전원이 직위 해제될 위기에 놓였고, KTX(한국형 고속철도)운행도 단계적으로 멈춰 설 예정이다. 급기야 지난 18일에는 철도파업 주동자 18명에 대한 추가 체포영장이 청구돼 노조원 1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파업의 최대 쟁점은 ‘민영화’다. 수서발 KTX의 민영화 추진을 놓고 대립양상을 띠고 있다.
최연혜 사장이 취임 전에는 민영화 반대를 강조하다 취임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민영화는 반대하지만 경쟁체제 도입은 찬성한다”고 밝힌 것이 화근이 됐다.
취임 당시 기대감이 컸던 노조는 최 사장이 철도정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바꾼 것이라며 반발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수서발 KTX 운영사의 철도운송사업 면허 발급을 추진하고 있다. 수서발 KTX법인 발기인인 코레일은 12일 국토부에 면허신청서를 냈고, 13일 대전지방법원에 법인 설립 등기 신청도 끝냈다.
반면 전국철도노조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수서발 KTX법인’의 면허를 발급해선 안 된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규모 상경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고 실제로도 지역별로 파업을 진행 중이다. 철도노조는 이 법인 설립이 ‘철도산업 민영화’ 전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나 코레일은 새로운 철도 공기업을 만들어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일 뿐이라는 견해지만 철도노조는 결국 민간에 팔아 민영화하는 절차라고 맞선다.
하지만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노조의 주장을 억지라고 설명한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는 철도산업 민영화를 할 의지가 전혀 없다”며 “가능성이 없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파업의 대상으로 삼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각에선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는 속내는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동안 경쟁체제가 아닌 독점체제에 비교대상이 생기는 것에 대한 부담이라는 것이다.
자칫 ‘방만경영’의 심각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레일이 국정감사 때마다 독점적 지휘를 바탕으로 과도한 인건비를 지출하는 등 방만경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온 게 사실이다.
실제로도 코레일의 빚은 17조6000억 원. 매일 이자만 12억 원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사기업 평균 연봉보다 많은 기본급에 복리후생비, 고정수당 등을 합해 1인당 6500만 원을 받고 있다. 2009년 파업 때 5500만 원에서, 3년 만에 1000만 원이 올랐다. 최근에는 성과급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후폭풍을 예고하기도 한다.
코레일 자회사 관리 구멍
자회사에 대한 관리 부실도 논란의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자회사 중 한 곳인 코레일네트웍스의 카드 관리가 허술한 것을 틈타 회원카드 발급비를 빼돌리는 일이 발생했고, 이 일이 탄로 나 하도급업체 직원이 횡력액을 배상하는 일도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조휴옥)는 코레일네트웍스가 A하도급업체와 이 업체 직원 민모(31)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민씨는 총 2억 3000여만 원을 배상하고, 그중 7000여만 원에 대해서는 A회사와 연대해서 갚으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민씨는 2008년부터 코레일 멤버십 회원전용창구에 파견돼 근무했다.
현장관리자로 일하던 민씨는 코레일네트웍스 직원들이 카드발급 명세서와 전산상 카드발급 명세만 대조할 뿐 실제 입금된 카드발급비 명세는 확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민씨는 2010년 6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창구 근로자들로부터 카드발급비를 받아 보관하다가 그중 일부만 코레일네트웍스에 입금했다.
회계 담당 직원에게는 입금 내용에 상응하는 카드발급 명세서만 제출해 그것이 전체 발급 내용인 것처럼 속였다. 민씨는 이러한 수법으로 1억4000여만 원을 횡령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횡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난해 4월 민씨를 직원으로 채용하기까지 했다.
민씨는 코레일네트웍스에 입사한 이후에도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같은 해 10월까지 총 9000여만 원을 추가로 빼돌렸다.
한편 이번 철도 파업은 취임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최 사장의 리더십 평가 시험대이기도 하다. 파업 첫날 “어머니의 심정으로 하루 속히 (파업 사태를) 수습하겠다”던 그는 현재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파업 참여자 전원 직위해제, 임금 인상 동결, ‘수서발 KTX’출자회사 설립·운영 방침 유지 등 노조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누적 부채 17조 원, 부채비율 400%를 넘는 코레일의 경영정상화가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최 사장은 우리나라 철도 역사 이래 탄생한 첫 여성 CEO다. 그의 이름 앞에는 이외에도 따라 다니는 수식어가 한둘이 아니다. 코레일 부사장 출신의 철도 전문가, 학자 출신 CEO, 철도 민영화 반대를 외치던 뚝심 있는 교수 등 대부분 코레일 사장으로서의 기대치가 묻어 있는 것들이다.
특히 코레일과 정부 사이 갈등을 빚어온 철도의 민영화 문제에 명쾌한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