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수료·보험료·교통비 빼면 남는 돈 없어
경쟁은 심한데 대리비는 점점 낮아져
지난 28일 서울에는 한파가 찾아왔다. 해가 지는 저녁이 찾아오자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퇴근을 서두를 무렵인 저녁 6시 30분. 박모(29)씨는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박씨는 인근 먹거리 촌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이지만 벌써부터 술에 취한 손님들이 눈에 띈다.
박씨는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남성이 자동차 키를 들고 나오더니 박씨에게 자동차 키를 넘겼다. 박씨는 대리운전 기사다. 이제 겨우 대리운전 기사 3개월 차에 들어선 그는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핸드폰 대리점 사업 접고 대리 기사 시작해
박씨는 현재 결혼해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를 하기 전에는 서울 시내에서 핸드폰 대리점을 운영했었다. 하지만 고객들의 잦은 클레임과 판매 부진 등으로 대리점을 접어야 했다. 빚을 내 오픈한 대리점이 문을 닫자 박씨에게 돌아온 것은 빚 6000만 원뿐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없어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6000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갚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개인파산 신청을 하게 됐고 부인과는 서류상 이혼을 하게 됐다.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매일 저녁 6시면 집을 나선다. 박씨는 “다행히 집 근처가 먹거리 촌이라 나오자마자 첫손님을 쉽게 잡긴 하지만 그래봐야 하루에 많아야 고객 5~6명 정도를 태운다”고 말했다. 박씨의 하루 수입은 많아야 7만 원 내외다. 여기서 20%의 수수료를 떼고 밤중에 이동하는 교통비를 제하면 사실 남는 돈은 5만 원 정도다. 이 밖에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든 보험료로 한 달에 9만6000원이 나가는 것을 감안하면 큰 돈벌이는 못 된다.
박씨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대리비가 점점 낮아져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며 “이렇게 벌어서 6000만 원에 이르는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지금 당장은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당분간은 계속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보타워사거리 일대 대리운전 기사들의 허브
박씨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바래다 준 뒤 강남에 있는 교보타워 사거리로 향했다. 신논현역이 있는 이곳은 대리기사들에게 터미널, 공항, 허브 같은 지역이다. 서울 북부와 남부 등의 대리기사들은 이곳에 모여 콜을 기다리다가 손님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과 추위를 목도리 하나와 장갑으로 버티는 대리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추위 속에서도 콜이 뜨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리기사들에게 피크타임은 10시 전후다. 직장인들이 퇴근해서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보통 10시쯤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최대한 많은 손님을 받아야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대부분 휴대전화를 통해 콜을 확인하기 때문에 대리기사들은 커피를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콜을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휴대전화를 두 개 세 개씩 갖고 다니는 대리기사도 있을 정도다.
교보타워 사거리에는 대리기사들 말고도 이들을 태우고 이동하기 위한 승합차와 버스도 대기하고 있었다. 일부 승합차는 학원로고를 달고 있었다. 낮에는 학원버스로 운영하고 밤에는 대리기사들의 셔틀차량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운영되는 승합차들은 모두다 불법이다. 보통 대리기사들이 한 번에 3000원 정도의 교통비를 내고 이용한다. 대리기사 수를 감안하면 셔틀차량 기사들의 수입도 짭짤한 편이다. 11월 초에는 이렇게 불법으로 셔틀차량을 운전하던 기사 53명이 유상운송혐의로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피크 시간인 10시가 되면 동시 콜이 500건에서 1000건까지 올랐다 12시가 넘어서면 급격히 줄어든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예전과 달리 대리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성 대리기사 70대 대리기사까지 있어
대리기사 중에는 여성 기사도 많다. 한 여성 대리기사는 “술 취한 진상 손님을 만났을 때가 가장 힘들다. 조용히 자면 상관없지만 치근덕대기도 하고 주정을 부릴 때도 있어 난감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 술 취한 손님들이 대리기사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어려운 경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대리기사를 선택한 만큼 묵묵히 일하는 기사들이 많다.
박씨는 “대리기사 중에 의외로 나이가 드신 분도 많다. 60대는 물론 70대 어르신들도 대리기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길거리에서 종이를 주워 파시는 것보다 조금은 힘들기는 해도 대리기사를 하는 편이 수입이 훨씬 낫기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12시를 지나 2시가 넘어서자 박씨의 스마트폰을 울리던 콜 알림소리도 잦아들었다. 많아야 한두 콜, 그것도 단거리에 비용이 적어 택시기사들 사이에 소위 ‘똥콜’이라 불리는 쓸데없는 콜뿐이다.
박씨가 집으로 떠나고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교보타워 사거리 일대를 떠나지 않는 대리기사도 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최모씨는 담배를 피우며 조용한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집에 가기 전 한 콜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씨의 휴대전화는 간간이 똥콜만 뜰 뿐이었다.
최씨는 “대리기사로 큰돈 벌 때는 지났다. 돈 버는 사람들은 대리운전 회사뿐이다. 보통 수수료가 20%다. 대리비 한 건당 최소 1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하루에 총 1000콜 뛴다고 하면 그들이 가져가는 돈은 200만 원이다. 결국 돈은 대리운전 회사가 다 가져가는 거다”라며 씁쓸해 했다. “일하는 사람 따로, 돈 버는 사람 따로 있다”는 최씨의 말이 추운 날씨와 함께 가슴을 더욱 시리게 만든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