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 변장술에 안방 내준 중기시장
외국계 회사 변장술에 안방 내준 중기시장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11-11 10:48
  • 승인 2013.11.11 10:48
  • 호수 1019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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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式 경제민주화 정책

국내 대기업은 배제하면서 외국계 대기업은 괜찮아?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만든 대기업 참여 제한 정책이 국내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상생을 위해 중소기업 몫으로 내준 자리를 외국계 대기업들이 꼼수를 부려 떡하니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는 이러한 상황임에도 특별한 대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어 정부의 중기 살리기 정책이 외국계 대기업 살리기 정책으로 변질되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에 [일요서울]은 묻지마 식 경제민주화 정책과 선의로 시작한 동반 성장 그리고 골목상권 살리기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역기능만 쏟아내고 있는 실태를 꼬집어 봤다.

외국계 회사 기묘한 변장술에 안방 내준 중기 시장
중소기업 내준다던 면세점 사업권, 결국 허울뿐이었나
공공 조달에서 민간사업 시장까지 똑같은 문제 드러내
“더 세심하고 효율적인 상생안 마련해야” 목소리 높아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진출을 막기 위해 지정되는 대기업 입찰 제한 업종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그 수만 헤아려 봐도 면세점, 문구, 조명, 타이어 등 업종과 분야를 막론하고 적용돼 100개 품목에 이를 정도다. 다만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온 면세점의 경우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참가자격을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했다.

그런데 면세점 입찰 참가자격을 중견기업으로까지 늘렸던 것이 국내 대기업 역차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22일 글로벌 면세점 업체 듀프리의 국내 법인인 듀프리 토마스줄리코리아가 200억 원에 이르는 낙찰가로 김해공항 면세점의 DF2(434㎡) 구역 운영자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모회사인 듀프리는 연매출 40억 달러(4조2000억 원) 규모의 세계 2위 면세점 업체로 국내 대기업으로 분류돼 있는 신라·롯데·호텔 조선 면세점들보다 더 큰 기업이다.
 
그렇다면 듀프리가 어떻게 중견기업 자격을 얻을 수 있었을까. 듀프리는 지난 8월 자본금 1000만 원을 가지고 유한회사 듀프리토마스줄리 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리고 해당 법인은 모기업과 관계없이 정부로부터 중견기업 확인서를 받았다. 이처럼 듀프리는 우회적으로 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에 겉만 봐선 김해공항 면세점 운영권 획득에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처럼 난감한 상황에 면세점 업계를 중심으로 “자금력이 약한 국내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외국 대기업 이 자리를 잡았다”면서 “롯데·신라·신세계 등과 같은 국내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은 물론이고 동반 성장의 취지는 없어진 지 오래”라는 비판이 일게 된 것이다. 아울러 향후 3년 내에 지방공항 7곳의 면세점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어서 외국계 기업의 지방공항 면세점 장악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엉뚱하게 막혀버린 동반성장의 길 

더 심각한 문제는 외국계 대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는 움직임은 듀프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국내 법인을 통해 우회 입찰을 강행했던 곳들이다.

첫 번째 예로 대기업 입찰이 제한된 공공 분야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권은 올 들어 한국IBM 등 외국계 기업이 잇달아 가져갔고 정부세종청사 식당 운영권 역시 미국계 회사인 아라코가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라코의 본사 아라마크는 연매출 15조 원의 규모를 가진 기업임에도 입찰에 성공한 반면 매출 규모가 1조 원조차 되지 않은 국내 대기업 아워홈에는 입찰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라코는 앞서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신용보증기금·건강보험심사평가원·기술보증기금·도로교통공단·다산콜센터 등 대형 공기업의 구내식당 운영권을 차례로 확보한 상태였다. 

대표적 중기 적합업종인 빵집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최대 프랜차이즈 업체 르더프 그룹에 속한 빵집인 브리오슈도레가 동반성장을 막고 있는 주인공이다. 르더프 그룹은 2011년 기준 연매출 11억500만 달러(1조2000억 원)를 기록한 대형 프랜차이즈다. 특히 이 기업은 국내 기업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출점하지 못하는 동안 한국 시장을 충분히 잠식하고도 남을 기업으로 평가된다.

문구류도 마찬가진데 대부분 관청의 문구 계약은 오피스디포 등 외국계 대기업 차지가 됐다.

올해 초 조달청은 오피스디포와 MRO(소모성자재구매) 공급계약을 체결해 전국 10개 권역 중 6개 권역에서 2년간 공공 MRO시장의 80%에 해당하는 규모, 78억여 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MRO 역시 전체 공급액 95억7000만 원 가운데 오피스디포의 납품액은 25억2000만 원으로 전체 공급액의 26.3% 수준이었다. 오피스디포는 미국 대기업으로 전 세계 60개국에 1600여 곳의 매장이 있고, 연매출은 12조 원이다.

