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경실련, 달개비식당서 만난 까닭
박원순 서울시장-경실련, 달개비식당서 만난 까닭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3-12-09 10:00
  • 승인 2013.12.09 10:00
  • 호수 1023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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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 시민세력 접촉 ‘집안’ 단도리 들어가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박원순 서울시장의 재선가도에 빨간등이 켜졌다. <본보-KS> 서울시장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다른 조사에서도 박 시장이 정몽준, 김황식 여당 후보에게 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지방선거 6개월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특히 안철수 신당 후보 출마설이 흘러나온 10월 중순 이후부터 지지율이 급속도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박 시장은 ‘안철수 끌어안기’와 더불어 우호적인 지지 세력 챙기기에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지난 11월 초 박 시장은 자신의 친정인 참여연대와 함께 한국 시민운동사의 한 축인 경제정의실천연합 소속 고위 인사들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만났다. 형식은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밥 먹는 자리’라고 하지만 이를 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다르다. 박 시장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 11월초 공동대표, 前상집 위원장과 식사 주최

▲ <뉴시스>
“밥 먹고 농담한 자리.”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련한 식사 자리에 참석한 경실련 고위 인사의 말이다. 지난 11월초 박 시장은 평소 친분이 있는 경실련 임원들을 서울 정동의 한정식 전문인 ‘달개비식당’으로 초대했다. 달개비식당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회동하면서 유명해진 식당이다. 박 시장의 취지는 ‘밥 한번 먹자’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는 경실련 공동대표인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그리고 상임집행위원이자 경실련 산하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미화 변호사가 참석했다.

이 식사 자리에 참석한 경실련 인사는 “박 시장이 참여연대 NGO 출신이고 평소 개인적 친분이 있어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이 와서 참석했다”며 “오랜만에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고 만남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어 이 인사는 “박 시장이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어 시민단체인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거나 지지를 우리가 해줄 수도 없는 입장”이라며 “경실련이 1989년 출범했고 참여연대가 1995년에 생겼으니 시민단체에 형과 아우로서 박 시장과 얘기를 나눈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박시장 먼저 요구

하지만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시장에게 우호적 세력에 대한 단도리 차원에서 만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특히 경실련은 참여연대 출신이 서울시장을 맡았지만 그동안 시 예산 관련 문제 제기를 하면서 견제와 비판을 해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그럼에도 경실련과 참여연대는 한국 시민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공통점이 있다.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 시민운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걸어온 길을 보면 단순한 경쟁 관계를 넘어 정권에 따른 부침을 해 왔다.

경실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한 문민정부 시절 크게 명성을 날렸다. 경제 전문가와 진보적 영남 지식인들이 뭉쳐 만든 경실련은 ‘토지 공개념’을 노태우 정부 정책에 반영시키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영삼 정부 시절 경실련 스스로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꼽는 금융실명제를 성사시켰다. 금융실명제는 경실련이 직접 안을 만든 것을 김영삼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또한 부패방지법, 부동산 실명제, 정치자금 실명제, 한국은행 독립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이로 인해 경실련 출신 인사들이 김영삼 정부 이후 정권의 핵심 부서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박 이사장은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참여정부 때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전 우석대 총장,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MB 정부 시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경실련 간부 출신이다.

박원순 vs 이석연 끈질긴 ‘악연’

반면 사회 부조리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를 주로 하던 참여정부는 변호사 출신의 호남 지식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참여연대는 이슈의 한가운데 있었다. 옷 로비 사건의 진상 규명 요구부터 소액주주 운동을 필두로 2000년도에는 특정 후보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낙천·낙선 운동을 벌여 정치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참여연대 출신은 경실련 출신에 비해 주류 편입된 인사는 적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김기식 민주당 의원 등이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참여연대와 경실련 하면 떠오르는 인사가 바로 박 시장과 전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다. 둘은 공교롭게도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에 출마해 경쟁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이석연 변호사가 중도 사퇴하면서 전면전은 피할 수 있었다. 박 시장과 이 변호사는 작금의 한국 시민운동을 태동시키고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변호사는 1994년 경실련에, 박 시장은 1995년에 참여연대에 들어가 활동했다.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상징하는 두 사람이 처음 부딪친 것은 12년 전인 2001년 9월 17일 대토론회장이었다.

화두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참여연대가 벌인 낙천·낙선운동으로 이 변호사와 박 시장이 정면 충돌했다. 당시 이 변호사는 “시민단체의 직접적 정치참여는 시민운동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박 시장은 “(참여연대가) 정치세력과 유착됐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이 변호사는 박 시장이 이끌던 참여연대의 초법화와 관료화를 비판했고 박 시장은 경실련이 상업 저널리즘을 이용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박 시장은 진보진영과 함께하면서 민주당과 정치인생을 함께하고 있고 이 변호사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초대 법제처장을 맡으면서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갈등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박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직후에도 경실련과의 충돌은 계속됐다. 경실련은 시장에 당선된 이틀 후인 10월 28일 성명서를 내 “박 시장은 시민운동을 이용하거나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며 “시정운영에서 시민운동과의 관계 정립을 분명하게 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특히 경실련은 “이제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가 아닌 정치가다”라며 “시민운동가와 서울시장의 역할 또한 분명히 다르다”고 충고했다. 이후에도 경실련은 ‘박원순 시장 서울형어린이집 특별활동비 요구’, ‘박원순 오세훈도 안 했던 토목 사업 추진’, ‘박원순 시장 부동산 과표 정상화를 위한 공개 질의’등 서울시 예산과 시정과 관련해 견제와 비판을 해왔다.

“같은 식구끼리…”  경실련 관계회복 나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 박 시장이 경실련 고위 인사들을 만나 단순히 ‘식사한번 하고 농담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최근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여당 후보에게 두 자릿수 차로 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데다 안철수 신당 후보로 이계안 전 의원이 거론되는 등 재선 가도에 부정적인 예측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 예산과 시정을 견제하는 경실련과의 관계 악화는 ‘같은 식구’한테 매를 맞는다는 점에서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권에선 박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보육과 교육자치, 자치경찰제와 관련해 경실련이 전면에 나서 비판에 대한 우려감 해소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경실련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원을 호소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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