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끝나지 않은 재계 잔혹사
2013 끝나지 않은 재계 잔혹사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3-12-16 10:26
  • 승인 2013.12.16 10:26
  • 호수 1024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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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감원 한파, 업계 전체 덮치나

<사진=뉴시스>

[일요서울|이범희 기자] 재계가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일부 기업은 총수의 공백이 여전하고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총수만 7명이며 내사가 진행되고 있는 기업도 많다는 후문이다. 이미 재계 31위 웅진그룹, 13위인 STX그룹, 한때 5위였던 동양그룹 등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고, 동부그룹과 LIG그룹, 한진해운 등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60여 년간 경영권을 지켜왔던 대한전선도 바통을 잇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외국계 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본지 2012호 - “줄이고 줄여도…” 입지 좁아진 SC은행]에서 보도한 바 있듯이 SC은행의 철수 움직임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쉐보레가 유럽 시장 철수 의사를 밝힘에 따라 한국GM의 경영도 빨간불이 커졌다. 문제는 이 같은 일련의 ‘재계 잔혹사’와 맞물려 경제 살리기 동력인 기업의 투자에 속속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것과 2014년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대기업 잘못된 관행 바로잡겠다”
검찰 수사 받는 총수만 7명…사정당국 압박 드세

“요새는 회사 가기 무섭다. 재무팀 근무하면서 연말에 이렇게 썰렁했던 건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 A기업 재무담당자

“연말보너스는 옛말이 됐다. 총수의 공백이 내부 분위기마저 조용하게 만들었다. 검찰이 언제 또 들이닥칠지 몰라 긴장 중이다”

- B기업 대관담당자

연말을 맞이해 기업들이 송년회를 하고 있지만 예년 같은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기업은 송년회 자체를 없애는 곳도 있고, 조용하게 치르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13년 재계가 잔인한 시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그룹을 보면 현재로선 흠집이 날대로 났다는 게 정평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2심에서 반전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김승연 한화 회장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은 됐지만 여전히 구속된 상태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분식회계 의혹을 받으며 검찰 수사가 한창이고.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STX 회장, 대표적 사위 경영 현재현 동양 회장의 모습에서도 심각한 경영 리더십의 훼손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웅진그룹은 본업인 학습지 사업에서 출발해 웅진식품, 웅진코웨이 등 생활가전으로 발전하면서 건실한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건설업(극동건설 인수), 태양광사업(웅진에너지)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게 논란이 돼 올 초부터 그룹 와해의 길로 들어섰다.

웅진그룹은 최근까지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주력 계열사 매각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윤 회장의 장남 윤형덕 씨와 차남 윤새봄 씨의 인사발령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장남 형덕 씨는 웅진코웨이에서 웅진씽크빅 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차남 새봄씨 역시 웅진케미칼 경영기획실장 자리를 내려놓을 것으로 알려진다. 웅진케미칼 매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 회장 일가 및 웅진그룹이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웅진그룹은 이르면 연내 법정관리 졸업을 예상하고 있지만 아직은 불투명하다.

▲ 효성그룹의 비자금과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회장이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두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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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그룹도 마찬가지다. STX그룹은 철저히 M&A로 성장한 업체다. 범양상선(STX팬오션), 대동조선(STX조선해양) 등을 인수하며 급성장했다. 그러나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프랑스)를 무리하게 인수했고, 해운업종의 오랜 불황으로 그룹의 주축이자 국내 해운업계 3위였던 STX팬오션 매각이 불발되면서 위기가 켜졌다.

급기야 강 회장은 지난 9월 주력 계열사인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2001년 STX그룹을 출범시킨 지 12년 만이다. 일각에선 채권단이 향후 강 회장에게 일정 롤(Role)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기는 하지만, 옛날의 강 회장 특유의 강단을 다시 볼 수 있을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동양그룹 또한 전통적인 시멘트사업에서 생활가전사업부(동양), 금융(동양증권) 등으로 몸집을 키우는 데 성공했지만 2000년대 중반 레미콘사업이 호황을 누리자 유진그룹과 레미콘업체 인수경쟁을 벌이면서 당시 7000억~8000억 원을 쓸어 넣은 게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사업부문 간 업태가 너무 달라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는 지적도 나돈다. 아울러 최근 문제가 된 동양 사태로 현재현 회장의 경영리더십이 무너지고 말았다. 대표적인 사위경영인이라는 별명이 무색게 됐다. 현재는 동양그룹 해체작업이 진행 중이기도 하며, 주력계열사인 동양생명이 분사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동부그룹과 LIG그룹은 계열사 축소를 위해 막판 뒷심 발휘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동부그룹은 지난 17일 ‘3조원을 조달하는 구조조정안’을 통해 “주력 계열사인 반도체 회사 동부하이텍과 합금철 회사 동부메탈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내년 말까지 총 6800억 원가량의 동부제철 회사채 만기가 차례로 돌아올 예정이어서 자칫 그룹 전체가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최근 잇따른 것이다.

