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公企業).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갖거나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업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첫 번째 의무로서 공익성을 요구받고, 두 번째로 관료주의와 비능률을 회피해야 한다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막상 공기업들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공공의 목적을 잊은 채 방만경영 일로를 걷는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공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공기업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와 같은 현실에 [일요서울]은 각 공기업이 어떻게 공익을 해치고 있는지 그 천태만상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그 세 번째 대상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수많은 지적을 받은 도로교통공단(이사장 주상용·사진)이다.
지출예산 부풀려 975억 원 부당취득 의혹
승진대가 금품 수수한 직원 ‘솜방망이 처분’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도로교통공단은 도로교통안전에 관한 교육과 기술연구를 위한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경찰청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그런데 도로교통공단이 통합경영관리 컨설팅 및 시스템 사업을 구축하면서 대기업에 입찰기회를 더 주기 위해 입찰금액을 짜맞추기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박남춘 민주당 의원(안전행정위원회, 인천 남동갑)에 따르면 도로교통공단은 조직진단 및 성과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컨설팅용역(9억 원)과 통합경영관리시스템 구축 사업(28억6000만 원)을 각각 추진하는 계획을 2010년 수립한다. 이후 사업이 연기되다가 주상용 현 이사장이 취임한 2011년 4월 이후 경영기획실 주도로 기본계획이 다시 수립된다. 이 과정에서 컨설팅 용역과 관리시스템 구축사업을 통합해 발주하는 것으로 기본계획이 변경됐다.
당시 기본계획 변경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에서 “컨설팅 사업과 관리시스템 구축 사업을 다같이 잘하는 업체는 현실적으로 없다”는 외부전문가의 지적이 있었지만 소수 의견으로 수용되지 않았고 결국 통합발주하기로 최종 결정, 같은 해 11월 23일 공단은 총 사업비 37억6000만 원의 입찰공고를 냈다. 그러나 컨설팅 사업과 전산시스템 구축사업은 성격이 달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업체가 없어 두 번이나 유찰되고 말았다.
대기업 사업 주려
입찰금액 ‘짜맞추기’
40억 원 미만에 해당한 입찰금액 탓에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공단은 연례적으로 하고 있던 전산장비유지보수사업 6억2306만 원을 이 사업에 포함시켜 총 공사비 43억8306만 원의 사업으로 만들어 대기업에 입찰기회를 열어줬다.
그 결과 대기업인 S정보통신에 낙찰됐고, 이 업체는 사업 전체를 하도급을 줘 중간마진으로 6억6658만 원을 남겼다. 앉아서 5억 원 넘게 손에 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공단 측은 예산 편성 시 관행적으로 수입예산을 축소하고, 지출예산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정부지원금을 5년간 975억 원 더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공단 측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은 박 의원에 따르면 공단의 자체수입 계획에는 2008년 1450억 원, 2010년 1393억 원, 2011년 2472억 원, 2012년 274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실제 수입은 2008년 1594억 원, 2009년 1569억 원, 2010년 1431억 원, 2011년 2505억 원, 2012년 2707억 원으로 지난해를 제외하면 매년 30억 원 가까이 초과수입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지출계획에는 2008년 1450억 원, 2009년 1446억 원, 2010년 1391억 원, 2011년 2472억 원, 2012년 2740억 원으로 편성했지만 실제 지출은 2008년 1315억 원, 2009년 1261억 원, 2010년 1240억 원, 2011년 2369억 원, 2012년 2645억 원으로 매년 100억 원 가량 지출 잔액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공단 측이 실제와 다른 예산 편성으로 매년 남긴 결산잉여금 규모는 2008년 278억 원, 2009년 307억 원, 2010년 181억 원, 2011년 16억 원, 2012년 62억 원으로 5년간 974억 원에 이른다. 실제에 맞거나 근접하게 예산을 편성했다면 정부가 출연하지 않아도 됐을 예산이 불필요하게 지출된 것이다.
박 의원은 “공단 측이 최근 결산잉여금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결산잉여금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정부 지출이 발생하지 않게 공단에서는 예산 편성 시 실제와 맞게 편성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해 경영건전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사업을 주려고 입찰금액을 부풀린 의혹과 관련해서도 “중소기업은 도저히 수행할 수 없도록 전혀 다른 두 개의 사업을 억지로 붙여서 발주하고,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는 사업에 억지로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금액을 짜맞추기한 공단에 중소기업 보호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이 공단 측이 승진 대가로 1000만 원 넘게 금품을 수수해 중징계가 불가피한 직원을 ‘의원면직’할 수 있게 경징계 처분한 것은 ‘제식구 감싸기’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7억여 원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돼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직원을 경징계 처분한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는 질타다.
특히 이 사건은 인천광역시지부 지부장 A씨가 2009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직원들에게 인사 청탁을 받고 7차례에 걸쳐 모두 17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 된 후에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징계 양정 기준에 따라 파면 사유에 해당하며 최소한 중징계가 내려져야 타당한데 공단 감사실은 지난해 6월 A씨가 수수한 금품을 모두 직원에게 돌려줬다는 이유를 들어 A씨에게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다.
후속 징계 없고
오히려 대상자 승진
인사교육처에서는 A씨로부터 경징계 처분 다음날에 사직서를 제출받고 바로 의원면직 처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파면 또는 해임될 경우 재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에 이같은 ‘꼼수’를 부린 것이다. 결국 공단 측이 중징계 대상자를 경징계 처리해 의원면직하도록 한 것은 사실상 비리연루 직원을 ‘봐주기’한 것이라고 박 의원은 강조한다. 특히 경징계 처분을 내린 감사실장에 대해서 오히려 어떠한 징계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승진인사를 한 것으로 드러나 부당 인사가 자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교통공단의 직원 비위가 3년 새 6배나 증가했다”며 “비위 직원에 대한 봐주기, 부당한 인사 등으로 어떻게 조직발전이 가능할 수 있겠냐”고 도로교통공단의 자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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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