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콩나물 시루같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고무된 표정이었다. 어두컴컴한 클럽내부는 화려한 사이키 조명과 고막을 찢는 음악소리 때문에 정신이 ‘멍’해질 정도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음악에 취한 듯 정신없이 몸을 흔들며 자신만의 시간을 철저히 즐기고 있었다. 자정을 넘어서자 분위기는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다. 특히 분위기를 주도하는 DJ는 거의 교주와 다름없어 보였다. 클럽에서 인기있는 음악들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DJ의 랩 한 소절, 단어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곳곳에서는 연신 아이스 스모그가 터져나오고 한껏 흥에 도취된 DJ는 갑자기 물을 뿌려대기도 했다.
·클럽엔 겨울이 없다·
클럽안에서 몸을 흔드는 사람들의 옷맵시는 연예인과 다름없다. 화려하고 멋진 스타일로 몸을 치장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여성이 유난히 눈에 확 들어왔다. 가슴선과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원색 톱으로 한껏 멋을 부린 그녀는 음악에 걸맞는 춤을 자유자재로 구사해냈다.좀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않고 즐기는 홍대클럽이라고 하지만 멋진 외모에 수준급의 춤솜씨를 뽐내고 있는 그녀가 뭇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스탠드바 근처에서 현란한 춤을 추다 내려와 담배를 입에 무는 그녀를 간신히 붙잡았다“더워 죽겠어요. 클럽에 겨울이 어딨어요.” 아슬아슬한 톱에 타이트한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고 열광적으로 춤을 추던 애리(22·가명)씨의 말이다. “30분간 쉬지 않고 추다가 처음 쉬는 것”이라는 그녀는 “속옷까지 다 젖었다”며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커다란 링귀고리에 메탈팔찌 등으로 장식한 애리씨는 상당한 미인으로 모 전문대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코와 배꼽에 요란한 피어싱을 한 애리씨는 “옷차림이 멋지다”는 기자의 말에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가볍게 받아쳤다.실제로 클럽 안의 여성들은 한겨울임에도 탱크톱에 힙과 허리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골반바지를 입은 여성들 일색이었다. 섹시모드가 단연 으뜸.클럽내에는 연예인만큼이나 출중한 외모와 세련된 맵시를 자랑하는 남녀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또 한쪽 구석에서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서너명이 춤을 연습하느라 한창이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동안 연마한 새로운 춤을 선보일 때면 그들끼리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주며 분위기를 돋우었다.애리씨와 대화를 하며 클럽의 분위기를 파악하던 중 기자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부비부비춤·
어디서 나타났는지 춤을 추는 여성의 뒤에 몸을 밀착시키는 한 남성이 포착된 것이다.헐렁한 티셔츠에 힙합바지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남자는 등을 훤히 드러낸 채 춤을 추고 있는 여자의 뒤에 바짝 붙어서서 조금씩 몸을 흔들었다.‘저러다 뭔일 나지’했던 기자의 우려는 처절하게 빗나갔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있는 남성을 쳐다본 여자는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어보였던 것.애리씨는 그런 광경에 익숙한 듯 “여기서는 호감이 가는 이성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촌스러운 짓을 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였다. 애리씨는 “저렇게 여자가 웃어보일 경우 마음에 든다는 뜻”이라며 “지금 저들이 추는 것이 일명 부비부비춤”이라고 설명했다. ‘부비부비’란 ‘부빈다’는 우리말에서 나온 것으로 여성의 엉덩이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켜 추는 춤을 의미한다. 서로의 민감한 부분을 부비며(?) 추는 춤이기에 에로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은 당연지사.얼마전부터 클럽을 찾는 남성들 중에는 마음에 드는 여성의 뒤에서 몸을 밀착시키며 대시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았는데, 여성들은 상대의 물(?)을 확인한 후 대시에 응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남성이 몸을 밀착시켜올 경우 가볍게 몸을 털어 피하거나 고개를 내저으면 웬만해서는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 애리씨의 말이다. 또 설령 거부당한다해도 이 공간에서는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무언의 허락(?)을 받은 남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양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잡고 음악에 맞쳐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여자는 조금의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자는 앞을 응시한 채로 한 손은 남자의 목을, 나머지 한 손은 남자의 엉덩이를 감싸는 자세로 춤을 췄다. 둘의 움직임은 점점 격렬해져서 마치 한몸이 된 듯 리듬을 타고 동시에 움직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부비부비 춤을 눈앞에서 목격한 순간이었다. 생전 모르던 남녀가 몸을 밀착시킨 채 노골적으로 비벼대는 모습은 마치 외국 뮤직비디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에로틱한 광경이었다.애리씨는 “조금만 지켜보면 알겠지만 얼굴, 몸매, 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일명 퀸카급 여성 주위에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남자들이 들끓는다”며 “우리들 사이에서는 부비부비해 온 남자가 몇 명이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매미질·
대학생 장현수(25·가명)씨는 자타공인 클러버(클럽문화 마니아)다. 클럽은 보통 오후 7~8시면 문을 열지만 그가 클럽에 발을 들여놓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다. “초저녁에는 모범생이나 초짜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놀 줄 아는 애들이나 골수 클러버들은 보통 12시가 넘어야 온다”는 그는 “피크타임은 밤11시~새벽 3시”라며 웃었다. 특히 2001년부터 생겨난 ‘클럽데이’는 클럽을 대중화시키는데 한몫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에 열리는 클럽데이는 홍대앞에 위치한 10여개의 클럽들을 1만5,000원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이다. 이미 클럽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월례 행사가 됐다. 그러나 정작 장씨는 “나는 클럽데이에는 홍대클럽을 찾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뜨네기’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춤출 때 서있을 자리도 없고 숨막힌다”며 “인기있는 클럽의 경우 밖에서 족히 50m는 줄을 서 기다리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클럽이 나이트화 되고 있는 것이 너무 짜증스럽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초창기의 클럽에는 단지 음악과 춤을 좋아해 즐기려는 순수한 목적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들어 점차 부킹이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그는 클럽을 드나들다 보면 순전히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을 보거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틈을 타 신체접촉을 바라고 오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부비부비춤에 대해서도 그는 “마음에 드는 사람과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나도 곧잘 즐기는 춤”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에는 오직 저질스런 신체 접촉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나 여자에게 집적거리는 모습은 정말 보기 안좋다”고 꼬집었다.
특히 장씨는 “남자들의 대시를 즐기는 여자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개중에는 매미질이나 하러 가자며 클럽을 찾는 남자들도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매미질’이란 부비부비춤에서 남녀가 서로 붙어있는 포즈에서 나온 용어로 부비부비춤을 추며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은어. 장씨는 “아무리 남 의식 않고 즐기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볼 때마다 아무하고나 비벼대고 있는 일부 죽순이들은 따가운 시선을 받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홍대 클럽문화도 점차 변하고 있다. ‘클러버’들의 춤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았던 홍대앞 클럽문화가 ‘타락이냐’, ‘발전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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