이어서 동부그룹은 2015년까지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을 매각하고, 동부제철이 보유한 인천공장과 당진항만, 동부건설의 동부발전당진·동부익스프레스 지분 등을 팔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준기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1000억 원어치를 동부제철 유상증자 등에 투입하기로 했다. 동부그룹의 전체 차입금 규모 6조3000억 원, 부채비율은 270%다.

성격은 다르지만 구자원 LIG 회장 역시 LIG건설 기업어음(CP) 보상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LIG그룹의 모체기업이자 자산 18조 원 규모의 핵심 계열사인 LIG손해보험을 사실상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LIG그룹에 따르면 구 회장은 자신과 가족이 보유 중인 LIG손해보험(이하 LIG손보) 주식 전량을 매각할 방침이다.

구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가 보유 중인 LIG손보 지분은 21.10%, 1265만7866주다. 19일 종가 기준으로 매각 대금이 3854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경영권을 포함할 경우 매각금액은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LIG 관계자는 “지난주 ‘LIG건설 CP 투자자 3차 피해보상 방안’ 발표 이후 재원 마련 계획에 대한 다양한 문의가 있었다”며 “약 1300억 원에 달하는 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했으나, 확실하고 신속한 자금조달을 위해서 LIG손보 지분매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번 매각이 이뤄지면 구 회장 일가는 지난 50여 년간 경영해 온 LIG손보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이런 사장은 외국계 기업도 마찬가지다. 주요 외신 및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SC은행은 전국 영업점 350곳 중 100여 곳을 점차적으로 줄여 250여 곳만 남기기로 했다. 앞서 SC은행 영업점은 440여 곳이었지만 20%를 축소해 350여 곳이 된 바 있다.

이는 영국 SC그룹 본사의 결정으로 SC그룹은 지난달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이러한 속내를 밝혔다. 리처드 메딩스 SC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 사업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 내 영업점을 25%까지 줄일 것”이라며 “개인금융 영역에서 상당 부분 철수하고 기업금융 관련 사업을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GM)도 ‘쉐보레’ 브랜드 유럽 철수를 선언했다.

쉐보레가 한국GM 주력 수출 시장인 유럽에서 철수하게 되면 인천 공장의 생산 축소는 불 보듯 뻔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부품 업체가 떠안게 된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한국GM이 지난해 국내외에서 모두 80만639대의 완성차를 판매했으나 이 중 유럽으로 수출한 것이 18만7872대라는 점이다.

2015년 말까지 쉐보레가 유럽에서 철수하기 시작하면 연간 판매량의 23.5%가 줄어들 판이다. 한국GM의 338곳 협력사 가운데 60여 개 업체가 집중돼 있는 인천은 그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한국GM의 4개 공장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부평1공장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자리 있는 지역 협력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엄중한 잣대 업계 옥죈다 ‘논란’

문제는 이 같은 일련의 ‘재계 잔혹사’와 맞물려 오너의 수난과 경영 위축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 바로잡겠다”말이 재계를 더욱 위축시킨다는 평도 난무한다. 일가에선 이와 관련된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뾰족한 답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가 불미스러운 일로 이득을 취했다면 엄정한 법의 잣대가 적용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견이 없다지만, 국내 경제와 기업을 이끌어야 하는 ‘오너경영’기업 입장에선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라며 “총수의 잇단 수난이 기업경영 위축과 투자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정부의 지하경제 근절 분위기에 오너들이 더 엄격해진 법의 잣대에 놓인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 스스로 투명경영을 하고 과거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활로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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