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전 대리점주, 분신자살 현장 가 보니…
태광산업 전 대리점주, 분신자살 현장 가 보니…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3-11-04 09:42
  • 승인 2013.11.04 09:42
  • 호수 1018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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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걸린 소송 중 파국 30년 거래의 정 날아가

▲ 홍모 씨가 분신자살한 태광산업 주차장에 사고차량으로 추정되는 차량 주변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다.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한 대기업 주차장에서 지난달 27일 70대 남성이 분신자살을 시도해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기업은 [일요서울] 취재 결과 태광산업으로 확인됐고, 태광 측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찾아간 현장 역시 경찰 조사 등의 여파 때문인지 외부인의 출입을 극도로 꺼렸고 주차장 한 구석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진 채 사건 현장이 유지돼 있었다. 현재 홍모씨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났으며 30여 년간 태광과 거래를 해오던 전 대리점주로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홍씨가 태광의 비자금사건에 연루됐던 인물 중 하나라고 지목하는 등 각종 소문만 무성하다.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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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출동했던 중부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홍씨는 숨진 상태였다”며 “차량 폭발로 차량의 일부는 밖으로 튕겨 나갔고 불길이 많이 솟구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건 당시 홍씨는 아들 소유의 승용차 안에서 시너를 뿌린 뒤 불을 붙여 차량은 화재 7분 만에 전소됐다. 홍씨는 차량 밖에서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서울 중부경찰서 3팀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차량 주변에서 시너통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자살로 결론지었으나 수사가 완전히 종결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당시 발견된 유서에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을 원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자살의 이유가 태광그룹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홍씨가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했는데 오히려 형편을 더 안 좋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하다.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과 함께 이 전 회장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홍씨는 부도가 나기 전까지 30여 년간 태광산업과 거래를 해 왔다. 그런 그가 본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는 2005년 초 30여 년간 태광산업으로부터 스판덱스 등 섬유 원단을 공급받아 도매업자에게 판매해 오다 태광산업과의 거래가 끊기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고 끝내 부도를 맞았다.

이후 외상 등으로 인한 부채 처리 방식을 두고 홍씨와 회사 측은 주식대물변제합의서와 부동산 대물변제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태광산업 주식 1만여 주 등을 회사 측 명의로 이전하고, 서울 서초동과 방배동의 20억 원 상당 아파트와 평택시의 70억 원 상당 토지 소유권도 이 전 회장과 그의 어머니 이선애 전 상무의 명의로 이전했다.

홍씨의 주장에 따르면 부채 처리를 위한 명의이전으로 태광 측에 150억여 원의 이익을 줬으며 이 전 회장과 이 전 상무가 자신에게 “2012년 12월까지 50억 원을 주겠다”고 구두 약정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결국 홍씨는 지난 6월 이 두 사람을 상대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게 해준 대가로 약속한 돈을 달라”며 약정금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구두약정을 증명하기가 어려워 홍씨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가면서 분신자살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집행유예 선고 기록 존재

소송 제기 당시 태광그룹 이 전 회장은 회사돈 400억 원을 횡령하는 등 그룹 측에 900여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10억 원을 선고받고 지난해 오너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현재 이 전 상무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져 구치소에서 풀려나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사건과 홍씨가 무관하지 않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서울지역 내 대리점을 오랫동안 큰 규모로 운영해 온 홍씨가 이 전 회장과의 관계가 돈독했을 것이며, 이 전 회장이 조직적으로 물건을 대리점으로 빼돌린 뒤 홍씨가 대금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추측은 한 매체의 보도로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홍씨의 변호인이 “비자금사건의 피고인 중 한명”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이 전 회장의 횡령에 관계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사건기록이 있다고 밝혀졌다. 이로 인해 홍씨가 태광 측의 구두 약정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변호인에 따르면 홍씨는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광산업의 관계자는 “아는 바가 없다”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 소송 건에 관해서는 “고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도 “홍씨가 주장해왔던 내용과 회사 내에서 파악된 내용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홍씨가 주장한 50억 원에 대한 약정이 존재하지 않고, 회사는 오히려 그간의 외상을 포함한 채무액이 76억 원 가까이 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갚을 수 있도록 했다”며 “이후 부동산 등에 대한 가치가 상승하면서 이득을 취하게 해줬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왔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태광그룹은 오너의 부재와 횡령·배임 사건의 영향, 11년 만의 적자로 인한 위기 돌파를 위해 “이름만 빼고 다 바꿔라”며 환골탈태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던 가운데 또다시 전 회장과 관련된 구설수로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한편 유가족 측은 [일요서울]이 지난달 31일 경찰 등에 확인한 결과 특별한 수사 요청이나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홍씨가 제기한 소송은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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