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 속에서 흘러넘치는 술 이야기
역사와 문화 속에서 흘러넘치는 술 이야기
  • 인터넷팀 기자
  • 입력 2013-11-25 10:51
  • 승인 2013.11.25 10:51
  • 호수 1021
  • 5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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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세계 지도자와 술

이 책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처칠과 스탈린에게 마티니 칵테일을 만들어준 에피소드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위스키 증류소를 세운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반란을 진압한 에피소드, 넬슨의 관을 가득 채운 럼주가 감쪽같이 사라진 에피소드, 알렉산드르 2세에 대한 암살 위협으로 태어난 크리스탈 샴페인 에피소드,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 토속주 풀케를 데킬라로 만든 에피소드,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갈 때마다 챙겨간 샴페인 에피소드 등 역사의 순간에 지도자들의 곁을 지킨 술을 찾아 떠난다.

 

청와대의 국빈 만찬이나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이루어지는 정상 만찬에서는 으레 건배주가 세간의 이목을 끈다. 만찬장에는 다양한 음식이 나올 텐데 술이 가장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나라를 대표할 만한 술이 건배주로 채택되기 때문이며,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각국 정상의 만남을 술이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끈 건배주로는 2005년 에이펙(APEC) 정상회담에서 쓰인 상황버섯 발효주인 ‘천년약속’이나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정상만찬에서 쓰인 오미자로 만든 ‘오미로제 스파클링’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건배주를 들자면,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미중수교 여정을 빛낸 마오타이주가 있다. 중국의 명주 마오타이주는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 당시만해도 중국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닉슨에 앞서 사전 조사차 중국을 방문했던 헨리 키신저 일행의 한 보좌관이 미리 건배주로 쓰일 마오타이주를 마셔보았는데, 40도가 넘는 알코올 도수 때문에 닉슨에게 건배 제의가 오면 술을 마시지 말고 입에 갖대대는 시늉만 하라는 보고서를 올릴 정도였다.(「8장 닉슨의 미중수교 여정을 빛낸 마오타이」)
그러나 닉슨은 만찬장에서 저우언라이가 건배를 제의하자 얼굴을 잠깐 찡그렸을 뿐 마오타이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죽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이후 만찬장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닉슨의 중국 방문에 함께한 『더 타임스』의 기자 맥스 프랑켈이 “순수한 가솔린(pure gasoline)”으로 표현할 정도의 독주인 마오타이주가 미중수교의 든든한 연료 역할을 담당하며 전 세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적과도 함께하게 만드는 술의 매력이 없었다면 현대사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
옐친은 반소비에트 소요에 연루되어 중노동에 처해진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며 오랫동안 건축 일에 종사했다. 룰라는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 대신에 상파울루의 빈민가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했으며 구리 공장의 선반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런 삶을 살았기에 옐친이 러시아의 국민주 보드카를, 룰라가 브라질의 국민주 카샤사를 접하지 않을 길이 없었다. 힘겨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삶을 위로할 때 술만큼 든든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앞서가야 하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 지도자의 반열에 들면 술만한 친구도 찾기 어렵다. 이게 바로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술을 가까이하는 중요한 이유다. 다행히도 러시아와 브라질 국민들은 옐친과 룰라가 자라온 배경과 고독한 길을 가야 하는 지도자의 길을 잘 알았기에 그들의 음주 습관을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 있었다. 술이 그들의 곁을 지켜주지 않았다면 그들이 훌륭한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처칠과 스탈린에게 마티니 칵테일을 만들어준 에피소드와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위스키 증류소를 세운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반란을 진압한 에피소드, 넬슨의 관을 가득 채운 럼주가 감쪽같이 사라진 에피소드, 알렉산드르 2세에 대한 암살 위협으로 태어난 크리스탈 샴페인 에피소드,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 토속주 풀케를 데킬라로 만든 에피소드,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갈 때마다 챙겨간 샴페인 에피소드 등 역사의 순간에 지도자들의 곁을 지킨 술을 찾아 떠난다.
이처럼 세계를 움직인 지도자들의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나 술이 함께했다. 또한 술은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배경을 통해 만들어지고 전해내려오는 음료이기 때문에 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술과 지도자에 얽히고설킨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즉, 술은 역사의 증인인 것이다. 이제 역사와 문화의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간 술을 만나보자.
 

김원곤 지음 | 인물과사상사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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