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경험 많아 승산 있는 싸움 기대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16강 현실로 만들 것.”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조 추첨에 참석한 뒤 돌아와 밝힌 첫 마디다. 한국은 러시아, 벨기에, 알제리와 함께 H조에 속하면서 강팀들을 피해 행운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력이 비슷한 팀들이 묶여 물고 물리는 죽음의 조로 떠오르면서 H조 각 팀들의 눈치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 감독은 지난 7일(한국시간) 브라질 코스타두사우이페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조 추첨 행사와 현지 경기장·베이스캠프 답사를 마치고 지난 12일 새벽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이날 홍 감독은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 축구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H조에서 3~4위에 그치는 수준이다. 상대에 대한 분석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하고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또 한국이 조별 예선에서 벨기에(11월 기준 FIFA 랭킹 11위), 러시아(22위), 알제리(26위)와 함께 H조에 편성된 것을 놓고 “세 팀 가운데 만만한 상대는 없지만 ‘죽음의 조’에 들어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지금부터 매일 조금씩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16강 전략에 대해 “기본적으로 한국의 위치는 정확히 판단을 하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팀을 잡겠다는 전략보다는 결국 2위까지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전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지 모두 전적으로 우리의 준비 단계에 달려 있다고 본다. 어떤 준비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월 전지훈련, 3월 평가전, 5월 최종명단 확정까지 연계성을 이떻게 가지고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내파 위주로 1월 전지훈련을 마치고 이후에는 월드컵 본선 전까지 선수들의 합숙지 등을 방문해 꾸준히 점검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부상 선수들을 최소화하고 부상 방지를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 추첨 결과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이번 조 추첨 결과를 놓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은 톱시드에서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벨기에와 같은 조에 속하게 됐다. 포트 2에서는 남미팀을 피해 아프리카의 알제리를, 포트4에서도 네덜란드 같은 강팀을 피해 러시아와 대결을 펼치게 되면서 비교적 무난한 결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한 팀도 독주 체제를 굳힐 수 없어 조 1, 2위를 결정하는 데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특히 각 팀이 서로 해볼 만한 상대라고 전망하고 있고 실제 전력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 조별리그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축구전문가들은 진정한 죽음의 조로 H조를 꼽고 있다. 어느 팀이 승자가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
실제 절대적인 강팀이 3승을 거두고 그 다음 전력을 갖춘 팀이 비교적 약체를 잡고 16강행을 결정지어야 하는데 이번 H조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1승 1무 1패가 나오더라도 16강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올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F조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4승 2패 승점 12를 기록한 나폴리(이탈리아)는 도르트문트(독일), 아스널과 함께 동률을 이루었지만 승자승 원칙에 밀려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다른 조 2위 16강 진출팀 중 나폴리보다 높은 승점을 획득한 팀은 멘체스터 시티(15점)에 불과했다. 결국 잘 싸우고도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더욱이 H조에 속한 각 팀 모두 한목소리로 16강 진출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이들 모두 월드컵 1승의 제물로 한국을 꼽고 있다.
2014년 6월 18일 브라질 쿠이바에서 한국과 본선 첫 경기를 치를 러시아는 조 1위를 자신하고 있다. 이에 한국을 반드시 꺾고 초반 기세를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조 추첨 직후 러시아 언론을 통해 “한국 역시 매우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상대”라고 경계하면서도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대표팀 감독이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줬다”고 밝혀 이미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 수집에 돌입했음을 알렸다. 또 러시아 일간지 로시스카야가제타는 “한국에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보다 빛나는 별이 없다. 하지만 매우 빠르고 좋은 조직력을 갖췄다”며 “한국전은 러시아가 생각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알제리도 한국전에서 승부수를 띄울 계획이다. 바히드 할리호지치 알제리대표팀 감독은 “벨기에, 러시아는 대단하고 경계해야 할 팀이다. 한국 역시 아시아 최고의 팀”이라면서도 벨기에전에 이어 두 번째 경기인 한국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3월 평가전에서 ‘가상의 한국’으로 중국을 선택해 공략 구상에 들어가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벨기에 역시 16강 진출을 호언장담하고 있다. 마르크 빌모츠 벨기에 감독은 “H조가 쉬운 그룹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매우 흥미있다”면서도 “다만 상대팀에 정상급 선수가 없다. 충분히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상대방 실체와
약점 찾기에 혈안
홍 감독 역시 “부족한 부분을 찾아 잘 준비하겠다”며 16강 진출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알제리를 포함한 3팀 모두 강팀”이라며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다.
