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달 회고록] 5共 비화(秘話) #12 1981년 이흥수 의원 돗자리 사건
[권정달 회고록] 5共 비화(秘話) #12 1981년 이흥수 의원 돗자리 사건
  • 고동석 기자
  • 입력 2013-11-25 14:09
  • 승인 2013.11.25 14:09
  • 호수 1021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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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요술에 걸린 5공화국 11대 국회 문공위
▲ 일본을 방문 중인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이 1981년 8월 20일 일본 수상관저를 방문해 스즈키 젠코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상대에게 부드럽고, 자신에게 서릿발같이 하라’는 말
 
1981년 제11대 국회 초기 8월경. 학자 출신의 리처드 워커 주한 미국대사가 나를 찾아와서 미국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5공 초기 당 안팎의 바쁜 일정 속에 내가 미국에 가서 특별히 해야 할 역할이 생각나지 않아 일단 거절했다. 
 
워커대사의 의도는 정부 여당의 실력자인 사무총장으로서 12·12사건과 5·19 사태로 한미관계가 좀 껄끄러운 상태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여당인 민정당 지도부가 미국의 의회나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 우호관계를 다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워커  대사가 여당의 사무총장인 나를 친미 인사로 만들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본다. 사실 당시 한미관계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계통과는 협조가 괜찮았지만 미 행정부와 의회와는 좀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에 미 대사의 그런 제의가 있다고 생각해 며칠 후 청와대에 들어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당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미 대사의 방미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은 “거절할 게 뭐 있느냐. 정당(국회) 차원에서 한 번 다녀오도록 하라”고 했다. 
 
청와대를 나와서 워커 미 대사에게 적당한 시기에 미국을 가겠다고 얘기를 해놓고, 민정당 의원을 중심으로 의원외교단을 구성해 일본-멕시코-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그해 8월 20일 김포공항에서 일본 도쿄발 항공기에 올랐다. 김윤환 의원(당시 한일의원연맹 간사), 이한동 의원(당 총재비서실장), 봉두완 의원(당 대변인), 정휘동·김정남·이낙훈 의원 등이 동행했다.
 
일본에 가서는 자민당 다케시다 노부루(竹下登, 뒤에 총리 지냄) 총무회장,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정조회장(외상 지냄, 현 아베 신조 총리 부친), 사쿠라 우지(櫻內義雄) 간사장(중의원 의장 지냄)을 예방하고 민정당과 자민당 간의 긴밀한 우호관계를 갖고 야당인 민주사회당과 공명당도 방문해 일본 여야 당의 교류도 가졌다. 
 
 
   
▲ 1981년 8월 20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이 이끄는 의원외교단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자민당 아베 신타로 정조회장과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오른쪽)<연합뉴스>
 
 
일본 정계 실력자들 만나 한일 친선교류
 
당시 일본 총리였던 스즈키 젠코(鈴木善行)를 예방한 자리에서 내가 “한일 양국은 가장 긴밀한 관계가 돼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생각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니 거리도 가깝고 마음도 가까운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스즈키 총리도 “공감한다. 양국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자”며 “일본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지방정부나 민간기업은 여유롭게 잘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재정문제 등 여러 가지로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 당시 일본 정계의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비리사건으로 물러나 정치적으로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당내 영향력만은 건재했다. 우리는 다나카 전 총리 사저도 방문했다. 다나카 전 총리는 일본 정계에서 가장 큰 계파를 거느리면서 큰돈을 모아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설에는 그의 집에 가면 앉는 방석 밑에 돈을 묻어두고 있다가 찾아오는 정인들에게 돈을 세지도 않고 집어준다는 말도 있었다.
 
일본 정계 인사와 가까이 지내는 이상구 공사의 안내로 다나카 집을 찾았다. 그는 우리 일행을 아주 부드러운 태도로 반가이 맞아주었다. 일본 최고 거물 정치인 집은 목재로 적산 가옥같이 허름했고 방안에는 작은 탁자와 방석을 내놓고 다 낡아서 털털 거리는 고물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한국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이날 같이 갔던 이상구 공사가 일본 정계 인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일본 정치인들이 이 공사에게 매달려 이런 저런 부탁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또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자민당 제2계파)의 계파 사무실도 찾았다. 그 사무실도 공간은 40평 정도 되어 보이는데 거기도 사무실 내부가 검소하기 그지 없었다. 이때 같이 갔던 사람 중에 모리 요시로(森喜朗) 의원(뒤에 총리 지냄)이 있었다. 후쿠다는 요시로에게 “모리 꿍”이라고 부르면서 묵필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우리 일행은 후쿠다가 붓글씨로 쓰는 지정된 자리로 가서 모두 둘러 앉아 있었다. 그는 붓글씨를 작은 족자로 만들어 내게 주었는데 그 내용이 ‘春風接人-秋霜克己-爲 權正達 事務總長 福田’(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와 같이 엄격하게 하라)는 문구였다. 정치인에게 주는 교훈적인 것이어서 감명 깊게 받았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당시 후쿠다파의 2인자(프린스로 칭함)는 아베 신타로였다. 그는 당시 정조회장으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사위였다. 
 
