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오두환 기자]“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축재했다고 단죄를 받는 이 사람이 더 이상 재산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이 재산은 정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가 가지고 있고, 자식들한테 물려주고 이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 김영삼 전 대통령
“우리 부부가 살 만한 집 하나 가지면 충분하니까 모든 것을 공익사업에 내놓을 결심을 했습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저는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그것은 사회에 환원을 할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하나같이 전·현직 대통령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등 5명 대통령의 공통점은 공식적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대통령이란 점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이 과연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을까. [일요서울]에서는 전·현직 대통령들의 기념재단과 장학재단의 규모와 설립 상태 등을 살펴봤다.
- 재단 이사장·이사에 지인들 꽂아 넣기는 기본
- 목적과 달리 건물 짓고 대출이자 대납하기도

청계재단, 기부금·장학금 줄고 대출이자만 나가
청계재단 기부금을 살펴보면 2010년 이 전 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타이어가 현금 3억원을 기부한 것을 포함해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고 김재정씨의 부인 권영미씨가 기부한 101억 원 상당의 주식회사 다스 주식 1만4900주, 2011년 한국타이어가 기부한 현금 3억 원 등이다.
하지만 대학 동기이자 후원회장을 지낸 송정호 전 법무장관이 이사장, 박미석 전 청와대 수석과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 등 측근들이 이사진에 포함되면서 편법 증여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시작과 달리 장학재단 본연의 임무와 기부액도 줄고 있어 장학재단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단 기부 현황을 살펴보면 이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해 이후로는 기부금 납입이 중단된 상태다. 재단이 지급하는 장학금 규모도 2010년 6억2000만 원에서 2011년 5억8000만 원, 지난해 4억6000만 원, 올해 4억5000만 원(3분기 기지급액 3억4140만 원과 4분기 지급예정액인 1억 380만 원을 포함한 금액)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22일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청계재단이 장학금을 지급하는 데 쓰라며 증서를 제출한 기부금을 재단 재산증자 목적의 기부수입으로 편성함으로써 적립금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전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보통 기부금 수입을 편입할 때 목적사업기부로 편성하는게 정상적인데 청계재단이 재산증자기부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기부금 수입을 목적사업기부로 편성하면 해당 금액은 전액 장학금 지급 등의 재단 설립 목적에 따른 사업비용으로만 사용해야 하지만 재산증자기부로 사용하면 이 기부금을 재산으로 적립하고 이자수입 등을 얻는 데 쓸 수 있어 결국은 재단 재산 불리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타이어 명의로 이 전 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 회장이 기부한 현금 6억 원의 경우도 별도의 기부증서 작성 없이 기부금을 계좌이체로 납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다. 특히 청계재단은 이 전 대통령이 빌딩을 담보로 받았던 기존 은행 대출 채무를 떠안고 있다. 그래서 매년 3억 원에 가까운 대출이자를 납부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재산과 함께 빚까지 넘겨준 꼴이다. 당초 이 전 대통령 측은 재단을 설립할 당시 매년 11억 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헛말이 돼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장학재단을 관리 감독하는 서울시교육청도 청계재단에 자산 일부를 매각해 대출금을 갚으라고 권고했다. 결국 청계재단 측에서도 양재동 건물을 매각하기 위해 내 놓았지만 아직까지 팔리지 않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청계재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놀 수 있는 놀이터나 다름없다”며 “이사진이 다 지인들로 구성돼 있으니 이사회를 열어봐야 다 재단 설립자의 뜻을 따르지 않겠냐”는 것이다.
민주센터, 기부금보다 건물 비용 더 들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 5일 상도동 자택 등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고향인 거제시 생가 인근의 9000여㎡의 임야를 포함해 8만여㎡의 부동산 등 50억 원가량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모두 기부했다. 김영삼민주센터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을 이사장으로, 김덕룡, 김봉조, 김무성, 정병국 등 전·현직 국회의원이 요직을 맡고 있다.
현재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이 상도동 자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신축 중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기부한 돈으로 도서관을 짓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장학사업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운데 차남 현철씨는 민주센터 이사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민주센터 공사는 물론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학사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말이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철씨는 “민주센터 관계자들이 기부재산에만 관심이 있다. 장학사업을 시작하려면 학교도 선정해야 하는데 답답하다”고 전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이미 거제도에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이 건립돼 운영 중이란 점이다. 기록전시관이 있는데 굳이 기념도서관까지 짓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많다.
게다가 거제도에 운영 중인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은 건축사업비만 총 56억5000만 원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도비 6억 원에, 시비가 50억5000만 원이 들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50억 원을 훌쩍 넘겨버린 금액이다. 장학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건물 짓는 데 돈을 다 써버릴 지경이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이 갖고 있던 150억 원 상당의 건물과 노벨평화상 상금 일부를 2002년 연세대에 기증했다. 연세대는 기증자의 요청에 따라 김대중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다른 대통령에 비해 사회에 환원한 재산이 잘 쓰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산 기증이 당시 아태재단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침묵하는 박근혜 대통령 돈 없는 전두환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은 6억 원의 돈이 문제가 되자 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개인 재단을 만들지 아니면 공익재단에 기부를 할지 알 수는 없다. 이 전 대통령처럼 지인들을 앉힌 재단을 만들어 기부할 바엔 차라리 공익적인 법인에 전액 사업비로 기부하라는 여론이 높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이 방법을 택한다면 보기에도 좋고 쓸데없는 돈에 발목 잡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8년 11월 백담사로 들어가기 전 정치자금으로 쓰다 남은 139억 원을 비롯해 개인 재산 일체를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1672억 원의 추징금을 완납하지 못했다. 최근 아들과 딸 등의 재산을 헌납하기로 하면서 미납추징금을 완납하기로 했지만 이제 와서 기념재단이나 장학재단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