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포시대’ 혼수 때문에 웃고 우는 20·30대
‘3포시대’ 혼수 때문에 웃고 우는 20·30대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3-10-28 10:38
  • 승인 2013.10.28 10:38
  • 호수 1017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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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지난 18일 대구지법은 혼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흉기를 가지고 대구의 한 은행에 침입해 5000만 원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33세 김모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몇 해 전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혼수비를 마련하기 위해 옷가게에서 금품을 훔치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계속되는 경제위기 속에 20~30대는 일명 3포시대(취업·결혼·육아 포기 시대)에 살고 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혼수마련’때문에 절망하고 있다.

아들 직업·집 값 맞추다 보니… “결혼 안한다”
능력에 맞게 결혼식 준비, 시민예식장 인기 만점

지난 8월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온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A(29)씨는 최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평소 A씨는 결혼을 꿈꾸며 ‘집’과 ‘가구’를 준비하고 ‘결혼식’과 ‘신혼여행’만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A씨의 상견례 자리에서 예비 시부모님은 “예단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A씨와 그녀의 예비 남편 B씨는 ‘이름도 생소하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예단과 예물 등은 생략하기로 미리 결정한 상태였다. 자신들의 뜻을 전했으나 예비 시부모는 물론이고 친부모들도 “그건 안 된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부모는 체면 중시 당사자는 ‘우리가 중요’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만난 A씨는 “결혼은 성인 남녀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데 그동안 키워주신 부모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선물을 주는 것은 이해하지만 몇 천만 원가량의 현금을 준다거나 이불, 반상기, 수저 같은 것은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B씨 역시 “적은 월급으로 힘들게 모은 돈이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쓰기도 부족한데 왜 이런 것(예단·예물 등)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본인들을 위한 결혼 준비는 요즘 20~30대의 추세이다. 계속되는 경제 위기와 얇은 월급봉투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이루기 위한 그들만의 노력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A씨는 5000만 원, B씨는 7000만 원을 모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당초 계획은 1억 원을 대출받아 모아놓은 돈을 합쳐서 빌라 전세를 얻고(추가로 7000만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2000~3000만 원으로 혼수를 채우고 남은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단은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두 사람의 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두 사람은 “예단과 예물 등을 하게 되면 못해도 2000만 원이 들어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신혼집에 채울 가전제품과 신혼여행 장소가 바뀌게 될 것이다. 어째서 결혼 당사자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녀의 결혼을 앞둔 부모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김모(54·여)씨는 내년 4월 며느리를 맞이한다. 새 가족이 생긴다는 사실에 김씨 역시 아들 못지않게 들떠 있었다. 김씨는 결혼이 신랑과 신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은 집안의 문제이다. 자식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 주변에서 ‘예단을 얼마 받았네’, ‘혼수를 얼마해 왔네’라는 소리가 들린다. 결혼 소식을 알리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도 예단과 혼수 비용”이라며 “사회적 위치도 있는데… 자식 결혼으로 체면을 구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혼수갈등으로 ‘파혼족’ 늘어나

최모(31·여)씨는 지난해 10월 파혼했다. 주변에 결혼 소식을 알리고 청첩장까지 다 돌린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인은 혼수갈등이었다. 당시 최씨는 3000만 원으로 혼수를 준비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예비 시부모는 최씨에게 a4용지 한 장을 건넸다. 그 종이에는 예비 시부모가 정한 가전제품 리스트 모두 고가의 상품으로 적혀 있었다. 최씨의 예산을 벗어난 금액이었다. 예비 시부모는 부모에게 빌려서라도 맞춰줄 것을 요구했다. 집안의 ‘격’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였다. 고민하던 최씨는 ‘파혼’을 선언했다. 최씨는 “혼수를 위해 부모에게 까지 돈을 빌리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라도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결혼 준비와 관련된 게시물을 읽다 보면 혼수 갈등으로 파혼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혼수 갈등이 부모의 보상심리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또한 최근에는 전세대란이 이어지면서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고 말한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사법연수원 불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배우자가 의사, 검사와 같이 소위 성공한 사람일 경우 부모의 보상심리가 작용해 많은 돈을 요구한다”며 “그러다 보니 고소득 전문직일수록 결혼을 앞두고 혼수 갈등이 잦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에는 전세대란과 집값 폭등도 혼수 갈등의 큰 요인이다. 서울 장안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C씨는 “집을 구하기 어렵고, 전세금도 비싸다 보니 혼수 갈등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얼마 전에도 같이 집을 보러온 어머니가 예비 며느리에게 ‘집값에 비해 혼수 자금이 너무 적은 것 같다. 고민해 봐라’라는 말을 하더라. 언뜻 본 예비 며느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시작

‘결혼 혼수 때문에 파혼하는 커플이 많다고 하네요. 나중에 결혼 못할까 봐 걱정됩니다.’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댓글에는 글쓴이와 동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게요.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싫어요’, ‘평생 혼자 살아야 하나요….’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부모 도움을 받지 않고 본인들이 저축한 돈으로 시작하는 커플이 많아졌다. 혼수 갈등도 결국 부모의 도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5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한 커플은 “각자 모아놓은 돈으로 작은 집에서 월세로 시작할지언정 행복하게 살고 싶다. 부모님의 도움은 받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들은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와 같은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서로 모아놓은 돈으로 어떤 집에서 어떤 형태로 시작할 것이며 가구는 어떤 가격대의 물건으로 구입할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혼수 갈등은 물론이고 결혼을 둘러싼 어떤 갈등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리 양가 부모님께도 말씀 드린 상태다. 부모님들도 ‘너희 좋을 대로 하라’고 허락하셨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시민예식장 같은 저렴한 가격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예식장이 인기가 많다. 야무지고 똑똑한 예비 신부들은 끊임없는 인터넷 클릭과 발품으로 저렴하고 실속 있는 결혼식을 준비한다. 요즘은 비싼 돈 들이고 스튜디오에서 찍는 웨딩화보보다 데이트 스냅(캐주얼 차림에 데이트 사진)이 인기다. 독립생활을 시작하는 20대들이 늘어나면서 신혼집에 기존 사용하던 가구를 가지고 들어가는 일도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혼수 비용도 절약된다.

지난 9월 1일 제주도에서는 톱스타 이효리와 가수 이상순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가족, 친지,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치러졌다. 이 소식을 들은 예비 신부들은 “내가 꿈꾸던 결혼식”이라며 “이효리가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스기사

연예인 ‘호화 결혼식’… 최근 추세는 ‘NO협찬’

연예인들의 화려한 결혼식을 보는 사람들은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연예인 결혼식의 대다수가 협찬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이미 아는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웨딩숍 관계자는 “광고를 10번 하는 것보다 연예인이 홍보해주는 효과가 훨씬 더 크다”며 “연예인이 착용한 웨딩드레스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웨딩 협찬을 선호한다. 웨딩드레스의 경우 최대 5000만 원까지도 협찬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배우 이파니는 지난 3월 결혼식을 협찬받아 진행했다고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연예인 결혼식도 최근 추세가 ‘NO협찬’으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연예인은 9월 제주도에서 가족, 친지, 지인들만 모아놓고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린 가수 이효리가 있다. 또한 배우 이병헌, 이민정 부부도 결혼식의 의미를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직접 결혼식을 준비하기로 결정하면서 협찬을 일절 거절했다. 그보다 앞서 결혼한 배우 한혜진, 축구선수 기성용 부부도 가족들과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며 협찬을 거절했다.
웨딩플래너 A씨는 “최근 연예인들의 결혼 트렌드가 무협찬 결혼식으로 바뀌었다”며 “아무래도 의미 있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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