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기존의 부산 책들과는 좀 다르다. 저자는 외부인이다. 그에게 부산은 낯설면서 매혹적이었다. 머리말에서도 “부산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박물관에서 일하면서다. 10년 전 부산박물관은 서울내기인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박물관에서 유물 구입, 전시, 조사 등을 하면서 점차 부산의 역사문화와 그 매력을 하나둘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역사문화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고의 가왕 자리에 오른 조용필이 ‘바위를 치더라도, 머리가 깨지든 바위가 깨지든 우선 들이대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부산에 부딪쳤다. 그렇게 깊숙이 개입한 외부인에 의해 부산이 그 속살을 드러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어떤 도시인들 현대사의 숨은 때가 덕지덕지 앉은 곳이 없겠냐만, 부산의 역사성은 그 얼룩이 더욱 휘황찬란하다. 베트남을 향해 떠나는 장병들의 그 불안한 마음, 일본과 가까워 왜색문화의 전진기지로서의 비판, 피란 수도로서의 흔적 등은 부산이라는 육체에 두겹 세겹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넓은 부산’의 발전을 옥죄었던 관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산은 제2의 도시’라는 별 볼일 없는 카드였다. 여기에는 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 인구, 무역의 성장 속에서 빛을 발했던 ‘경제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부산이 이처럼 ‘제2의 도시’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만족하거나 혹은 과거 회상에 연연하고 있을 때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현재 부산은 과연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가. 이미 여러 통계로 볼 때 서울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섰고, 뒤에 있던 도시들도 부산을 앞지르거나 바짝 쫓아오고 있다.
시대정신이 달라져 지금은 도시의 독자적 가치와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경제개발과 토건 시대에 유행했던 산술적 수치를 들이대며 순위를 따져본들 별 도움이 안 된다. 더욱이 벤치마킹이라는 명목으로 앞서가는 서울을 계속 따라 해봤자 별 재미를 못 보는 시대다. 따라 하는 사람은 잘해도 언제나 2위가 아니던가. 부산이 지닌 가치를 살리며 부산만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봐야 할 때다. 부산이 걸어온 길 속에서 부산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
개항 이후 부산은 한국사의 전면에서 높은 파도를 맞아온 탓에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 부산에 내재해 있는 근현대사의 기억은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당시에는 갈등과 모순, 슬픔과 고통을 안겨줬던 역사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어둡고 슬픈 역사도 우리가 간직해야 할 역사인데, 부산은 아직 이런 점에서 서툴다. 인천에서는 서민들이 살았던 과거의 달동네를 문화 콘텐츠로 삼아 달동네박물관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나서서 자기 지역의 역사 소재를 문화 콘텐츠와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그들만의 역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비단 역사 전쟁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두고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각 지방 역시 ‘자신의 역사화’라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오해는 할 필요가 없다. 부산이 역사문화 콘텐츠 ‘원조 싸움’의 전면에 나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따금 저자는 부산의 근현대 생활사와 관련된 문의를 받거나 자문 의뢰를 받으면서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대부분 부산의 역사문화 원천 소스를 발굴하는 사업을 외면한 채 이미 잘 알려진 역사문화 콘텐츠에 겉옷만 갈아입혀 무대에 등장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에서는 문화 창조를 외치면서 실제 산복도로 사람들의 삶과 생활문화에 대한 진지한 발굴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하나의 사례다.
그러하니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15년 전부터 표방했던 ‘역사문화 도시’라는 개념조차 부산에서는 낯설기만 하다. 부산의 근현대사에서 한국전쟁과 피란민들이 미친 영향만큼 큰 것은 없다. 당시 실향민들은 이제 연로해 세상을 하나둘 떠나고 있지만 이들의 역사적 기억을 기록하여 보존하는 데 예산과 인력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래전 속초시가 피란민 기록조사에 나선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진지하게 기록과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성급히 역사문화 콘텐츠를 말하려는 것은 그저 공중누각을 쌓으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 저자는 “나부터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어쭙잖게 이 책을 생각해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라고 밝히고 있다.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