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취 소란 행위자 위자료 청구 등 민사책임까지 추궁
‘치안은 뒷전이고 돈벌이에 혈안’ 지적도 나와
경찰청은 지난 8월 28일 서울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경찰서 소란난동 행위 및 허위신고 강력대응’을 위한 전국 250개 경찰서 생활안전계장·수사지원팀장 교육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경찰은 소란난동 및 허위신고에 강력 대응키로 했다고 밝혔다. 상습적으로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거나 경찰관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등 죄질이 나쁠 경우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경찰관에게 욕설을 하는 등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모욕행위에 대해서도 모욕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주취 소란 행위자에게 개정된 경범죄처벌법(관공서에서의 주취소란) 등을 적용해 형사 처분과 병행,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등 민사책임까지 추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 청구 후
소란행위 감소
지난 9월 전북 정읍에서는 신고 출동한 경찰관에서 심한 욕설을 한 피의자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해 80만 원 배상결정을 받았다. 10월 경북 김천에서도 신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피의자에게 경찰은 150만 원 손해배상금 지급을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제주에서는 주취폭력배 등 공무방해 사범들을 상대로 61건의 민사소송을 청구한 결과 34건에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명령이 내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모욕죄 피의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거는 경우는 많이 있다. 지급명령이나 소액심판 같이 쉽게 할 수 있는 민사소송을 주로 하고 있다”며 “민사소송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제주 경찰이 지급명령 신청을 많이 해 소란난동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란난동의 경우 사법적인 부분에서 엄하게 처벌을 했으면 하는데 법원의 재판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에서 난동을 피우는 피의자들에게 형사 처분만 가지고는 개선하기 힘들어서 강력 대응의 일환으로 민사소송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달했다”고 말했다.
“400만 원 이하로는
합의 못해”
그러나 경찰의 민사소송 취지는 좋으나 남용될 소지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용인시 수지구의 어느 파출소로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시끄럽다는 주민 민원이었다. 새로 오픈한 식당에서 만취한 상태로 소란을 피우던 A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시비를 걸고 욕설을 하며 길바닥에 들어 눕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결국 경찰은 A씨에게 수갑을 채워 파출소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최모 순경은 엄지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났고, 김모 경위는 손바닥이 까지는 상처를 입었다. A씨는 150만 원의 벌금의 형사 처분(모욕죄)을 받았다.
이에 10월 경찰에서는 A씨에게 7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걸었다. 합의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A씨는 벌금 150만 원에 상응하는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최소한 400만 원은 넘어야 합의를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A씨는 “이 문제가 민사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실수한 것은 인정하지만 상습범도 아닌데 민사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과를 하고 나름대로 합의조건을 말했더니 경찰 측에서 금액까지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당 경찰관은 “A씨는 사과도 없이 김 경위는 다치지 않았으니 20만~30만 원, 최 순경은 100만 원에 합의보자고 이야기했다. 최소한의 사과도 없이 금전적인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 최소한 진정성을 보이려면 둘이 합쳐 400만 원을 보상하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현재 해당 경찰서는 생활안전과를 필두로 법대 출신, 경제팀 베테랑 형사들, 사법고시 출신의 형사과장이 참석하는 자문위원회가 꾸려져 있다. 자문위원회는 경찰관들의 소장을 검토해 주고 손해배당금을 얼마로 설정할지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사실을 접한 A씨는 “나는 민간인으로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데 경찰은 자문위원회까지 꾸려 대응하는 것을 보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사가 진행되면 피의자들은 경찰 측에 합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경찰이 ‘금액’을 제시하면서 ‘부수입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사 소송의 판결은 법원에서 내리는 것이지만 합의 ‘금액’은 경찰 측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시민 이모 씨는 “소란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은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민사 소송으로 가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중간에 합의를 위한 금액을 제시하고, 그 금액을 받고 소송을 취하한다면 단순히 ‘돈’을 위해 소송을 건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경찰이 치안은 뒷전이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것 같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범 방지 위한 대책
형사 처분으로 부족
경찰청 관계자는 “그동안 지구대·파출소에서 공무집행방해 및 소란난동이 굉장히 많았다. 사법적인 처벌이 약해 피의자들에게 ‘소란난동을 피우면 나에게 손해구나’라는 인식을 주지 못했다. 일선 경찰들은 현장에서 모욕을 많이 당하고 그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상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피의자에게 금전적인 피해가 바로 온다. 이렇게 해서 재범 부분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사소송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민사는 개인적인 판단에서 자체적으로 청구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라며 “국민이면 누구나 헌법상에 개인 권리를 지킬 권한이 있다. 경찰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욕을 먹기 위해 경찰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반 국민들도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면 모욕죄와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들이 민사소송을 남용할 개연성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