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의원직 박탈에 정당해산…이정희 보복성격
공안정국 박원순 ‘불똥’에 민주당 ‘설곳이 없네~’
“이정희 대표에 대한 박 정권의 보복 시작”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청구권이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자 민주당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공언한 이정희 통진당 대표에 대한 정권 차원의 손보기가 본격화됐다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이 유럽순방을 간 사이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청구권을 국무회의에서 가결시키고 박 대통령은 전자결재를 통해 재가했다.
순식간에 정국은 헌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며 술렁거렸다. 당장 통진당 의원들은 “민주주의 헌법 파괴”라며 삭발식을 마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는 한 발 더아나가 가처분신청까지 내면서 통진당 당원들의 국회활동 금지를 포함해 국고보조금 동결을 해 달라고 신청했다. 헌재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질 경우 6명의 국회의원들의 세비 수령과 정치 활동을 못하게 된다.
내년 지방선거전까지 ‘종북놀이’가 계속
하지만 야권의 우려감은 현재보다 내년 지방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집권 세력의 ‘종북당’, ‘종북좌파’ 공안놀이가 내년 지방선거 2~3개월 전까지 계속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통진당 이석기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종 선고인 대법원까지 가려면 최소한 3~4개월이 더 소요된다. 의원직이 박탈된다면 정국은 또 한번 일대 파란이 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 의원의 의원직 박탈 이후 헌재가 통진당의 정당해산권을 받아들일 경우 내년 지방선거는 공안정국속에 치러질 공산이 높다. 무엇보다 9명의 헌재 재판관 중 6명이 보수성향이라는 점에서 헌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당이 해산된다고 해도 ‘공안놀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민주당 한 고위 관계자는 “정당이 해산됐는데 지역구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해도 비례대표 의원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정당법상 무소속 비례대표는 없기 때문에 이석기, 김재연 통진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의원직 유지 관련 정치적 법적 공방이 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럴 경우 야권으로선 내년 지방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두된다. 진보진영의 아킬레스건인 ‘종북 낙인찍기’는 단순히 통진당에만 머무르지 않고 야권 전체로 번질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 중진급 의원들 줄줄이 소환 ‘전전긍긍’
통진당과 이석기 파문의 최대 피해자가 민주당이고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단 민주당은 집권 세력의 ‘공안놀이’에서 빠져나갈 동력이 없다. 통진당 정당해산청구와 이석기 의원직 박탈건에 대해서 민주당의 포지셔닝이 애매모호한 게 사실이다. 적극 지원하기도,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민주당에선 박 정권이 통진당을 통해 민주당의 설 자리를 없애는 것 역시 이번 정당해산청구의 노림수였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 바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야권 인사를 겨냥한 ‘사정 정국’이다. 좌파 세력이라는 이념적 공격에다 도덕성까지 흠집이 날 경우 민주당은 사실상 선거는 둘째치고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검찰이 야권 인사를 겨냥한 수사로는 지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있다. 이미 검찰은 한 차례 문 의원에 대한 사초 실종 관련 조사를 마쳤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사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재조사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역시 ‘명예훼손교사죄’로 형사고소 당해 검찰조사를 받을 처지에 몰렸다.
여기에 한명숙 의원 역시 검찰과 전쟁 중이다. 참여정부 당시 총리를 지낸 한 의원은 2007년 9억 원 상당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지난 9월 2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받아 대법원 최종심만 남겨두고 있다. 문 의원이 사초 폐기 의혹에 직접 연루됐거나 한 의원이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역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대권 주자인 문 의원 그리고 총리에, 서울시장 후보까지 나왔던 두 인사의 재판 결과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이 1000억 원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철거왕’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에게서 금품수수를 한 혐의로 긴급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정치인 수사는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미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 L 의원이 최종 타깃이라는 말이 서초동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김 의장이 ‘L 의원의 정치자금을 대는 돈줄이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민주당 고위 당직자인 J 의원도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소문은 한 달 전부터 흘러나왔다. J 의원의 전 지역 비서관이 노량진 개발 사업으로 긴급 구속되고 현직 보좌관마저 연루 의혹을 받아 재판을 받으면서 검찰의 타깃이 되고 있다. J 의원 측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 수사가 J 의원으로 향할 경우 고위 당직자에다 중진 의원인 탓에 당 도덕성에 적잖은 타격을 줄 공산이 높다.
아울러 민주당 또 다른 중진 의원인 Y 의원의 경우 ‘제2의 황우석’으로 불리는 라정찬 알앤엘 바이오 회장이 구속되면서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9월 현직 보건복지위원인 새누리당 의원의 비서관이 긴급 체포되면서 정치권이 주목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6월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라 회장 사건이 정치권 로비 의혹사건으로 수사가 확대될지가 관심사다. 이럴 경우 새누리당 S 전 의원, J 전 의원과 함께 대정치권 로비 창구로 민주당 현직 Y 의원이 지목되고 있다. 이미 민주당 김종률 전 의원이 라 회장과 연루돼 한강에 투신 자살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현재 검찰은 정치인 수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칼날이 정치권으로 향할 경우 민주당으로선 도덕성을 회복하기가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안정국 최종 타깃 박원순 서울시장?
검찰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박원순 서울시장이 될 공산이 높다. 이미 보수 진영에서는 시민운동가였던 박 시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찬성’, ‘무상보육 찬성’, ‘민주노총 서울본부 15억 원 사업비 지원’ 등을 두고 ‘색깔론’을 덧씌우고 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땅한 대항마가 없는 집권 여당으로선 박 시장마저 ‘종북좌파’로 몰아세워 선거에 승리하겠다는 복안이다. 최근에는 이석기 사태에 통진당 정당해산명령과 함께 ‘박원순 사단(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가게, 참여연대) 중 일부 회원이 이석기 사건의 핵심인 RO(혁명조직) 내란음모 사건에 가담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민주당 한 고위 관계자는 공안정국과 사정정국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여권의 전략에 대해 “신빙성이 있는 지적이다”며 “과거 유신 정권 때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엇보다 정치가 서로 타협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오로지 보복정치만 판치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