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핵심 선거전략으로 ‘지역대표 연대론’을 검토하고 있다. 여당은 ‘포스트 이명박-박근혜’ 민주당은 ‘포스트 DJ-노무현’을 이을 전국적인 인물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에 빠졌다. 야당은 연이어 정권을 빼앗겼으나 대선주자급 인물이 눈에 띄지만 전통적인 기층 조직과 당원 조직은 사분오열된 상황이다. 반면 여당은 이명박 박근혜 전현직 대통령을 탄생시킨 이후 전국적인 인물이 부재한 반면 탄탄한 기층조직에 관변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지역 조직에선 앞선 상황이다. 결국 여야 모두 ‘보스정치’에 이은 ‘스타플레이어 정치’ 시대를 벗어나 진정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잠룡군의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해 지역 대표 인물을 통한 연대를 기반으로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분위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
- 여야 서울·경기·영호남 ‘지역 대표론’ 급부상
- 손학규·정동영·문재인 vs 정몽준·김문수·김무성
이번 10월 재보선 경기도 화성 선거 결과를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다. 선거전부터 여당 후보인 서청원 후보의 승리가 예견됐지만 더블 스코어로 야당 후보가 뒤진 점과 ‘종북좌파’에 ‘내란음모죄’로 구설수에 올라 있는 통합진보당 후보가 1%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8% 이상 얻은 점이다. 지역색이 여당이 강하고 민주당 오일용 후보가 서 후보에 비해 약체 인사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1, 2위 격차가 예상 외로 컸고 통진당 홍성규 후보 역시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호남향우, 민주-안철수-새누리당 ‘분열’
정치권에선 이런 결과를 두고 저조한 투표율(33.5%) 속 여당과 통진당은 조직의 힘을 보여준 선거였고 선명성도 인물도 떨어진 민주당 후보의 낙선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낮은 투표율 속 치러지는 선거의 핵심은 조직이라는 단순한 선거 전략이 딱 들어맞은 선거였다. 이는 민주당 기층 조직의 와해와 당원 조직의 결집도가 상당히 떨어졌음을 입증했다. 특히 야당의 경우 전통적인 지지세력인 ‘호남’과 ‘당원 결속력’에서 새누리당에 완패했다.
실제로 민주당의 대표적인 전통 지지세력인 ‘호남향우회’와 ‘연청’ 조직은 DJ-노무현 시대와 함께 힘을 못 쓰고 있는 현실이다.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 관계자는 15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경기도 화성의 경우 지역 특성상 향우회 활동이 저조한 게 사실”이라면서 “지역 회장 역시 개인사정으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게다가 민주당 당원 조직마저 열세인 상황에서 화성 선거는 해보나마나한 선거로 인식됐다.
여기에 호남향우회가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기존 호남 향우회와 친정부 성향의 향우회로 분열되면서 결집도가 떨어졌다. 전국단위조직인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중앙회(중앙회·총재 임향순)와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연합회·총회장 이용훈)가 각각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특히 임향순 총재의 경우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 3대 회장이었다는 점에서 아픈 대목이다.
총연합회 관계자는 “호남향우회가 탈 정치성향을 띠면서 회원들이 결집도가 느슨해졌고 기존 지도부가 개인 영달을 위해 새누리당을 지지하면서 둘로 나뉘어진 상황”이라며 “그러나 수원, 성남, 안산, 안양, 평택 등 수도권에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향우회 회원 가입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이 점차로 늘고 있다”며 “전국 17개 시도 1300만 향우들을 재결집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향우회 조직의 분열에 지구당위원장 제도가 폐지되고 당협위원장으로 바뀌면서 당원들의 충성도가 떨어진 점 역시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당원들이나 회원들을 보면 민주당, 안철수 신당, 새누리당으로 나뉘어진 게 사실”이라며 “수도권 국회의원들을 제외하면 야당 국회의원들 역시 지역색에 따라 향우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천차만별이라 예전만은 못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반면 영남향우회는 호남 향우회에 비해 결집도나 활동 정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향우회 활동보다는 관변단체나 보수단체에 참여하면서 세를 과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관변 조직이 바로 자유총연맹(김명환 회장)이나 민화협(홍사덕 상임의장), 민주평통(현경대 수석부의장) 조직이다.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자총의 경우 전국적으로 회원만 150만 명이다. 민화협 역시 전국조직으로 국내 정당 및 종교·사회단체 등 200여 개로 구성된 통일운동 상설협의체다. 민주평통은 전국 조직으로 대통령이 자문위원으로 7000명 이상 위촉할 수 있고 현재는 그 두 배인 1만4000명이 훌쩍 넘는 거대한 조직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 핵심 그룹인 7인회 멤버 현경대 부의장, 대통령 측근 홍사덕 상임의장, 정권 실세가 뒷받침하고 있는 김명환 회장 등 면면이 막강하다.
