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씨름’ 승부조작이 씨름판 흔들다
‘양보씨름’ 승부조작이 씨름판 흔들다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3-11-25 11:19
  • 승인 2013.11.25 11:19
  • 호수 1021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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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 프로 종목에 이어 전통 민속스포츠인 씨름에서도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해 체육계가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개인 종목인 씨름 선수 간의 은밀한 금전 뒷거래로 이뤄진 승부조작이어서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랜 시간 씨름계에 만연했던 일명 ‘양보씨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주지검은 지난 18일 안태민(26·장수군청)과 장정일(36·울산 동구청) 선수에 대해 승부 조작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선수는 지난해 1월 22일 전북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12년 설날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90kg 이하급) 결정전에서 체급 강자인 장 선수에게서 승부를 양보 받는 조건으로 장사 상금 일부인 2000여만 원을 준 혐의다. 또 안 선수는 8강전 상대인 이용호(28·제주도청) 선수에게도 100만 원가량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승부조작에 씨름협회 간부가 깊이 개입했다는 진술도 확보하고 해당 간부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 간부는 대한씨름협회 총무이사인 한석(44)씨로 전북씨름협회 전무 겸 전주신흥고 씨름부 감독으로 알려졌다.

당시 두 선수 경기 결과를 놓고서 협회 관계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후문이다.

평소 학연 지연에서 별로 연결이 되지 않은 두 선수가 대결을 펼친 가운데 약체인 선수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이날 처음으로 우승한 안 선수는 장사 타이틀을 수차례 따냈던 장 선수에 비해 경력면에서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또 장 선수가 노장이지만 최근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며 강호로 다시 떠올랐기 때문에 그의 패배가 주변의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안 선수가 우승 후 장 선수의 계좌가 아닌 친척 계좌를 통해 우승상금의 일부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돼 단순히 우승을 양보한 것이 아니라 금품수수가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검찰 측은 보고 있다.

이 같은 씨름 짬짜미는 열악해진 씨름계를 반영하듯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특히 소속팀 승리를 위해 선수들끼리 져주는 일은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다. 일명 ‘양보씨름’이라는 말로 상대 팀 선수의 성향 등을 감안해 같은 조의 같은 팀 선수들끼리 미리 의논해 승부를 양보해 온 것.

이는 승부조작에 가깝지만 씨름협회는 그간 상벌규정 등을 통해 구체적인 예방책이나 벌칙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있었다.

현재 대한씨름협회 법제, 상벌규정(2013년 2월 27일 제정) ‘제4장 징계조항 제14조(징계종류) 5항’에 따르면 ‘경기 중 승부조작 및 양보경기가 인정되면 별도 설치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그 사항을 다루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해 놓은 것이 전부다.

파문이 확산되자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은 지난 1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정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해당 선수 영구제명 등 강력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와 함께 박 회장은 ‘씨름 발전에 저해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서를 선수들에게 받겠다며 원론적인 예방책만 내 놓았을 뿐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으로 모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씨름 붐에 찬물을 끼얹게 돼 씨름계 내부에서조차 확실한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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