우선 첫 상대인 러시아는 해외파 선수가 없지만 2018년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본격적인 부흥에 나섰다. 이에 이탈리아 명장 카펠로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기고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결국 러시아는 유럽예선 F조에서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조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특히 공격수인 데니스 체리셰프(세비야) 외에는 러시아 밖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 주로 CSKA모스코바, 디나모 모스크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자국 리그팀의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 모인 만큼 단기간에 조직력을 갖추기에 유리하다. 이는 러시아가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 없이도 유럽에서 월드컵 본선 직행티켓을 따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러시아는 유럽 예선 10경기에서 고작 5골을 내주는 데 그치면서 수비의 견고함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단단한 수비라인의 화룡점정은 골키퍼인 이고르 아킨페예프(CSKA모스크바)다. 아킨페예프는 러시아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예선 10경기 900분을 모두 소화해 냈다. 또 A매치에서도 65경기를 치러 팀 내에서 베테랑 역할을 톡톡히 소화하고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 출신 명장 카펠로 감독이 사령탑에 오르면서 러시아팀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카펠로 감독은 러시아를 맡기 직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었고 AC밀란과 AS로마에서 세리에A 우승을 비롯해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 리가 우승을 이뤄낸 명장이다. 그는 러시아 대표팀을 맡으면서 20대 초중반 선수들을 중용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에 러시아팀은 선수층을 두껍게 확장해 자고예프 등 중심 선수들이 부상해도 기복 없는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러시아는 메이저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낸 적이 없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드컵도 2002년 이후 10년 만이다. 또 국내파로만 구성된 스쿼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두 번째 상대인 알제리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장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알제리는 1980년대 아프리카의 신흥 강자로 주목받으며 탄탄한 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암흑기에 접어들며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본선행 꿈을 이루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더욱이 알제리 대표팀 선수들의 절반 이상이 프랑스 태생으로 사실상 유럽팀에 가깝다. 이는 알제리가 1830년부터 132년간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결국 알제리 대표팀은 아프리카의 하드웨어와 유럽의 소프트웨어를 갖춘 셈이다. 아프리카인 특유의 빠른 발과 유연성을 갖춘 신체조건에 어린 시절부터 익히고 몸에 밴 유럽식 축구를 구사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월드컵 예선 8경기(6승2패)에서 알제리는 16득점 7실점으로 탄탄한 공수 밸런스를 보여줬다.
특히 공격수 이슬람 스리마니(스포르팅 리스본)를 필두로 공격 2선을 책임지고 있는 엘 수다니(디나모 자그레브)와 소피앙 페굴리(발렌시아)로 이어지는 영건 삼각편대가 공격의 핵심이다. 이들은 월드컵 예선에서 팀 득점의 70%나 되는 11득점을 합작해낸 바 있다.
다만 알제리는 전문가들이 H조에서 가장 전력이 약해 조별 리그 탈락 확률이 가장 높은 팀으로 꼽고 있다.
마지막 대결팀인 벨기에는 조 추첨 이후 가장 유력한 조 1위로 평가받고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 4강 멤버들이 팀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유럽 빅클럽 주전으로 성장한 20대 초반 유망주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잘 다듬어진 보석으로 표현된다. 이에 유럽 예선 A조에서 8승2무로 무패 가도를 달렸다.
벨기에는 2002 한일월드컵을 끝으로 메이저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자국 리그가 약한 점을 감안해 10대 기대주들을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 빅클럽으로 파견해 육성하는 방법으로 대표팀 재건에 성공했다. 기량 좋은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벨기에 대표팀은 더블 스쿼드를 구축했고 자연스럽게 경쟁력도 상승했다.
하지만 이런 더블 스쿼드는 약점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벨기에의 최대 약점은 역시 조직력이다. 개인기는 출중하지만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 조직력을 갖추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벨기에 축구는 유럽 축구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지만 남아공월드컵, 유로2012 예선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최근 콜롬비아, 일본과 치른 두 차례 평가전에서 모두 패하면서 설익은 팀워크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브라질 월드컵은 조 추첨을 시작으로 열띤 경쟁에 접어들었다. H조에 속한 한국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팀과 경쟁을 벌이게 됐다. 홍 감독은 “대표팀의 기량이 70% 이상은 올라왔다”고 평가한 만큼 남은 기간 100%의 전력을 이끌어 내야 16강 진출에 승산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현재 상대팀에 비해 객관적인 평가에서 열세에 몰려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월드컵 성적만 놓고 보면 한국이 H조의 최강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홍명보호는 월드컵에서의 경험을 큰 자산으로 이용할 때 월드컵 정글 속에서도 승전보를 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홍 감독이 이끌었던 런던올림픽의 감동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