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타계
‘행동하는 양심’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타계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3-12-09 11:16
  • 승인 2013.12.09 11:16
  • 호수 1023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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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는 정의로운 거인…이 시대의 위대한 빛이 졌다”

[일요서울Ⅰ이지혜 기자] 민주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지난 5일 오후 8시 50분께 요하네스버그의 자택에서 9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넬슨 전 대통령은 인종 차별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으며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는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해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다.

남아공 민주화의 살아있는 역사… 전 세계 애도 물결
흑백차별 맞서다 27년 옥살이,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

백인 정권에 폭압적인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현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이끌며 27년 동안 옥고를 치렀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타계했다. 만델라는 백인을 포용해 차별 없는 남아공을 만들기 위해 앞장섰으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로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며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다.

어릴 적 이름 ‘장난꾸러기’
결혼 피해 위장 취업 시도

만델라는 1918년 7월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주 음베조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의 꿈을 길러 왔다. 어린 시절 이름은 룰리훌라훌라 만델라로 이는 말썽꾸러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넬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만델라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망한 뒤 템부족 왕을 후견인으로 삼고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생 만델라는 학교에서 주는 급식에 불만을 품고 투쟁을 벌이다가 정학을 당하게 됐다. 이 소식을 접한 후견인은 그가 너무 과격하다고 여겨 투쟁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만델라가 뜻을 굽히지 않자 강제 결혼을 시키려 했다. 이에 만델라는 강제 결혼을 피해 친구 올리버 탐보와 함께 도망가 위장 취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견인에게 들킨 만델라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기로 결심하고 이곳에서 월터 시술루를 만나게 된다. 만델라와 시술루, 탐보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고 ‘ANC청년동맹’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그는 34세에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사무소도 설립했다.

“나는 조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시련이 찾아왔다. 1952년 흑인 저항운동을 벌이다가 처음으로 체포됐으며 1960년 백인 정권이 ANC를 불법조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만델라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권의 삼엄한 감시를 받던 만델라는 1962년 내란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만델라는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다”며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으며 이를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최후 진술했으며, 이 진술은 흑백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의 상징적 연설이 됐다.

그러다 1990년 남아공 정부가 국내 및 국제적인 반발 덕분에 인종차별 정책을 철폐하면서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를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1993년 만델라는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인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76세의 나이로 최초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단합된 국민으로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화해와 국가 건설을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한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압제와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후 만델라는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은 사면하는 등 흑인과 백인의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는 1995년 방문했으며 당시 서울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만델라는 어린이재단, 만델라재단 등을 통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퇴치 활동 및 어린이 교육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에 유엔은 2009년 11월 만델라의 생일인 7월 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지정했다. 만델라가 67년 동안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한 정신을 기리고 세계 만인이 하루 중 67분을 할애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만델라는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돼 병원에 입원했다가 9월에 퇴원한 후 자택에서 의료진의 치료를 계속 받아왔다. 그는 이미 고령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2011년부터 여러 차례 입·퇴원을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지난 5일 타계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인물을 잃었다“

만델라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추모의 뜻을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만델라는 정의로운 거인이었고 우리에게 감화를 주는 소박한 사람이었다”라며 “신념을 갖고 꿈을 꾸며 정의와 인류애를 지향한다면 세계와 사람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의 도덕적 힘은 남아공의 흑백분리 정책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용기 있으며 매우 선한 인물 한 명을 잃었다”라며 “만델라는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냈다”고 애도했다. 그는 이어 “내가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 시대의 위대한 빛이 졌다”며 “만델라는 우리 시대의 위인이자 신화였고 세계의 진정한 영웅이었다”라고 애도했다.
만델라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오늘 세계는 가장 중요한 지도자이면서 가장 훌륭한 인간을 잃었다”면서 “역사는 만델라를 인간 존엄과 자유의 대변자뿐만 아니라 평화와 화해의 수호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긴 투옥 끝에 석방된 만델라를 백악관으로 처음 초청했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특권임을 알게 해줬던 위대한 인물의 죽음에 아내와 나는 애통해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자신을 가둔 교도관까지 용서한 만델라의 능력은 위대하다”고 전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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