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이윤재 회장 과오 오너리스크 “이를 어쩌나”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생활용품 기업 피죤(대표이사 이주연)이 아직도 이윤재 회장으로 인한 오너리스크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보인다. 조원익 피죤 사장이 지난달 취임 9개월 만에 물러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피죤 사장 수난사 역시 여지없이 이어지게 됐다. 문제는 앞서 이 회장이 청부 폭행, 비자금 조성, 횡령과 배임 등으로 숱한 비난을 받아왔던 것과 맞물려 조 사장의 퇴임에 대한 해석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여전히 이 회장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소송 중이던 이은욱 전 사장을 청부 폭행해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력은 “이번에도 이 회장이 조 사장을 막무가내 식으로 내친 것 아니냐”는 설을 나돌게 한 근거로 자리 잡고 있다. 피죤을 둘러싸고 있는 오해와 진실에 대해 [일요서울]이 자세히 들여다봤다.
경영인들의 무덤이라니…2007년 이후 영입 CEO들, 줄줄이 퇴진
회사 과거 잘못 털고 재기 좀 해보려는데…억울하지만 말도 못해
조 사장이 지난 1월 피죤에 합류한 직후만 해도 회사 측은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오르는 추세라며 업계 1위 탈환의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2010년까지 50%에 육박했던 시장점유율이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반 토막이 났던 때라 피죤이 조 사장에게 거는 기대감은 매우 컸다.
또 조 사장이 2009년 만년 적자에 시달리던 구두업체 에스콰이어 대표로 취임한 뒤 흑자 전환에 성공했던 점과 2011년부터 피죤을 내려앉히고 섬유유연제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샤프란의 생산·판매 업체 LG생활건강에서 26년 동안 전문 마케터로 일했던 경력은 피죤의 앞날을 밝히는 데 일조했다.
그 때문에 피죤은 이 회장의 장녀 이주연 부회장을 필두로 조 사장이 영업과 마케팅에 주력하면 피죤의 재기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피죤은 9월 24일 올해 1월 취임했던 조 사장이 지난달 말 사표를 냈다고 갑작스레 밝혔다. 발표 당시 후임 사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고, 퇴임 이유는 건강 문제라는 것이 피죤의 공식 발표였다. 하지만 결국 조 사장의 퇴임으로 화제가 된 것은 피죤에서 2007년 이후 외부 영입한 4명의 전문경영인 사장들의 조기 퇴진 행렬이었다.
지난 5년간 피죤 사장들의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그나마 조 사장이 9개월로 최장 기간 사장을 지냈다. 김준영 전 사장(2007년 8월~2008년 3월)은 7개월, 김동욱 전 사장(2008년 6~8월)은 2개월, 유창하 전 사장(2010년 2~5월) 역시 3개월만 사장 자리에 머물렀다. 이윤재 회장의 폭행과 배임 등 피죤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됐던 인물인 이은욱 전 사장은 4개월 만에 떠났다. 나머지 기간은 공석으로 비워져 있었다.
이처럼 조 사장의 갑작스런 퇴임은 사실 1월 취임 당시부터 예상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 사장은 피죤 사장 선임 사실을 석 달 넘게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회사 직원조차 취임 사실을 쉬쉬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일부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에는 아직도 조 사장의 소속이 에스콰이어로 돼 있는 곳도 있을 정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경쟁사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회사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우려했다”는 해석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당시 피죤은 이 회장의 청부폭행, 배임, 횡령 등 각종 스캔들로 회사 이미지가 땅에 떨어져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일각에선 “이 회장이 아직도 전근대적 색채를 띠는 본인 위주의 경영 방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사장들의 잦은 퇴임은 이 회장과의 마찰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흘렀다.
이 회장 검은 그림자 여전히 발목 잡아
더욱이 이 회장의 과거는 이와 같은 소문들에 더할 나위 없는 힘을 실어주고 있어 피죤으로서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 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앞서 이 회장은 2011년 10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소송 중이던 이은욱 전 사장을 청부 폭행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회장은 광주 폭력조직 무등산파 조직원을 시켜 이 전 사장을 폭행하도록 사주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전 사장은 해직된 뒤 회사에 해고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이 회장은 이 전 사장이 소송을 제기하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사를 비판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조 사장 선임 직전이던 작년 12월에는 119억 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로 불구속 기소됐다. 횡령 및 배임의 경우엔 이 회장이 이 전 사장에 대한 청부 폭행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된 지 4개월 만의 일이라 파장은 너무나 컸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회장은 납품업체의 물품단가와 공사대금을 부풀리고, 분식 회계를 해 회사돈을 빼돌린 뒤 개인금고와 계좌에 보관하면서 주식에 투자하고 중국 현지법인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사용하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전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장은 또 2002년 1월부터 2009년 7월까지 납품업체 8곳과의 계약 단가를 부풀린 뒤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수법으로 43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피죤은 본격적인 내리막을 걸어야 했다.
다만 피죤은 이번 의혹들이 매우 억울하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피존 관계자는 이번 의혹에 대해 “조 사장은 직함이 사장이었을 뿐, 대표이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취임을 발표할 이유도, 퇴임을 알릴 의무도 없었다”며 “같은 이유로 차기 사장을 꼭 뽑아야 하는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조 사장의 퇴임과 관련해서도 “조 사장은 원래 앓고 있던 병이 있었다. 지병이 악화되면서 본인의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라며 “앞서 대표이사였던 사장들의 퇴임과 일맥상통하게 언급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고 사측의 난처함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의 경영 개입에 대해선 “이 회장은 이은욱 사장과의 마찰 당시 실형을 선고받고 경영 일선에서 아예 물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조 사장과 경영적 마찰이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난 잘못은 인정하지만 계속해서 피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것과 연결시키는 건 다소 억지”라며 “피죤은 이제야 비로소 재기를 조금 꿈꾸고 있는데 이러한 일로 날개가 꺾이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의혹과 해명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가운데 씻어내지 못한 과오로 업계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재기의 가능성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피죤이 자신들을 둘러싼 의혹을 언제쯤 말끔히 털어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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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