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는 “첫날밤을 스위트룸에서 묵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공항까지 최고급 리무진 서비스가 이뤄지는데 여건만 된다면 이런 달콤한 서비스를 거절할 신부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임씨는 호텔예식의 경우는 예식과 식사가 한자리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식은 보지도 않은 채 밥만 먹고 가거나 예식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하객이 적다고 전했다. 모든 사람들이 식을 지켜볼 뿐 아니라 안 올 사람까지 ‘애써’오려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하객의 만족도가 크다는 것.임씨는 “이날 특급호텔에서 열린 P씨의 결혼은 어림잡아 7,000만원에 달했다고 들었다”며 부러워했다. 하객들에게 제공한 식사비만해도 신랑측에서 따로 준비한 맥주와 와인까지 합하면 한 사람당 10만원에 육박했다는 것이다.한 특급호텔 연회 관계자는 호텔 예식을 선호하는 이유로 “혼주인 부모님과 신랑 신부의 자부심을 지켜주고 천편일률적 예식이 아닌 여유롭고 스타일에 맞는 결혼식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갈비탕 한그릇만도 못해
그러나 일부에서는 호화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특별히 내놓을 것도 없는 집안인데 특급호텔에서 돈을물 쓰듯하며 결혼식을 치를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시각이다. ‘잠깐의 기분일 뿐 엄연한 낭비’라는 주장을 하며‘호텔 예식은 그만한 값을 한다’는 의견에 반기를 든다. 호텔 결혼식에 몇 번 참석해봤다는 L(30)씨는 음식의 실속없음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수프와 샐러드, 빵과 스테이크 한 조각으로 이뤄진 양식 메뉴는 “한 사람당 8만원짜리라 해서 기대했는데 값만 비쌀 뿐 갈비탕 한 그릇만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코스음식을 대량으로 급하게 내놓는 바람에 호텔측의 실수도 있었다고 말했다.L씨는 “한번은 고기의 어떤 부위가 익지 않아 피가 흥건한 상태로 나왔던 적이 있는데 무척 비위가 상했다”며 “특히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어르신들은 대놓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쓸데없는 절차 너무 많아
특히 과다하게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진 예식 자체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호텔 예식은 시간상 여유로운 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벤트나 절차가 유독 많은 편이다. L씨는 특급호텔에서 호사스럽게 치러진 대부분의 예식이 쓸데없는 절차를 집어넣어 무척이나 번거로웠다고 말했다.일례로 그는 굳이 길게 시간을 끌지 않아도 될 법한 주례자에 대한 소개를 꼽았다. 주례자의 화려한 경력을 줄줄이 설명할 때는 ‘그럴싸한 사람이 주례를 선다는 것에 대한 과시’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별로 보잘것 없는(?) 신랑 신부측의 집안내력까지 줄줄이 읊어댈 때는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는 것이다.
L씨는 또‘매 순간순간 박수를 치라’거나 ‘환호해 달라’, ‘와인잔을 들어달라’, ‘스크린을 주시해 달라’는 사회자의 주문들도 상당히 짜증스러웠다고 했다.신랑 신부를 위한 축가와 악기연주가 따로 진행된 것은 기본이었다. 또 각자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가 10여분에 걸쳐 낭독됐다. 미리 녹화해둔 부모님과 대학 은사들께 드리는 감사의 인사가 대형스크린을 통해 방영하고 그것도 모자라 신랑신부의 출생부터 성장과정을 시기별로 보여주는 사진 퍼레이드도 있었다.L씨는 “심지어 신랑신부의 연애시절 모습까지 녹화된 테이프를 틀 때는 정말 황당했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양가 맞절, 하객들에 인사, 촛불점화, 케이크커팅 등 양측 어머니들만해도 도대체 몇 번이나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사자나 하객들 모두 부담
작년에 서울의 내로라하는 특급호텔에서 결혼한 성혜진(30)씨는 “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다들 부러워하는 눈치여서 결혼을 준비할 당시에는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이 사실”이라 전했다.그러나 “막상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적당한 중급호텔에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며 “일단 우리 형편에 무리가 됐던 것이 사실이다. 가격에 비해 음식 맛도 별로였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언짢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결혼 당일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지나고나니 잠시잠깐 예식에 엄청난 돈을 썼다는 것이 속상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 온 회사원 J(30)씨는 “청첩장을 돌릴 때부터 한끼에 8만원짜리 식사라고 은근히 강조하는데 결국 다른 결혼식 때보다 축의금을 좀 더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또 서울시내 모 특급호텔에서 열린 대학동창의 결혼식에 참석한 S(32)씨는 예식 후 피로연에 참석했는데 “피로연비만 500만원이 넘는다는 소리에 그냥 듣고 있을 수가 없어 결국 친한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보태줬다”며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준재벌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초호화 결혼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특급호텔 예식사업부에 근무하는 관계자는 “돈은 별로 없는데 호텔에서는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상당수”라며 “아직까지 실속보다는 체면을 중시하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아니겠냐”며 웃었다.
신부측 요구에 신랑측 “자기 분수도 모른다” 파혼 선언
모 대기업 통신회사에 다니는 K(32)씨는 얼마전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 L(29)씨와 헤어졌다. 결혼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갑작스레 결별한 이유는 결혼식 문제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탓에 강남에서도 ‘웬만큼 산다’는 K씨였지만 특1급 호텔에서 초호화 결혼식만을 고집하는 신부측과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K씨의 주장은 “하객수가 많으니까 웬만한 호텔에서 식대를 일인당 4만~5만원선으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L씨는 생애 한번뿐인 결혼식이니만큼 ‘최고’로 하고 싶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K씨에 따르면 L씨는 일인당 10만원짜리 하객들의 식사를 비롯하여 최고급 드레스와 1천만원에 달하는 꽃값, 연회장 하나를 대여하는 피로연에 이르기까지 ‘초일류’로 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 비용을 계산해보니 어림잡아 1억원에 육박하더라는 것이다.
K씨가 유독 화가 나는 이유는 신부측의 경제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그는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분수에 넘치는 결혼을 하려는 자체가 어이없다”고 잘라 말했다. L씨는 평소에도 자기 친한 친구들에게 ‘H호텔에서 결혼하기로 했다’는 말을 떠벌리고 다녔다고 한다. K씨는 그럴 형편도 아니면서 허영에 들떠 특급호텔 운운하는 L씨가 몹시 못마땅했다.결혼전제하에 약 2년을 사귀어오면서도 L씨의 허영과 사치로 인해 자주 부딪혔다는 K씨는 이번 일로 신부측에 “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K씨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L씨를 배려하여 그동안 양보한 것만도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신부측의‘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에 어이없어 했다는 것.“단 한번뿐인 결혼을 멋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1급 호텔에서 결혼한다더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그녀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K씨는 “신부측의 ‘같잖은 체면’을 챙기려다 결국 두손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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