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소송 이기고도 표정관리 들어간 ‘농심’
국물소송 이기고도 표정관리 들어간 ‘농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3-10-28 10:00
  • 승인 2013.10.28 10:00
  • 호수 1017
  • 3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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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소한 이장우씨 “항소 여부 고민”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장도리곰탕을 운영하며 맛집으로 유명세를 탔던 이장우(58)씨가 농심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해 사건의 전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이씨와 농심은 “신라면 블랙 국물 제조 비법을 훔쳐갔다”와 “아니다”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쳐 왔다. 이 싸움은 지난 21일 재판부가 “서로 합작투자 등을 논의하고 분석한 사실은 인정되나 같은 공정방법을 썼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 농심의 승소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씨가 항소 여부를 고민하고 있어 다시 한 번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드러난 정황을 두고 ‘대기업의 전형적인 일감 빼앗기’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일요서울]은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실상을 파헤쳐 봤다.

전형적인 일감 빼앗기 횡포 의혹 시끌
조리과정 · 장비 달라 증거 불충분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홍이표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원고(장도리곰탕)와 피고(농심)의 교류 사실은 인정되나 사골분말을 제조하는 공정이 너무 달라 영업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맛이 같다고 공정도 같을 수는 없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이씨와 농심의 법정공방에 다시 한 번 이목이 집중됐다. 또 재판 과정에서 사단법인 한국음식조리인연합 상임대표 등 16명의 감정인에게 국물에 대한 맛 감정을 의뢰한 결과 12명이 유사하다고 판단해, 일각에서는 1심에서 명확히 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쉽사리 거두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이 이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연락을 취했을 때 건강상의 이유로 인터뷰는 무리가 있음을 알렸다. 이씨의 측근은 “현재 이씨는 두 차례의 뇌수술로 인해 요양이 필요한 상태다”며 “이번 결과에 대한 차후의 계획을 세우는 중이어서 섣부른 발언을 하기는 조심스러운 형편”이라고 복잡한 심경임을 짐작게 했다. 그는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이 일로 뇌경색이 올 만큼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며 항소를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1958년 곰탕집을 운영하던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다 1989년부터 독립해 나오면서 장도리곰탕을 만들어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2008년 농심 측으로부터 곰탕 맛 라면 개발을 위한 사업 제휴 를 제안받았다. 농심과의 본격적인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씨는 곰탕 국물 제공, 제조 비법과 관련된 자료를 넘겼고, 농심은 이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했지만 사업제휴와 관련된 서류상의 문건이 작성된 것은 없다. 약속과 달리 실무담당자의 급작스러운 해외 발령 등의 상황으로 차일피일 미뤄졌기 때문이다.

이후 농심은 2010년 ‘뚝배기 설렁탕’과 2011년 ‘신라면 블랙’을 잇달아 출시했다. 이씨는 농심이 제조비법을 훔쳤다는 근거로 ‘곰탕의 우골 분말가루 사용’을 지적했다. 기존 신라면의 매운 맛에 우골 분말가루를 통한 보양식 개념이 신라면 블랙 출시 동기가 됐는데, 여기에 필요한 제조 비법을 자신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 출시된 신라면 블랙은 봉지 우측 상단에 ‘우골보양식사’라 적혀 있었지만 최근의 신라면 블랙에서는 이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

이씨는 이 같은 일을 겪으며 결국 합작을 염두에 두고 투자한 설비 등에 따른 자금 부담 탓에 2009년 9월 도산했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까지 겪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며 “지금은 덤으로 얻은 인생이다”라고 표현했다.

1988년부터 기술 보유 결백 증명

하지만 재판정에서 이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맛도 비슷하고 농심 측이 이씨의 곰탕 성분을 분석하기는 했지만 조리 과정과 장비도 달라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씨는 전통 가마솥을 현대적으로 개선한 장비를 사용하지만 농심은 수입 장비를 사용하고 저온숙성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농심 측도 마찬가지로 “이씨가 스스로 제조법을 홍보해왔고 이를 이용해 라면을 만들지도 않았다”면서 “이미 1988년부터 사리곰탕을 개발해 사골 추출물의 콜라겐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고 팽팽히 맞서 왔다.

또한 “판결에서 드러난 내용 외에 더는 할 말이 없다”며 “맛은 고명 하나만으로도 다양해지기 때문에 단순히 유사하다는 것 하나로 제조방법까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이미 법적인 절차로 증명이 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감정단이 내린 맛의 유사성에 대한 의견과 이씨의 지속적인 입장 표명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세간의 의혹과 관심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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