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슴만튀’…인증샷도 찍는다
갑자기 ‘슴만튀’…인증샷도 찍는다
  • 서준 프리랜서
  • 입력 2013-10-21 10:56
  • 승인 2013.10.21 10:56
  • 호수 1016
  • 5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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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성폭력 놀이?

 [일요서울ㅣ서준 프리랜서] 슴만튀, 엉만튀, 보만튀 … 최근 이뤄지고 있는 기습 성추행을 일컫는 말이다. 슴만튀는 ‘가슴 만지도 튀기’, 엉만튀는 ‘엉덩이 만지고 튀기’, 보만튀는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XX 만지고 튀기’의 줄인 말이다. 길을 가던 여성에게 기습적으로 다가가 2~3초간의 짧은 시간 동안 성추행을 한 뒤 도망가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한 여성들은 너무도 기습적인 성폭력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않아 망연자실한 경우가 많다. 특히 대부분 이런 일들은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상대로 발생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 거기다가 대부분 집 인근의 동네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소문이 날까봐 신고조차 꺼리게 된다. 과연 이러한 기습 성폭력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일부 잘못된 성관념을 가진 청소년 및 20대 남성들이 무차별적인 기습 성폭행을 가하고 있다. 상대는 길을 가는 익명의 여성들이다. 특히 섹시한 차림이나 키가 크고 몸매가 좋은 여성들이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 남성들은 갑자기 여성에게 다가가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부분을 수차례 만지고 빠르게 도망가곤 한다. 그간 이러한 기습 성추행은 극히 일부의 변태 성욕자들이나 하는 행동이었지만, 이제는 마치 ‘작전’을 수행하는 듯한 즐거움을 느끼면서 인증샷을 찍는 등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짧은 시간에 여성을 공격하고 상대방을 패닉상태에 빠뜨리는 것을 즐기며, 무기력하게 당하는 여성을 보고 승리감을 느낀다. 이는 저항할 수 없는 약자에 대한 무차별한 폭행이자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자아 정체성이나 성적 관념이 정확하게 형성되지 않은 일부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기습 성폭행은 그저 ‘약간 심한 장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습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느끼는 수치심, 굴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전혀 반항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망연자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취재진은 실제 여성들에게 ‘기습 성폭행을 당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라는 질문을 해봤다. 그녀들은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을 했다. 한 주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습적인 공격 망연자실한 여성들

“너무 너무 무서워 소리도 못 지를 것 같다.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걸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습해서 폭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나 같으면 그냥 한동안 앉아서 망연자실할 것만 같다.”
또 다른 여성의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처음에는 정신이 없겠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범인을 잡으려고 할 것 같다. 주변에 사람들이 전혀 없으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리라도 지르면 듣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최소한 나의 위급한 상황을 알릴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실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너무 갑작스러운 경우에는 거의 저항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적지 않은 교통사고 사망자, 혹은 부상자들이 차가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는 것을 알면서도 꼼짝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몸을 돌려서 옆으로 풀썩 쓰러지기만 해도 사고는 예방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습 성폭행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니 여성이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이미 범인은 수백여 미터나 도망친 후라고 할 수 있다. 기습 성폭행이 쉽게 검거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너무 당황하고, 남성은 너무 빨리 도망치기 때문이다.

여성의 집 앞에서 성폭력 가하는 경우 많아

특히 이들 남성들은 여성의 집 앞에서 성추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행동인 것 같지만, 치밀한 전략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이 자신의 집 앞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것은 남성이 자신의 집을 안다는 것이고, 나중에 혹시라도 신고를 하게 되면 보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성들이 집 앞에서 성추행을 하는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집 근처의 경찰서에 신고를 할 경우에는 소문이 날 가능성이 있고 이를 두려워한 여성이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다른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솔직히 나 같아도 신고는 못할 것 같다. 사실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빼앗긴 것도 아니고 내 몸에 상처가 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 당시에는 화가 나겠지만 나중에는 ‘차라리 그 정도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공연히 경찰서에 신고를 해서 소문이 날까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연달아 한번 폭력을 가했던 여성을 또다시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일단 여성 스스로가 한번 당했기 때문에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적극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이 높고, 그때는 정신을 잃기 보다는 오히려 분노를 하면서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계속해서 상대를 바꿔가며 기습 성폭행을 저지른다고 한다.
남성들 역시 여성들의 신고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한 여성이 이야기했듯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화도 나겠지만, 자신에게 아주 큰 피해가 없기 때문에 그냥 우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따라서 남성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예견하고 마음껏 범죄를 저지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기습 성폭행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떤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여성의 대상화’라고 말한다. 여성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추행의 대상,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타인이 느끼는 고통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 자체를 상실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습 성폭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심리학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릴 때 높은 곳에서 병아리를 떨어뜨려 죽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때야 아직 정서 자체가 발달하지 않아서 병아리의 고통을 모르는 경우다. 하지만 성인이 거의 다되는 청소년이나 20대가 넘어서도 그러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 사이코 패스 등이 바로 이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습적인 성폭행은 일반적인 성폭행보다 순간적인 충격력은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를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으로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습 성폭행을 예방하거나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실 이는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범행을 하다보면 추적을 해서 쉽게 검거할 수 있겠지만, 한두 번의 범행만으로는 신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예비 범죄자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달라지지 않으면 기습 성폭행을 예방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준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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