저녁에는 아베 신타로 자민당 정조회장이 우리를 만찬에 초대했고 친선의 장에 모리 총리도 참석했다. 우리 측의 이한동 총리도 참석해 두 사람이 체격도 비슷하게 중후하고 성격도 호탕한 편이어서 장래 양국의 총리가 술자리에서 팔을 걸고 건배하면서 어울렸던 자리가 됐다. 뒤에도 두 사람은 친한 사이로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다음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거쳐 멕시코로 갔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볼데오(호세 로페스 포로틸로 파체코)라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볼데오 대통령 관저로 예방한 자리에서 자개로 된 문갑을 선물로 가지고 가서 주니까 기쁘게 받으면서 이 선물을 딸에게 줄까, 아니면 며느리에게 줄까 고민이라면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국회의원과 장관들을 만나 회의와 만찬을 하면서 한국-멕시코 간의 친선을 약속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멕시코 볼데오 대통령의 초라한 망명
 
당시 볼데오 대통령은 우리를 만난 자리에서 멕시코를 선진국으로 부흥시키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50억 달러의 치부가 드러나 대통령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얘기로는 당시 멕시코에서는 ‘대통령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멕시코에는 유전이 있어서 석유회사를 국유화해 중질유를 생산 가공하는 석유회사에서 대통령에게 주는 세금 비슷한 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멕시코에는 권력자의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권력자들은 큰 저택에 사병까지 거느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으로 가서 처음 간 곳이 미주리주립대학으로 교수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 정치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이 대학에는 전남 승주 출신의 조순승 박사(뒤에 제13, 14대 평민당-국민회의 소속 국회의원 지냄)가 교수로 있어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미네소타주의 미니아폴리스로 이동해 미 상원의원이 정치모금을 하는 현장을 참관했다. 거기서 1만 달러(1인당 식사비)에서부터 1000 달러, 500 달러, 100 달러짜리 테이블 자리(조자, 오찬)를 마련해 놓고 많은 사람을 모아 정치모금하는 것을 구경했다. 그들은 모금한 돈을 정치자금 통장에 입금하고 바로 공고-등록하는 투명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이 정치자금 모으는 방식과 그 현장을 한국 정치인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지지자가 많으면 정치모금도 많이 모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내 정치 속속들이 꿰고 있는 美 국무부
 
우리 일행은 LA 랜드연구소와 워싱턴 부루킹스 연구소를 방문해 많은 학자들과 동북아 정세에 대한 논의와 한미 간 안보경협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어 워싱턴으로 가서 국무부를 방문했다. 마침 장관이 출장 중이어서 부장관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동아시아 차관보를 만나고 한국과(*당시 과장은 클리블랜드로 후에 주한 미국부대사 지냄)도 들렀다. 그 다음 순서로 국방부(펜타곤)로 갔는데 아미티지 차관보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가 미국 뉴욕에서 총영사의 안내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사정을 둘러보기 위해 같이 시장을 돌아보았다. 한국인 교포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또 슬럼가도 찾아갔는데 한국인들이 여기서 옷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차에서 내려 군청색 양복 차림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주민(주로 흑인)들이 “여기 중국식당이 문을 열었나? 중국 사람들이 왜 저렇게 걸어오느냐”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 교포가 운영하는 점포 한 곳에 들어갔더니 주인이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이라고 인사하고 교포들의 살아가는 애로사항을 들어보니 여기서는 흑인들이 물건을 사러 와서는 자기가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사 가기도 하고 때로는 돈 없이 들어와서 그냥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1981년 재미 교포들은 목숨을 내놓고서 생업에 종사하던 시기였다. 이제는 그런 생활을 뛰어넘어 미국에서 정착하고 부자가 사는 곳에도 많이 살고 있다. 
 
저녁에는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숙박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치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클리블랜드 국무부 한국과장이 호텔로 와서 한국에서 정치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해주었다. 
 
돗자리 사건 오명 뒤집어 쓴 국회 문공위
 
▲ 981년 5월 4일 방송위원회 윤석중 위원장(오른쪽 2번째)과 방송심의위원회 강주진 위원장은 이광표 문공부 장관(오른쪽), 이흥수 국회문공분과위원장(왼쪽 2번째) 등 언론기관 관계인사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고려병원 신관 16층 보영빌딩에 방송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 현판식을 갖고 있다. 이흥수 위원장은 후에 돗자리 사건으로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연합뉴스>
봉두완 의원(민정당 대변인)이 국내로 연락해서 사건 내용을 파악하고 당에서 사무차장(윤석순)이 직접 전화로 보고해 왔다. 
 
알고 보니 교육계에서 국회 문공위원회 의원을 대상으로 잘 봐 달라는 뜻으로 돗자리(강화 화문석)을 선물로 돌린 사건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또는 문공위원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돗자리 선물을 돌렸다고 했다. 나는 급하게 우리 집에도 돗자리를 가져 왔는지 확인 해봤더니 우리 집에는 가져 오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국회 문공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이흥수 의원이 위원장에서 물러나고 선물을 받은 소속 의원들 모두 경고를 받았다. 
 
돗자리 사건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때 20만 원 정도 하던 돗자리를 상임위원들에게 돌린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5공화국 초기에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정부로서는 이 사건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으로, 관련자들을 문책해 당직-국회직을 일대 개편하는 선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은 국회 돗자리 사건으로 미국 일정을 조정해 9월 13일 귀국했고, 나는 귀국 즉시 사건의 뒤처리를 해야 했다. 당시 의원외교단의 활동은 미미했지만 우리 일행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과의 관계나 미국과의 관계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 나카소네 내각이 들어서고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의 민주당 정권에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일 동맹 관계는 좋아졌다.
 
<정리=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
 

본지에 지난 3개월 간 인기리에 실렸던 권정달 회고록은 이번 호(1021) ‘5공 비화(秘話) 12를 끝으로 1부를 마감합니다. 그간 회고록을 보내주신 권정달 전 의원과 애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2부 회고록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재될 예정이오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을 드립니다. (편집자 주)

고동석 기자 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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