여기에 박 정권이 ‘제2의 새마을운동’ 붐을 선언하면서 바르게살기운동중앙회, 새마을운동중앙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각종 보수단체들을 포함할 경우 전국적 조직에서 여당이 야당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규모 선거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진영은 단연 야당이다. 기층조직에 당 조직마저 흔들리면서 조직보다는 바람 인물 선거에 의존해야 할 형편이다. 벌써부터 ‘박근혜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오는 배경이다. DJ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큰 인물이 부재하다는 점이 심판론을 주장하는 배경이 됐다.
‘차출론’ 난무 여야 “큰 인물이 없네~”
구체적으로 호남과 영남을 기반으로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킬 만한 대중적인 인물은 찾기 힘들다. 과거 DJ나 노무현 시절 각종 선거를 보면 당 간판 주자가 든든한 지역을 기반으로 충청, 경기, 서울, 강원도로 바람을 일으켜 북상하면서 총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작금의 정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결국 민주당에선 지역별 대표 선수를 내세워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수도권은 손학규, 호남은 정동영, 영남은 문재인 등 지역 정서에 맞게 잠룡들을 배치시켜 바람 몰이를 통해 선거를 치르자는 얘기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지난 재보선에서 ‘정동영 차출론’이나 ‘손학규 재보선 차출론’ 등이 나온 배경이다.
좀 더 세밀하게는 부산에서 문 의원이 간판이 돼 선거를 치르고 경남의 경우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대구·경북의 경우에 과거 대구 정치1번지 수성구에 나섰던 김부겸 전 의원이 지목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기위해선 김 전 의원이 대구시장으로 출마를 해야 한다”면서 “김 전 의원 입장에서도 차기 총선뿐만 아니라 대망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당의 잠룡군의 지역 대표 연대론 내지 할당론이 검토되고 있는 사이 집권 여당 역시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대통령이지만 청와대에 입성한 이상 전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포스트 박근혜’ 뒤를 이을 마땅한 인사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김무성 의원이 여당 내 차기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3인방 명성이나 대중 인지도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친이계 잠룡으로 분류되는 정몽준, 김문수, 홍준표, 김태호 4인방 역시 마찬가지다.
여당에서도 지역 대표 할당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야당과 차이가 있다면 대선에 출마한 주자를 중심으로 지역 대표 주자를 내세우려는 민주당이지만 여당은 차기 대권보다는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을 내세우겠다는 점이다. 하지만 친박 인사들보다는 친이계 출신이 대거 눈에 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靑, “지역 간판론 맞는데… 다 친이네~”
집권 여당에선 수도권이 가장 큰 고민이다. 서울, 인천 광역단체장이 야당 인사들이다. 광역단체장을 교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친박계 인사들로 채워야 하는 이중고에 빠져 있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선 서울시장 후보로 ‘정몽준 차출론’과 경기도지사 후보로 ‘김문수 재출마론’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난색을 표하거나 고사하고 있다. 두 인사가 출마를 고사할 경우 서울과 경기도는 정 고문과 김 지사가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는 게 2안이다.
충청권 역시 새누리당이 ‘포스트 JP’를 두고 치열한 지역인 만큼 인물은 많지만 신선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고민이다. 대전을 제외한 충북 이시종, 충남 안희정 두 인사가 민주당 광역단체장 출신이다. 현재 여당 내 충청권 맹주를 꿈꾸는 인사로는 6선의 이인제, 충남지사를 지낸 3선의 이완구, 충북지사를 지낸 정우택 최고위원에다 강창희 국회의장, 그리고 최근 국회에 입성한 서청원 전 대표까지 충청도 출신 인사들은 상당하다. 단지 모두 대권 주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1인 플레이’보다는 집단적으로 충청권 공략에 나설 공산이 높다.
영남의 경우는 수도권에 비해 안정적이다. 부산의 경우 김무성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 의원이다. 경남의 경우 재선에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지원할 경우 홍 경남지사의 우세가 점쳐진다. ‘박근혜 정치적 고향’이자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경북의 경우 ‘누가 공천을 받느냐’가 관건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낙하산 공천’을 통한 젊고 참신한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큰 인물’이 없는 여야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는 군소 잠룡들의 차기 대권을 위한 전초전 성격으로 변질될 공산이 높다. 민주당 지도부나 청와대 역시 지방선거에서 세를 보여준 잠룡에게 힘을 실어줄 태세다. 역대 대선에서 권력을 쥔 인사들이 튼튼한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적으로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를 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