또한 2011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된 재생타이어의 경우 미쉐린, 브리지스톤 등 글로벌 브랜드가 토종 브랜드를 밀어냈다. 이 외에도 LED 조명 시장에선 중국의 1위 업체가 중소기업과 제휴하는 형태로 우리나라에 진출한 상태다.

여기에 유통산업발전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일본계 SSM(기업형슈퍼마켓)들도 사업을 확장하는 것으로 역차별의 방점을 찍고 있다.

유통법에 의거하는 국내  SSM은 전통시장 1km 내에 점포를 오픈할 수 없고, 매월 2일씩 의무휴일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일본계 SSM은 유통법 적용을 받지 않아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서 12개 매장을 연 일본계 SSM 트라이얼코리아의 본사인 트라이얼컴퍼니는 현지에만 131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유통업체다. 연매출은 3조600억 원에 달한다.

각 업계 위기의식 고조 대책 시급

상황이 이쯤 되자 외국 대기업들의 진출이 문제가 되고 있는 업계의 관계자들 사이에선 위기의식이 고조됨과 동시에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외국계 대기업의 투자 수축이 신경 쓰여 지금과 같은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민간 시장은 그렇다 쳐도 공공시설이나 공공 물자로 들어가는 사업들은 충분히 막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중소기업을 확인하는 과정에선 생산라인과 국내 법인을 모두 확인하게 돼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면세점과 같은 경우엔 물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법인화를 통한 쉬운 진출이 가능한 것”이라면서 “정부에서도 지금과 같은 문제를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향후 조금 더 세밀한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최근 문제가 불거진 면세점 업계의 관계자 역시 “중소·중견기업에 면세사업 기회를 준다는 취지는 좋다”면서도 “그런데 애초에 최저입찰가부터 너무 높아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는 이번에 듀프리가 가져간 면세점 구역인 DF2구역 최저 입찰가가 25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진 데에 따른 발언으로 해석된다. 면세점의 60%를 차지하는 DF1 구역 입찰에서 신라와 롯데가 400억 원 안팎을 써냈던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외국계 기업의 진출에 대해선 “정부의 대기업 규제 정책이 중소기업을 위해 출발한 것인데, 외국계 기업들 배만 불리는 식이라면 국내 대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넘어 국내 경제 전반의 문제가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대기업에 대한 묻지마 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들은 “지금의 대기업 규제가 너무 심해 역차별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경제 활성화를 방해하는 측면 역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러한 일례로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해당하는 콩 생산 농가들은 두부 제조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를 비롯한 소속 지역농협 조합장 등은 동반성장위원회를 향해 “대기업·중소기업 구분 없이 두부를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부 제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뒤 풀무원과 대상 등 대기업에 납품되던 두부 원료용 국산 콩의 판로가 막혔고 그 영향으로 국내 콩 농가의 판매가 줄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대한 허점이 외국계 기업에 노출돼 있다는 점도 큰 문제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말 그대로 상생의 관계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지금보다 실효성이 높은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꼼수는 꼼수대로 판을 치고 상생은 상생대로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우려를 전했다.

또 다른 업계의 한 종사자는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상생이라는 것이 ‘대기업 죽이기’가 아니라 ‘중소기업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지금의 정책은 단순히 ‘대기업 죽이기’로 보인다”며 “대기업 브랜드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종사자들 역시 서민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토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국회에선 민간 자율 형태인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오영식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이미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이번 특별법은 중기청장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도록 해 법적으로 강제화하는 게 목적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이행 사항을 대기업이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동반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권고적 효력만 가질 뿐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도 현행 동반위 권고사항에 법적 효력은 없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에는 동반위 설치 규정과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동반성장지수 평가 등 동반위 업무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권고를 어겼을 경우 동반위가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중기청은 심의를 통해 90일 내 대기업 진출을 최장 6년까지 연기하거나 생산 축소를 권고할 수 있다.

다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과 동반위 활동만으로도 실효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특별법이 법제화되는 것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도 정부는 대기업의 면세사업 진출 규모를 법으로 제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이 면세점 특허를 받을 수 있는 비율을 60%로 제한하는 관세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중소·중견기업은 특허 비율의 하한선을 20%로 설정하고, 2018년부터는 이 비율을 30%로 높이겠다는 게 주목표다.

또 면세산업을 통한 중소·중견기업 성장 지원 대책을 발표한 뒤 2018년까지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을 2배 이상 늘리고 면세점 국산품 매장 면적의 70%를(현행 60%) 중소기업 제품 매장으로 구성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의 길을 여는 동시에 외국계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진출도 막아낼 수 있는 완벽한 정책이 나올지도 눈여겨봐야 하는 부분이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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