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으로 보는 한반도 정세 관전법
제왕학으로 보는 한반도 정세 관전법
  • 박형남 기자
  • 입력 2013-12-23 10:45
  • 승인 2013.12.23 10:45
  • 호수 1025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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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姓(역성)혁명’ 풍문으로 역린 건드린 ‘2인자 장성택은…

3만 명에 달하는 ‘장성택 패밀리’ 마음만 먹으면 쿠데타

[박해동 언론인] ‘장성택 처형’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진행된 북한 절대권력 2인자 사형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의 발생 배경과 주도 인물은 누구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성택 붕괴 드라마 콘셉트는 권력에 취해 오만해진 방심이 빚은 참극(慘劇)이었다. 김정은 수행 사진에서 보듯 유독 장성택만 긴장이 풀어진 모습이 자주 노출됐다. 참모는 참모일 뿐이라는 정치권력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막강한 권력을 자신이 쥐고 있다고 착각한 장성택의 비극은 이미 예고된 시나리오였다. 김정은을 구상유취라고 어린애 취급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 결과는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함경도 출신 등 자신과 관계된 많은 사람을 형장이나 시궁창으로 내모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장성택 쿠데타 가능성이 김정은 심기 건드려

장성택의 실각(失脚)은 조선시대 정조를 왕으로 옹립하고 야심차게 권력을 휘두르며 이른바 세도(勢道)정치라는 말을 낳게 했던 홍국영의 데자뷔로 비친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꽃은 열흘 이상 붉게 피어 있지 않고,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않는다는 철리(哲理)처럼 홍국영의 세도정치도 10년은커녕 겨우 4년도 못돼 망하고 말았다.

정조는 세손(世孫) 시절 브레인이었던 홍국영을 집권하자마자 동부승지, 도승지로 벼락 출세시킨다. 그러나 29세부터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시작된 홍국영 세도는 3년 만에 끝난다. 집권 기반이 취약했던 정조는 홍국영을 절대 신임해 즉위 후 왕의 신변보호를 위해 훈련도감 대장까지 맡겨 병권까지 장악한 그의 권력은 왕을 능가할 정도였다. 홍국영의 욕망은 끝이 없어 정조의 비(妃)로 있던 동생을 왕비(王妃)로의 승격을 시도했으나 갑자기 죽자 기존 왕비를 의심해 독살음모를 꾸미다 숙청당했다.

평행이론처럼 장성택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최고 실세였지만 하루아침에, 그것도 자신이 키운 처조카에게 일격을 당하고 몰락했다. 조선 망국의 책임자인 대원군이 자신이 간택한 새파란 며느리 명성황후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청나라로 잡혀가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장성택의 비극은 권력무상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장성택은 수십 년 동안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함경도 출신을 중심으로 자신의 심복을 심었다. 국가안전보위부, 보안성, 검찰 등 북한의 핵심 권력에 배치해 2인자로 군림해 왔다.

따라서 김경희가 죽은 뒤 김정은 혼자서 장성택을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권력을 확보한 처지다. 그동안 아버지 김일성과 오빠 김정일의 위기관리를 옆에서 보고 배운 김경희가 자신이 살아있을 때 조카와 힘을 합쳐 장을 제거한 것이 아닐까. 즉, 참초제근(斬草除根)으로 아예 장씨 싹을 자르고 뿌리를 뽑아, 영원히 김씨 왕조가 이어지게 만들기 위한 곁가지 치기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 거사를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유일수령체제를 굳혀 가는 과정에서 ‘역성(易姓)혁명’이 가능할 정도로 커져 버린 ‘장성택 권력’ 견제를 위해 ‘역성혁명의 싹’을 뽑아버린 것이다. 장은 당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장악해 당을 사유화하고, 경제 분야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돈줄을 장악하며, 군을 사당화해 급기야는 ‘김(金)의 왕조’를 ‘장(張)의 왕조’로 바꾸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정·군에 3만 명에 달하는 ‘장성택 패밀리’를 주축으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쿠데타를 할 수 있다는 역모 가능성이 김정은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왕학의 기본이다. 또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책을 놓고 김정은을 겨냥해 ”그러면 안 되는데” 라며 비난한 것이 역린을 자극했다는 주장도 있다.

통일은 시작됐고, 완전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

장성택 처형은 통일의 시그널로 보인다. 지난 30여 년간 탈북 귀순자는 2만여 명에 김정일의 처 가족까지도 대열에 합세했다. 휴대전화가 150만대를 넘었다는 북한도 이제 깜깜한 밤중을 지나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89년 10월 31일 서독 총리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깐 동방정책의 아버지 빌리 브란트가 한국 방문 중 독일 통일은 언제쯤이냐는 물음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10일 뒤 동독은 국경 전면 개방 조치를 발표했고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다섯 개 주가 서독으로 편입되면서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은 도둑처럼 올 것이란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통치자금의 고갈, 에너지 위기와 만성적인 궁핍에 따른 식량위기 등 민심 이반은 30도 안 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자 위기로 시시각각 조여 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통일이 급변사태로 올 것이란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막강한 두 후견인인 장성택과 김경희 없는 김정은이 내외로 불어 닥치는 거센 풍랑을 어떻게 헤쳐 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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