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학으로 보는 한반도정세 관전법
제왕학으로 보는 한반도정세 관전법
  • 박형남 기자
  • 입력 2013-12-16 10:21
  • 승인 2013.12.16 10:21
  • 호수 1024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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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가지 장성택 제거하며 백두혈통 부각

‘장성택 처형’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진행된 북한 절대권력 2인자 사형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의 발생 배경과 주도 인물은 누구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숙청이 결정된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2일 열린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사형당했다고 13일 밝혔다. 통신이 밝힌 장성택의 혐의는 공화국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근거했다는 것.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칭호를 받으며 공식석상에 등장한 2010년 9월 28일의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를 언급,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해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고 비난하며 장성택이 이미 오래전부터 노골적인 ‘불경죄’를 저질러 왔음을 시사했다. 불경을 저지른 괘씸죄로 국가전복음모행위라는 김정은 역린(逆鱗)을 건드린 죄로 그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석상에서 체포될 때 결정서에 적시된 반당 혐의 외에 ‘무엇’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폐쇄적인 정치구조 탓에 김정은 1인 지배 체제를 굳히려는 권력 강화설, 핵개발 정보를 쥔 장성택 측근 망명 촉발설, 비자금 다툼, 은하수관현악단 스캔들 그리고 강경파 요구설까지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집권을 도운 ‘개국 공신’이 하루아침에 대역 죄인으로 토사구팽 신세가 된 것을 설명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미 2010년 9월 28일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북한 권력체제서 김경희 역할 주목해야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된 수순에 따라 진행된 권력투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시 이 신문은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씨 일가의 가족권력 유지’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통해 “권력유지를 위한 김정일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김경희의 인선”이라며 그녀의 부상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신문은 “정치는 김씨 패밀리의 가업(家業)으로, 이 일을 유지하느냐 여부가 김 패밀리의 지상 최고 과제”라며 “군사 경험이 전무한 김경희를 4성(星) 대장으로 임명하는 등 새로운 직책 부여는 당보다 ‘핏줄’이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의 김정은 권력세습 공동후견인 역할을 예상하면서도, “김경희의 승진은 장성택이 너무 야심을 키우는 것을 견제하는 균형추 목적도 있다”고 해석해 2년 뒤인 지금 당시 예측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2년 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전 일본 방위상도 저서에서 “김정일이 ‘김경희는 나 자신과 마찬가지이다. 김경희의 말은 곧 내 말이며, 김경희가 내린 지시는 곧 나의 지시’라고 말했다”고 소개한 내용은 김경희 위상을 보여준다. 노동당 경공업부장으로 광산 등을 관장하는 김경희가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내가 죽으면 장씨는 김씨 집안이 아니다”고 했다는 말은 김씨 일가 백두혈통 핏줄을 강조한 것으로 장성택에게 줄 서지 말라는 경고로 풀이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생전에 ‘성골’인 친정 조카 김정은의 권력기반 공고화를 완성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개를 때려도 먼저 주인을 돌아보고 때린다’는 말이 있듯이 김정은도 고모부인 장성택 거취를 놓고 백두혈통의 지존(至尊)인 고모 김경희의 묵인 없이는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진단이다.

장성택 숙청을 발표한 지 이틀이 지난 1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혁명에는 혈통이 있다’며 이른바 ‘백두혈통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일성 피를 이어받은 김정은 만이 지도자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김일성 사위인 장성택이 2인자로 장기간 군림한 친인척이라도 정통성을 갖지 못한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에는 자기의 근본이 있고 혈통이 있다”는 노동신문의 주장은 장성택에 대한 분명한 피가름 형식의 단죄다.

장성택 처형을 발표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 번 바뀌여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라며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 위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성택 숙청’ 배경에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남북은 박정희 김일성 이라는 두 통치자 딸들의 감성정치가 지배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개성공단 폐쇄와 재가동을 놓고 북한측이 오락가락한 것도 김정은보다 숨은 권력자인 김경희 정치스타일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딸들의 대결

두 사람 모두 통치자의 딸로서 부친이 못다 이룬 과업을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 것이다.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민주화의 터전을 제공한 박정희와 기근에 시달리게 한 김일성의 대조적 리더십은 두 딸에게 멍에이자, 족쇄이다. 체제경쟁이라는 1라운드에서 판정패한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두 딸들의 전쟁은 또 다른 경쟁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경쟁하는 두 딸들은 보이지않는 가운데 치열한 심리전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김일성을 이긴 여자 김경희가 누구인가. 절대 통치자였던 아버지 김일성에게 순종하지 않는 딸이었던 그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김경희는 장성택을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김일성은 한사코 딸의 결혼을 말리다 원산공과대학으로 장을 전학 보냈지만 결국 김경희의 마음을 꺾지 못하고 결혼을 허락한다. 이때 김정일이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몸져누운 여동생을 위해 아버지를 설득해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전한다.

대찬 김경희와 장성택은 결혼 후 딸 장금송을 낳았지만 프랑스 유학 시절 결혼을 반대하는 장성택 부부에게 맞서 저항하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던 자신의 업보였던가. 아버지 김일성을 이기며 장성택과 결혼한 김경희는 딸을 잃은 상실감 등으로 오랫동안 우울증과 알코올에 의존했다고 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숱한 염문을 뿌린 남편 장성택에 대한 배신감과 딸의 자살로 순탄한 결혼생활은 파경을 맞았고 김경희는 김정일이 죽은 뒤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김경희로서는 친정인 김씨 왕조의 김정은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장성택의 몰락은 김경희가 장씨냐 김씨냐는 성골과 진골의 선택에서 성골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단을 내린 결과라는 것이다.

허구로 드러난 김-장 부부 수렴청정

김정일 사후 그동안 고모부인 장성택과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가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김정은 체제 안착을 위해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섭정(攝政)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경희 부부가 정책 조언을 하는 등 수렴청정하는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가 뜰 수 없으며 대권은 부자간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제왕학(帝王學)의 본질을 웅변으로 보여줬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완벽하게 확립되면 숙청 1호가 장성택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장성택의 속전속결 처형으로 확인 된것이다. 백두혈통의 뿌리인 김일성과 김정숙을 부모로 둔 네 살 터울인 김정일과 김경희 남매의 각별한 남매관계는 김정은 보위 유지와 백두혈통 ‘성골’의 승리로 일단락된 셈이다.

<박해동 언론인>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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