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지도부 흔들기용” vs “민주당 외연 확대”
친노-비노 프레임 깨야 한다고 말한 게 언제인데…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1년 동안 ‘자숙 모드’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며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문 의원은 대권 재도전이라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깜짝 카드를 선보이며 정국을 혼돈으로 몰아갔다. 외형상 그의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센편이다. ‘성급하다’는 이유에서다. 문 의원 측근들도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번 행보를 두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 의원이 대선이 4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대권 재도전 시사 발언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알아봤다.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당직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문 의원의 행보에 대해 부정적인 심경을 밝혔다. 그는 “지금의 행보는 득보단 실이 많고, 측근들도 만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 행보를 보이는 것이 의아스럽다” 며 “민주당 내에 내재한 ‘친노-비노’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털어놨다.
참여정부 시절 함께 근무했던 민주당 의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실제로 친노 인사들은 문 의원의 행보에 “성급했다”고 평했다. 대권 도전 의사 시기를 조금 더 늦췄다면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의원 측에서는 정치적으로 상처받는 건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문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시기를 더 늦추더라도 같은 논란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의원의 차기 대권 도전 발언을 봤을 때 이를 접한 민주당 인사들은 ‘설마’라는 의구심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
친노-비노 갈등 점화
정치권에선 문 의원의 행보와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문 의원의 행보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은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시기”라며 “문 의원이 정치활동을 본격화해 나가면서 그 뜻을 알리려는 것으로 해석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친노에선 야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 의원이 북 콘서트를 통해 민주당 지지층 결집과 외연 확대로 당 지도부를 돕고 있다는 논리다.
반면, 비노 측에서는 ‘친노 입지 확보용’, ‘안철수 신당 출범 가시화’로 흔들리는 내부 단속용이라고 주장한다. 친노 그룹 수장의 위치를 유지함과 동시에 지방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이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문 의원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민주당에 대화나 타협을 중시하는 지도부가 들어서 있는데 (정부ㆍ여당이) 전혀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고 발언했다.
문 의원이 새누리당과 청와대를 지적했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지도부가 제대로 투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 때문에 김한길 체제를 비판하고, 당내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짙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당직자는 “문 의원은 지도부에 힘이 실릴 때마다 힘을 뺐던 것을 잘 볼 필요가 있다. 다분히 현 지도부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지방선거에서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는 어떤 계파가 시·구 의원을 많이 배출했느냐에 따라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과 함께 지방선거 이전에 친노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세균 당대표-박영선 원내대표론’이 당내에서 불거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선 행보 ‘배후’ 있다?
이런 논쟁과는 별개로 민주당 내에선 문 의원이 이러한 행보를 결정한 것에 대한 불멘 소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범친노로 분류되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문 의원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렸던 이들이 조언을 했을 것 같다. 지난 대선 당시 보여줬던 모습들이 그러한 사례인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문 의원이 의원들의 요구를 배제하고 일부 인사들에게 의존해 중요 현안을 결정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 의원의 행보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왔다고 알려졌다. 문 의원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문 의원이 시민캠프를 차린 것도 비노 인사들을 모두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민캠프를 앞세워 의원들이 단상에 올라가지 못하게 했고, ‘3철’이 주도적으로 대선 전략을 짜 왔다. 이들이 2선 후퇴한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도 전략그룹으로 활약하면서 문 의원과 친분까지 돈독히 다져 이번 중대 결정에서도 한몫 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는 친노 핵심인사 9인을 뜻하는 9인회가 있었다. 양정철 메시지 팀장, 전해철 기획본부 부본부장, 이호철 후원회 운영위원 등 3철을 비롯해, 김용익 공감2본부 부본부장, 박남춘 특보단 부단장, 윤후덕 비서실부실장, 정태호 전략기획실장, 소문상 정무행정팀장 등이다. 문재인 캠프의 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지목됐던 이들은 문 의원의 인적쇄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선 당시 자진사퇴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자진사퇴 이후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불거졌고, 이번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문 의원의 행보에 이들이 직접적으로 조언을 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지개를 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와 관련해 측근그룹과는 별도로 의원그룹과 상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 의원이 ‘1219 끝이 시작이다’는 도서를 냈을 때도 의원그룹에서 “취재진과 먼저 인사라도 하고 있을 책는 것이 맞다”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박영선·노영민·전해철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러 의견을 종합해 봤을 때 정치권에서는 최근 문 의원의 행보가 차기 대선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역대 대통령의 자숙 기간 등을 봤을 때 문 의원의 행보가 섣부를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 각종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대선 후보급 행보를 한 이상 당내 인사들의 견제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의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대선 패배의 하나였던 ‘친노-비노’ 프레임을 깨기 위한 행보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점도 궁극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며 “결국 비호감인 친노는 스스로 비호감을 자처함과 동시에 ‘공공의 적’이 되길 스스로 바라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