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눈치 보는 기업들…폭발 직전 산업계
근로자 눈치 보는 기업들…폭발 직전 산업계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11-04 10:12
  • 승인 2013.11.04 10:12
  • 호수 1018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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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강성 노조 줄줄이 출범 어용의 종말 다가오나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모진 경기 침체로 신음하는 산업계에 더 큰 격랑이 드리워진 모양새를 보인다. 재계 곳곳의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강성 노조라는 커다란 파도가 눈앞에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다. 우선 12년 동안 실리적 노사 화합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던 현대중공업이 강성 노조 행렬의 신호탄을 쐈다. 현대중공업에 이어 한국지엠,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등 다수 기업이 강성 노조 출범의 바통을 이어받았고, 그 때문에 재계는 대혼란 속에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강성 노조의 움직임을 보인 것을 두고 귀족 노조들의 떼쓰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일부에선 숨죽여 있던 노동자의 여건 신장을 위한 당연한 결과라는 목소리가 상반되는 분위기다. 이처럼 대립하는 양측의 교차점에선 어떤 의견들이 맞서고 있는지 [일요서울]이 들어봤다. 

재계 경기 침체 신음 속에서 막 오른 노사분규
현대중공업에서 신호탄…한국지엠 등 이어받아
막가파 식 파업 우려 對 노동자 권리 되찾겠다
분주한 사측 노사 담당 부서…파급은 어디까지

지난달 30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의 다수에서 강성노조 집행부가 이미 집권했거나 혹은 집권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한국지엠은 강성으로 분류되는 현장조직 전진하는 노동자회 출신의 정종환 노조위원장을 필두로 이달 새로운 노조 출범을 알렸다. 특히 한국지엠 노조는 강경한 노조의 영향으로 한국지엠의 한국 철수설이 연일 제기되는 가운데서도 “생산물량 확보를 통한 고용안정과 내년 시행예정인 주간연속 2교대를 전면에 내세우겠다”고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기아차 노조 역시 강성인 민주노동자회 소속 김종석 위원장이 선택됐다. 김 위원장은 앞선 2009년에도 20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경력자다. 기아차 노조 사상 두 번이나 집행부 수장에 오른 것은 최초이기도 하다.

또 대표적으로 노조가 온건·실리 노선을 걷던 현대중공업도 강성 성향의 후보가 새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돼 파장을 예고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강성 세력인 노사협조주의 심판 연대회의를 대표해 나왔던 정병모 후보가 위원장에 올랐다. 정 위원장이 속한 연대회의는 기존 온건 노조를 어용이라 지칭할 만큼 강성 경향이 뚜렷하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에 강성 노조가 들어선 것은 2002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라 다양한 쟁점을 낳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는 5일 시행 예정인 올해 현대차 노조위원장 선거도 강성 노조가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하다. 현재 후보 중엔 기존 집행부를 구성했던 민주현장의 김주철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과 김희환 금속연대 의장, 민주투쟁위원회의 손덕헌 전 노조 부위원장이 강성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처럼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강성 바람은 재계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한 듯보였다. 단연 초미의 관심사는 내년부터 노조의 파업이 거세져 노사관계가 경직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맞춰져 있다. 파업이 지속되면 생산 차질은 당연한 결과로, 내수와 수출 양쪽 모두가 꽉 막힐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례로 올해 현대차의 경우 파업, 특근 거부 등으로 발생한 생산 차질 손실 규모가 2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더 이상 평온한 재계는 없을까

또 지난달에는 세아제강 노조가 25년 무파업 기록을 깨기에 이르렀고, 파업은 40일 가까이 이어졌다. 해당 파업으로 세아제강은 8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봐야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노조 선거 결과만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아무래도 강성이라는 점은 파업과 연결이 돼 가늠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산업계에 좋지 않은 영향이 가지 않도록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기업 규제를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강성 노조의 등장은 기업 측에서는 부담스럽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걱정은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장기 파업 때문에 기업이 공중 분해되거나 경쟁력 하락을 고려한 기업이 해외 도피를 강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강성 기조가 산업계 전반에 물들고 있는 것일까. 노조 관계자들은 일제히 그동안 실리 우선의 집행부가 회사 측과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고 어용 수준의 행보를 이어왔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출범한 강성노조의 사업장이 밀집한 울산지역의 한 노동조합 관계자는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 노조는 민주주의 역사에 가장 성공한 노조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렇게 성공적이고 평등한 조직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업계 불황에 왜 교체가 됐겠나. 조합원들의 바뀐 선택은 곧 조합원들이 그동안 참아온 불평등을 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노총 울산지역도 성명을 내고 “조선분과뿐 아니라 회사의 입김이 강하다는 비조선분과까지 민주세력이 이기며 예측 이상의 쾌승을 거뒀다”며 “1987년 민주노조를 세우며 노동자 대투쟁의 출발이 됐던 현중노조가 2002년 어용노조로 바뀌고,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 후 금속노조(구 금속연맹)에서 제명됐던 어둠의 역사가 끝장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재계의 걱정이나 우려와는 다르게 이들은 노조가 제 기능을 잃고 회사의 노무관리부서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맞서고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귀족 노조와 노조 탄압자의 대립?
 
그리고 이들의 대립에는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귀족 노조라는 말이다. 귀족 노조란 말은 처음 생겨날 무렵엔 대기업 노조 위원장이 누리는 엄청난 특혜와 이권이 드러나면서 생겨난 신조어로서 통용됐지만 이젠 노동자가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을 때 해당 노조를 귀족 노조라고 지칭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기업과 노조 사이에선 노조의 요구 사항이 정말 귀족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만큼 이기적인가에 대한 논쟁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게다가 노조의 강성 바람이 불자 이는 더욱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구도로 전개되는 눈치다.  

우선 강성 노조들을 귀족으로 표현하는 이들은 강성 노조에 대해 “일단 파업부터 시작하고 사측과 협상을 하고 난 뒤 각종 실리를 챙긴다”고 평가한다. 강성 노조는 파업을 벌이고 반복하는 형태로 높은 임금과 각종 복지혜택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에 재계에선 “노조는 떼쓰고 드러누우면 다 되는 줄 안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그러나 노조 측에선 강성이라는 단어 자체도 부정하는 분위기다. 강성 노조라는 말 자체가 파업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노조라는 인식을 퍼뜨리기 위한 수작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귀족 노조라는 말 자체부터 기업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한 노조 관계자는 “언론도 기업도 노조가 조금만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 강성 노조라고 매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 근로자의 이기심에서 귀족 노조라는 말이 태어났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기업의 잣대에 속아 높은 연봉을 받는 근로자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노력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여타 사업장의 근로자들이 귀족 노조라고 불리는 이들과 함께 분개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일부 회사에서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노사분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지엠에서 현대자동차그룹 출신 노무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노조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는 한국지엠이 강성 노조로 출범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현재 한국지엠 노조는 노사 담당자로 영입된 명형식 신임 전무가 노조 파괴 전문가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노조는 지난달 21일부터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사측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강성의 노조 바람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각 기업들은 어떤 식으로 노조의 강성화에 따른 경영 차질을 대비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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