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불황의 늪에 빠진 유통업계가 이를 악물고 발버둥치는 모양새다. 국내 유통업계는 올해 내내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과도하게 부과되는 정부 규제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범위 또한 대기업은 물론이고 자영업에 종사하는 이들까지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유통업계도 이제 넋 놓고 보고만 있지 않을 태세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사장 교체 물결을 일으키며 재기를 노리고 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를 향해 “기업들을 압박하는 과도한 규제 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유통산업연합회와 자영업자들도 유통 주간 행사로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는 등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소매유통업 성장 둔화세 뚜렷…대형마트도 침체
시장 악화일로에 정부 압박까지…속수무책 이중고
매일유업·MPK 그룹 등 ‘구원투수’ 새로운 수장 출격
전경련·유통산업연합·자영업자 불황 극복 움직임 확산
여러 악재에 멍든 유통업계의 현실은 통계상으로도 참담했다. 대형마트가 1년 6개월 넘게 역신장세에 허덕였고 백화점 매출 신장률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추석 전후로 소비시장이 반짝 회복되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전부였다.
특히 국내 소매유통업의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2일 발간한 ‘2013년 유통산업 통계집’에 따르면 올 1월에서 8월까지 국내 소매유통업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 성장하는 데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편의점(7.9%)과 인터넷쇼핑(7.7%)이 지난해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나 대형마트(-0.2%)와 전문소매점(-3.7%)은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대형마트와 백화점 업계의 매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마트가 -3.0%, 홈플러스는 -7.2%, 롯데마트 역시 -4.9%를 기록하는 데 머물렀다.
대형마트 3사 모두 올 2월과 6월 반짝 증가세를 보였을 뿐 대부분 마이너스 매출이었다. 이마트가 올 1월 -26.2%로 불안한 출발을 보였고 4월 -10.6%, 5월 -4.9% 등 매출 감소폭이 줄었지만 7월 -5.1%로 감소폭이 다시 늘어났다. 홈플러스는 1월 -23%, 4월 -9.5%, 7월 -6.0%를 기록했고 롯데마트 역시 1월 -18.2%, 4월 -9.3%, 7월 -3.0%로 부진했다. 더욱이 이와 같은 하락세가 지난해 4~5월부터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백화점도 올해 초 마이너스 성장률에서는 벗어났지만 한 자릿수 상승으로 불안감을 없애지 못했다. 롯데백화점은 4.5%, 현대백화점은 5.2%, 신세계백화점은 1.2%의 매출 신장을 보였다.
앞서 소매유통업 성장률은 2010년 6.7%를 기록한 뒤 이듬해인 2011년엔 4.5%, 지난해에는 2.3%까지 떨어진 바 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연간 소매유통업 성장률은 1% 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시장 자체가 불황을 겪는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대책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한상의는 “국내 소비시장 침체와 백화점, 대형마트의 점포 포화로 유통산업이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모바일 커머스와 복합쇼핑몰 등을 활성화하고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더군다나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이 안그래도 좋지 못한 유통업계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한탄이다. 올해 초 개정한 유통법에 따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은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되고, 일요일을 포함한 월 2회 공휴일에 문을 닫아야 한다. 신규 출점 제한, 판매장려금 규제, 유통기업 준대규모점포 규제 법안 등은 유통업계의 현실을 외면한 채 활기를 뺏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이미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대형유통업체 62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유통기업 경영여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기업들은 조사 당시 유통산업발전을 위한 정책과제로 ‘경기부양’(45.2%), ‘규제완화’(40.3%), ‘신업태 활성화 지원’(4.8%), ‘해외진출 지원’(3.2%), ‘공정거래 문화 정착’(3.2%), ‘세제 지원 확대’(1.6%), ‘기타’(1.7%) 등을 말했다. 매출 하락의 이유로는 ‘소비위축’(89.3%)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동업태 간 경쟁 심화’(39.3%), ‘정부규제’(32.1%), ‘이업태 간 경쟁 심화’(21.4%), ‘신규 출점 부진’(14.3%) 등을 복수로 응답했다.
