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목적 사업용 대여금·투자금으로 서류 작성
법학교육원 운영하며 습득한 법지식으로 자금 횡령
지덕사는 양녕대군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만든 종중재단이다. 양녕대군을 모신 사당 이름과도 같다. 10만 여명의 종원을 거느린 종친회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재단은 1960년대 설립됐으며 설립 초기 이승만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은 양녕대군 16세손이다.
지덕사는 사당을 관리하고 있으며 상도동 일대의 땅과 지덕사 의료재단의 양녕요양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에 소속된 부동산과 사업체가 있다 보니 자산규모가 300억~5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덕사는 대대로 양녕대군의 아들 후손들이 운영해 왔다. 양녕대군은 7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째부터 순성군, 함양군, 서산군, 고정정, 장평정, 안창정, 돌산정이다. 대부분의 경우 첫째 아들이 봉사손을 맡아 가문을 이끌고 제사 등을 지내지만 양녕대군 후손들의 경우 첫째 아들인 순성군이 아닌 함양군이 봉사손을 맡고 있다.
양녕대군 후손 이모씨에 따르면 “양녕대군이 1462년 9월 7일 별세했는데 그의 첫째 아들인 순성군이 이보다 며칠 앞서 눈을 감아 순성군 후손들이 동시에 제사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차남인 함양군 측이 봉사손을 맡게 됐다”고 전했다. 또 “이후 시간이 흘러 순성군 후손들이 봉사손을 이으려 했으나 함양군 측의 반대로 지금까지 봉사손의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봉사손을 맡은 함양군 후손들은 양녕대군 파종회 회장 등 요직을 맡으며 지덕사 주인자리를 꿰찼다. 지덕사를 둘러싼 양녕대군 후손들의 권력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지덕사를 둘러싼 비리와 고소·고발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일요서울]에서도 2008년 지덕사 소유의 상도동 159-212번지 외 42필지 2만1494평 불법 매매, 정관 변경, 건설사 커넥션 등의 문제가 기사화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재단이사가 공금을 횡령하고 배임을 저질러 구속기소됐다.
종중재단 지덕사
자산규모 500억 원 이상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양호산 부장검사)는 재단 소유의 은행예금을 빼내 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로 종중재단 지덕사의 이모(55) 상임이사를 구속기소했다. 이모(70) 전 이사장도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이사는 2010년 6월 자신이 관리하던 재단 공금 8억2400만 원을 인출해 개인 사업 계약금으로 사용했다. 또 회사 빚 7억 원을 재단 돈으로 갚는 등 총 15억2400만 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이사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손을 댔다가 사업 부진으로 개인 빚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는 2006년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서 수원역 인근 용지의 개발사업을 벌이기 위해 효성캐피털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태로 73억 원을 차입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이사는 같은 해 9월 자신의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개발이 사실상 실패한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사업가 김씨에게 팔아 넘겼다. 투자 가치가 없는 땅이었지만 재단에 빚을 지고 있던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이 이사의 부동산을 떠안았다. 이 과정에서 이 이사는 김씨가 자신의 땅을 살 수 있도록 재단 돈 134억 원을 대여금 및 투자금 명목으로 지급해 재단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이사 혼자 재단 자금 150억 원 가량을 빼돌린 셈이다. 이 이사는 돈을 빼내며 고유목적 사업용 대여금 및 투자금이 나가는 것처럼 서류를 갖춰, 재단 내부에서조차 범행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이 이사는 또 2010년 3월 이 전 이사장과 공모해 재단 공금 5억3500만원을 빼돌려 개인 투자금 및 채무변제금으로 쓴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이사장을 포함한 재단 이사들의 고소로 이 이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계좌추적 과정에서 이 전 이사장의 범행도 드러나 두 사람을 모두 재판에 넘겼다.
이 이사가 재단 관계자들 모르게 재단 자금 150억 원가량을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력이 한몫했다. 이 이사는 지덕사에 근무하기 전부터 노량진에서 K법학교육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법학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습득한 법지식으로 이번 사건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한 종중 관계자는 “이 이사가 이번 사건을 저지르고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뻔뻔하게 말하더라”며 “하지만 검찰의 끈질긴 수사로 결국 처벌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지덕사 비리 척결
후손들이 나선다
양녕대군 후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단법인 지덕사 비리척결 양녕대군7자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파벌과 상관없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던 각종 비리를 척결하고 지덕사 재단을 정상화해 양녕대군의 뜻을 제대로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전했다.
또 비대위 관계자는 “이번에 구속기소된 이 이사가 재단 재직 시기였던 2012년 4월 30일을 기준으로 재단 예금통장에 있어야 할 현금 자산은 510억 원 가까이 된다. 2012년 5월 9일 당시 재단 이사장이 주거래 은행인 신한은행 본점을 찾아가 직접 재단의 현금 자산을 확인한 결과 재단 통장에는 140여억 원만 남아 있었다”며 “검찰에서 밝혀진 배임·횡령액을 제외하고도 추가로 150억∼220억 원의 입출금 명세가 밝혀져야 한다”고 전했다.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