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이석채 사의 후폭풍
정준양·이석채 사의 후폭풍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3-11-11 10:36
  • 승인 2013.11.11 10:36
  • 호수 1019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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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결국 무릎 꿇었나?”

(왼쪽부터) 이석채 KT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일요서울|이범희 기자] 이석채 KT 회장에 이어 정준양 포스코 회장마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그 배경에 정치권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두 회장 모두 현 정부 들어 사퇴설에 시달렸고 전임 수장이 정권 교체와 함께 물러난 만큼 이 같은 주장이 더욱 힘을 얻는다. 다만 포스코는 정 회장이 지난 8일 열린 이사회에서 거취 표명이 없었고 내년 3월까지 회장직을 수행한 후 후임 인선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 만큼 검찰수사 압박에 시달리는 이 회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 외압에 시달린다는 주장에서는 두 기업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역대 정권 때도 수장들 불명예 퇴진
민영화 앞둔‘우리금융’에도 불똥 튈까

“결국은 질 것이다. 또 졌다.” 이 말이 포스코와 KT 주변에서 자주 들린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설보다 이 말이 더 주목된다. 그동안 사정당국의 비리의혹과 일부 언론보도로 알려진 두 회사의 불미스러운 사건보다 정권에 ‘무릎 꿇었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정 회장은 이번 정부 들어 사퇴설이 끊이지 않고 거론됐지만 세계철강협회장을 맡으면서 포스코의 회장직을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지난 8일 이사회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정 회장 본인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한것으로 알려지지만 포스코 측은 이를 부인한다.
 
앞서 이석채 회장은 지난 2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동안 배임 등의 혐의로 압수수색과 임직원의 소환 수사가  있었지만 이 회장은 아프리카 출장을 감행하면서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검찰수사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이 회장은 사퇴의 변으로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 비자금과 정가 로비 의혹이 확인됐다는 설마저 나돈다. 

공교롭게도 두 회장은 현 정부 들어 사퇴 종용설이 계속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에도 자주 낙방하면서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포스코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가기간업체이자 민영기업이다. 하지만 정부 지분은 전무한 상태다. 여기에 특정한 지배주주 없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6월 말 현재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은 국민연금 지분 6.14%가 전부다.

KT 역시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KT 지분 8.65%를 소유한 최대주주라는 것 말고는 특별히 연결된 것이 없다. 

그러나 포스코와 KT는 민영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동안 역대 회장들이 정권교체시 마다 임기 중 사퇴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실제로 김만제 포스코 전 회장은 1994년 3월부터 회장직을 맡았는데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인 1998년 3월 중도 사퇴했다.

유상부 전 회장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 초반에 물러났다. 전임 회장이던 이구택 회장 역시 MB정부가 시작되면서 버티다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사정당국이 전방위적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앞서 초대회장이었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노태우 정부 당시 모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 거부와 관련 외압설이 제기되기면서 사퇴했다.

KT도 마찬가지다. 전임 남중수 사장이 그랬다.

‘노무현 정부 인사'로 분류된 남 전 사장은 2008년 연임에 성공했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교체설에 시달리다 결국 검찰수사를 받았다. 그는 같은 해 11월 뇌물죄로 구속 수감되면서 KT사장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이 회장도 지난해 연임해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 놓은 상황에서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서고 있어 5년 전 KT 모습이 데자뷔되고 있다. 이 회장 역시 “KT는 1급수이며 투명하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무너졌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선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도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이기도 한다.

또 다시 고개든 관치관행

이 때문에 정 회장의 사의표명 논란과 이 회장의 사의 표명이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현 정부에 대한 ‘관치관행’이 전면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지수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이번 정권뿐만 아니라 과거 정권에서도 마찬가지 현상들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요 기업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퇴진압력을 가하고 거기에 응하면 조용히 넘어가는데 만약 버티기를 한다거나 물러날 수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하게 되면 법적 위반 상황, 이런 것들을 들춰냄으로써 퇴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 측은 정 회장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8일 오후까지 ‘사실무근'임을 재차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번 파문이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제2의 이석채 논란으로 번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skycros@ilyoseoul.co.kr

# 재계 “민영화 기업 정부개입은 잘못…”

재계가 민영화 기업의 정부 개입은 잘못된 일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사정당국에 밉보였다가 괜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공기업 옷을 벗고 이미 성공적으로 민영화의 길을 걷고 있는 기업을 정부에서 좌지우지 하려는 것 자체가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감한다.

또 수장의 잦은 교체는 기업이 장기 사업 계획에 어려움이 많고 국내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민영기업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부터 정치와 기업이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도 있지만 부패의 원산이 된다는 말이 있다”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KT에서 25년 동안 근무한 뒤 2호 여성임원 기록까지 세운 권은희 의원(새누리당·대구 북구갑)도 KT에 “더 이상의 정치권 인사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권 의원은 “KT의 어려운 것을 한번 해결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통신이나 이런 것에 대한 이해가 좀 있어야 한다"며 “연봉을 보고 오는 사람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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