또 일각에선 기업들을 규제하는 만큼 재래 시장이 활기를 찾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재래시장 자영업자는 “재래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취지는 좋은데 가끔은 막무가내식 정책으로 전체 유통시장 자체에 불황이 온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대규모 유통업체의 또 다른 관계자도 “아마 정부 규제에 대한 문제점은 유통업계 대부분이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며 “조금 더 신중한 접근 방식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중소업체와의 상생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요동치는 변화의 물결
유통업계 위기 돌파의 한 방법으로 대표경영자 교체 물결이 일고 있다. 그동안 갑을 논란, 정부 규제, 경기침체에 따른 실적 저하 등의 부침을 지낸 업계가 새로운 수장을 내세워 재기를 노리는 모습이다. 특히 창업자나 사주가 경영자 자리로 복귀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우선 매일유업은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사촌여동생 김선희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내정돼 있다. 이창근 매일유업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내년부터 김정완, 김선희 대표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김 부사장은 그동안 매일유업의 자금 관리 및 회계 등 안방살림을 관장해 온 만큼 재무관리에 효율성을 북돋울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K 그룹도 경영자 교체 바람에 한몫하고 있다. 그룹 오너인 정우현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이다. 아울러 정 회장의 아들인 정순민 전략실장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정 회장과 부자경영을 선언했다.
버거킹코리아는 문영주 전 MPK그룹 대표로 교체됐고, CJ그룹은 계열사 4곳의 대표이사를 교체하고 2곳에는 공동대표제를 도입했다. CJ프레시웨이 강신호 대표, CJ푸드빌 정문목 대표, CJ파워캐스트 이호승 대표가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CJ오쇼핑은 변동식 CJ헬로비전 대표를 추가 인선해 이해선, 변동식 공동 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 전문가 사이에선 아무래도 분위기 반전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사업의 부진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외 시장에 강점을 보이는 수장들을 불렀다는 의견이나 오너 경영으로 되돌아가 책임감을 고취시키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더불어 유통 시장 내에서는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습과 함께 정부를 향한 촉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통 채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마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백화점 브랜드가 대형마트에 입점하고 길거리 브랜드가 백화점으로 진출하는 등의 전략들이다. 업계에 의하면 경기 불황 속에 제조업체와 유통업계가 채널 다변화라는 명목 하에 마진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중소 유통업체 간 상생을 위한 업계 전반의 협력 움직임도 포착된다. 대·중소 유통업계의 상생협력을 위해 지난 3월 출범한 유통산업연합회(공동회장 이승한, 진병호)가 지난 14일 일산 킨텍스에서 제1회 유통산업주간 개막식을 열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기업형슈퍼마켓과 중소유통업체, 롯데슈퍼와 지역슈퍼, 에브리데이리테일과 체인조합, 농협과 중소슈퍼 등 총 5건의 대·중소 유통업계가 자발적 상생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이날 이승한 유통산업연합회 공동회장은 “이번 행사는 유통인들의 상생발전 의지와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자리”라며 “유통산업연합회에 참여하고 있는 대·중소 유통기업들이 대립과 갈등의 벽을 허물고 모두 함께 성장하는 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병호 공동회장도 “이번 MOU는 대·중소 유통기업 당사자들 간의 자율합의로 상생협력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지역여건을 감안해 1점포 1전통시장 자매결연을 맺어 전통시장의 다양한 판촉 활동 등을 지원키로 했다. 기업형슈퍼마켓(SSM)업계와 중소유통단체는 중소슈퍼의 가격경쟁력과 제품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SSM업계가 제품을 공동 구매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통업계의 어려움을 몸소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 힘을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는 평이다.
또 여기에 전경련이 힘을 보태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1일 국회와 정부에 대규모 유통업 불황타개를 위한 7대 정책과제를 건의해 정책적인 도움을 요구했다. 대규모 유통업의 경기활성화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대규모 유통업체는 물론이고 국내 유통산업경쟁력 전반의 경쟁력 훼손이 초래될 수 있다는 주장을 강력히 내세운 것이었다.
즉, 기대했던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는 미미하고 판매장려금이 제한될 경우, 대규모 유통업체의 경영부담 증가뿐만 아니라 납품거래가 재고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대기업 위주로 이뤄져 중소기업 피해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이 7대 정책 개선과제로 제시한 것은 대규모 유통업체 영업규제 완화와 판매장려금 제한 지양,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성급한 도입 지양, 표준거래계약서 사용 의무화 지양, 대규모점포 등록 신청시 건축허가서 첨부 의무 해지, 상품권 인지세 현행 유지, 교통유발단위부담금 인상률 축소다.
한편 이처럼 유통업계 전체가 들썩거리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유통 산업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국가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고 밝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이 제1회 유통산업주간 개막식 서면 축사에서 “유통산업은 제조업에 이은 제2의 산업으로 성장해 왔다”며 “지금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유통산업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혜를 모으고 서로 힘을 합하면 유통산업이 한 계단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고 전한 것이다.
온갖 악재에 시달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통업계에 새로운 반전의 계기가 찾아올지, 정부에서 이들을 위한 또 다른 정책을 발표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