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기관 본격수사 임박 어느 기업이 ‘살생부’ 올랐나
사정기관 본격수사 임박 어느 기업이 ‘살생부’ 올랐나
  • 오병호 프리랜서
  • 입력 2013-10-21 10:26
  • 승인 2013.10.21 10:26
  • 호수 1016
  • 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기업 수장 교체 앞두고 비리 의혹 난무

[일요서울ㅣ오병호 프리랜서]  공기업에 대한 국정감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수장 교체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최근 수장이 교체되거나 사퇴한 공기업이 많아 공기업 대상의 국감은 시작 전부터 이미 김이 빠진 모습이다. 당연히 국감에서 공기업에 여러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공기업 사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동안 각종 비리 의혹이 나돈 공기업 수장들을 검찰 등 사정기관이 나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최근 수장교체가 지지부진한 일부 공기업의 각종 비리 의혹이 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사정기관이 특정 공기업을 곧 본격 수사할 계획이라는 구체적인 말도 나돌고 있다. 대체 어느 기업의 수장이 사정기관 ‘살생부’에 이름을 올렸을까.


이석채 회장, ‘험한 꼴’ 전망

공기업 사정설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건 포스코와 KT, 농협 등이다. 이들 기업의 수장들이 하나같이 이명박 정부 당시 임명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과 연관이 있어 정권 초기부터 교체설이 돌았다는 점과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특히 새정부가 출범한 직후 포스코와 KT의 수장이 교체대상 ‘1순위’라는 말이 재계에서 공공연히 회자됐다. 전 정권과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배경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장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견고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특히 이석채 KT 회장의 경우가 그렇다. 이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갖은 비리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최근 재계와 정치권 일부에선 이런 행보를 ‘최후의 발악’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동안 끈질기게 버틴 만큼 하산길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새정부로 부터 ‘괘씸죄’를 사 사정기관의 쓴맛을 본 뒤 만신창이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런 예상은 어느 정도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시민단체를 필두로 이 회장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10일 회사와 투자자들에게 수백억 원의 손해를 입히면서 KT 사옥을 헐값 매각한 혐의로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고발장에서 “이 회장은 2010~2012년 KT 사옥 39곳을 매각했다”며 “이 중 28곳의 사옥을 특정 펀드에 매각했는데 감정가의 75%만 받아 회사와 투자자들에게 최대 869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또 “KT가 매각한 사옥은 유휴 부동산이 아니다. KT는 5~15년 동안 해당 사옥에 임차료를 내고 사용해야 한다”며 “KT는 매각가는 헐값으로, 임차료는 주변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해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다”고도 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고발장 제출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채 회장의 독단과 전횡으로 각종 불법, 불공정 행위, 사회적 물의가 지속되고 있다”며 “검찰은 서둘러 수사해 이 회장을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KT는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회사 안팎에서 “이 회장의 여러 비리 의혹과 관련해 사정기관의 전방위 수사가 이번에 병행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정치권에서도 일련의 상황을 미뤄 최악의 경우 이 회장이 구속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KT는 노조의 고발이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KT 관계자는 “헐값 매각 주장은 매각금액에서 향후 지급할 임차비용까지 감안해 산정한 수치인 감정평가 대비율을 사용해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정준양 회장, 세계철강협 회장 피선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새정부 초부터 지속적으로 교체설에 이름을 올려 왔다. 정 회장은 포스코의 여러 비리 의혹뿐만 아니라 MB 정권과 관련된 여러 비리에도 연루됐다는 소문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왔다.

일각에선 검찰이 MB 정권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 회장의 비리를 들추어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정 회장이 친박계 핵심 인사들과 절친하기 때문에 화를 면할 것이라는 말도 함께 나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 회장의 행보를 보면 사정의 칼날을 피해갈 개연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6일 세계철강협회 회장에 선출돼 눈길을 끌었다. 포스코 최고경영자의 세계철강협회장 선출은 김만제, 이구택 전 회장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회장 선임으로 세계 철강산업의 주요 현안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이 강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정 회장이 잔여임기를 채울 공산이 더 커졌다. 주판알을 굴려보면 새 정부가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통부 산하 기관장 선임도 논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들이 기관장 선임에 속도를 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감을 통해 원전비리, 신사업 추진 등 에너지 분야의 중대 사안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에 수장 교체가 추진되면 국감이 원활이 추진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감을 앞두고 기관장 교체를 추진하는 배경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내부비리 등 각종 책임을 국감장으로 가져가지 않기 위해서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감 직전 돌연 사의를 표명하는 공공기관장들이 속출하자 정권 차원에서 면죄부를 조건으로 한 사전 통보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지난 6일 조계륭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 사장이 지난 추석을 전후해 사의를 표명했다.

조 사장은 1981년 한국수출입은행에 입행한 뒤 1992년 무역보험공사의 전신인 한국수출보험공사(수보) 설립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공사 출범의 토대를 닦았다. 이후 수보 무역사업본부장, 무역보험공사 부사장 등을 지내며 2011년 내부 출신 인물로 사장직에 올랐다.

앞서 주강수 가스공사 사장과 정승일 지역난방공사 사장, 안승규 한국전력기술 사장, 허증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강승철 석유관리원 이사장 등 MB맨으로 분류되는 에너지 공기업 사장들은 모두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들은 당시 대통령의 측근들로 에너지 공기업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현 정부 들어 무리한 해외 사업과 방만한 투자집행 등 온갖 경영평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관치 인사’라는 여론의 비판이 더해져 물갈이 대상 1호로 거론됐다.

한편 검찰 등 사정기관은 공기업 비리 첩보 수집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 관련 첩보 수집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의 비리를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9월 30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36만 명에 이르는 안행부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관련 공기업 임직원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저지른 비리를 익명으로 신고 받는다고 밝혔다.

안행부는 중앙부처 공무원 비리가 접수되면 해당 부처 등에 통보해 처리토록 할 계획이다. 비리 신고는 민간인은 물론 공무원 신분으로도 가능하다. 직무 수행 과정에서의 금품 수수, 공금 횡령, 부당한 업무 처리, 복무기강 해이, 과도한 경조 금품 수수 등 모든 비리가 신고 대상이다.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동안 실명신고 탓에 제한됐던 공직비리 신고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내부고발을 터부시하는 공기업 관례상 실효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여기에 사정기관이 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조사에 대한 정치적 화살을 내부고발로 돌리려는 명분 쌓기일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대부분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는 공직비리를 실명으로만 신고받아와 신분 노출에 따른 부담감과 인사 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신고 실적이 정부 전체를 통틀어 1일 1〜2건이고 안전행정부조차 연간 10건 미만으로 저조했다.

ilyo@ilyoseoul.co.kr

오병호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