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세일즈외교를 대통령이 하겠다”고 말한 후 마련된 공식 해외 순방이다. 특히 이번 순방은 한ㆍEU 수교 50주년, 한ㆍ영 수교 130주년을 맞는만큼 재계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 때문에 이번 순방에도 많은 경제사절단이 참가했다. 실무진이 대거 투입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번에도 순방길에 함께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다. 조만간 검찰수사가 시작될 것이란 이야기부터 그룹 총수에 대한 사찰이 시작됐다는 인신공격성 마타도어(흑색선전)까지 난무하다. 일부 기업은 회장의 하마평까지 나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간 나돌았던 ‘재계사정설’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며 술렁이고 있다.
KT 누락되자 퇴진설 이어 사의 표명…하마평 돌기도
포스코·효성 등 전방위 조사…기업 위축 우려도
시장에선 정부 출범을 전후해 대대적 사정설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떠돌았다. 골목상권 침해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야기한 유통업계 등이 ‘1차 타깃’이라는 소문이 인수위시절부터 나돌았다. 실제로도 현 정권 시작과 함께 한화, CJ, SK등의 총수가 구속됐고 효성은 세무조사 5개월 만에 조석래 회장이 출국금지됐다. 롯데는 세무조사가 막바지 단계에 도달해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후문이다. 지난 정부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혀 3대 사정기관의 집중 압박이 점점 좁혀지고 있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한숨이 깊어졌다는 이야기마저 떠돌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박 대통령의 외국 순방에 함께하지 못한 기업 대상의 강도 높은 사정설이 주목받는다. 함께 못한 이유가 박 대통령의 의중이 상당수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는 만큼 해당 기업의 불이익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미 KT와 포스코, 효성 등이 불참 후 검찰수사 또는 국세청의 대대적인 탈세 혐의가 포착돼 수사를 받고 있다.
특히 KT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명단에 김홍진 G&E(글로벌&엔터프라이즈) 부문장(사장)이 포함됐지만, 이후 산업부 종용으로 최종 명단에서 제외돼 뒷말이 많다. 이석채 회장이 박 대통령의 방미 때 빠졌고, 방중 때는 포함됐지만 국빈만찬 초청장은 받지 못했다. 지난번 베트남 경제사절단에도 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검찰 주변에서 그의 이름이 자주 거론된 터라 이번 김 사장의 불참 통보가 갖는 의미는 상대적으로 크다.
벌써부터 KT의 전방위적 수사 또는 임직원의 비위사실이 속속들이 알려지고 있고, KT 본사와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과 사업적 부정이 알려지면서 해외에 있는 이 회장의 도피설 논란까지 일고 있다. 현재 이 회장은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국제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또한 당사자들의 의사나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 회장 사퇴를 전제로 후임 KT 회장 후보자 명단이 나돌고 있다. 외부 인사로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박성득, 김창곤, 김동수 전 정통부 차관,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민간기업인 출신으로는 윤종용.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꼽힌다.
KT 출신 인사로는 표현명 현 T&C 부문 사장, 이상훈 전 사장, 서정수 전 그룹전략 CFT장, 최두환 전 서비스디자인부문 사장, 김홍구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AA) 사무총장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의 오보 해명으로 일단락됐지만, 청와대가 전화를 걸어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게 KT 회장직을 제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만약 대통령 행사에 초청받았더라면 퇴진설은 수그러들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해외 동참은 정부와의 친밀도 입증
정준양 포스코 회장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방미, 6월 방중 때 경제사절단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청와대 초청 10대 그룹 총수오찬에 초청받지 못했고, 지난번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기업인 명단에도 빠진 후엔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다. 이번 유럽순방도 함께하지 못하면서 “정 회장의 거취에 변화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명단에서 빠진 것에 대해 해명이 있었고 사측이 나서서 “사퇴는 사실 무근”이라며 강력 부인했지만, 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또한 지난 정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현 정부 들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은 한미재계회의 명예회장으로 미국 재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에 끼이지 못했다.
방중 때는 포함됐지만 지난번 베트남 방문에선 또다시 누락됐고 이번 유럽 순방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불참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전방위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국세청 조사4국이 지난 5월부터 4개월간의 효성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서 대규모 탈세 혐의를 적발해 지난달 말,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과 이모 부회장, 조 회장의 개인재산 관리인인 고모 상무, ㈜효성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룹의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오너 일가가 비자금 조성 등으로 회사에 수천억 원대 손실을 입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검찰과 국세청의 이번 수사에 효성의 조석래 회장 일가는 물론이고 이 전 대통령 일가와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친이계 정치인들까지 수사 대상으로 포함될 개연성이 높은 가운데, 정·관계 로비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공산도 전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재계와 정부의 친밀도의 가늠 척도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는 함께한 자와 못한 자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추후 예정된 인도네시아 순방에도 이목이 쏠린다. 올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해외순방인 만큼 함께하지 못한 기업의 사업적 도태가 불가피하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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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