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납품 관련 뇌물비리로 재계가 떠들썩하다. 특히 임직원들의 뒷돈 요구가 일회성이 아닌 구체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공분을 샀다. 또 앞서 대우조선해양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린 전적이 ‘괘씸죄’를 더했다. 결국 ‘갑 노릇’을 할 수도 없는 위치인 대우조선해양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황금열쇠ㆍ김연아 목걸이…구체적인 금품수수 논란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들여 살렸더니 협력업체 울려
사실 대기업이 협력업체에서 검은 돈을 받은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적발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죄질이 불량하다’는 비판에 휩싸이며 주목받았다.
일례로 대우조선해양에 재직 중인 A이사는 2층 주택을 구입하면서 협력업체인 선박부품회사에 ‘주택 구입ㆍ수리비’ 조로 현금을 요구했다. 이 회사 직원인 이모씨는 부당한 요구에도 거래처를 유지하기 위해 회삿돈 2000만 원을 A이사에게 건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A이사는 자신의 주택을 이씨 회사 기숙사로 사용할 것을 강요했다. 그것도 모자라 시중 월세의 두 배가량을 제시했다. 결국 이씨 회사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 400만 원가량을 내며 A이사의 집에 거주하게 됐다. A이사가 차곡차곡 챙긴 돈은 8300만 원에 이르렀다.
역시 이사급인 B전문위원은 또 다른 협력업체에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를 사 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이 수능을 앞두고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이 협력업체의 직원인 김모씨는 시중가 47만 원인 두 돈짜리 황금열쇠를 B전문위원에게 갖다 바쳐야 했다. 또 수능이 끝난 후에는 B전문위원 가족들의 일본 여행경비를 대고 귀국 시 공항에 마중 나가는 시종 노릇까지 감내했다.
재미를 붙인 B전문위원은 협력업체에 ‘김연아 목걸이’를 요구하기도 했다. 해당 목걸이는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착용한 45만 원 상당의 목걸이다. 이번에는 ‘아내가 TV를 보더니 이 목걸이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이유를 대고 얻어냈다.
B전문위원 집에 있는 3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운동기구도 협력업체 직원에게 뜯어낸 물품이었다. 이 운동기구는 협력업체 직원이 직접 B전문위원 집에 들고 가 설치까지 한 사연이 있었다. B전문위원이 이렇게 챙긴 돈은 총 1억700만 원이었다.
‘부적절한 甲질’ 어디까지
임원들뿐만이 아니다. 부품 구매부서의 C차장은 협력업체 11곳으로부터 11억9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아 챙겼다. C차장은 자신이 아닌 타인 명의를 이용해 7곳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화려한 ‘뒷돈테크’를 선보였다.
게다가 C차장은 4개의 차명계좌 중 하나를 가족관계부에 등재되지 않은 생모 명의로 개설해 검은 돈을 받는 치밀함을 나타냈다. 그러다 이 사실이 적발되자 자신의 친어머니를 두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발뺌해 비웃음을 샀다.
같은 구매부서의 D대리는 다소 높지 않은 직급임에도 협력업체 4곳에서 2억6000만 원을 받아 놀라움을 샀다. D대리의 집에서는 1억 원어치의 5만 원권 현금다발이 뭉텅이로 발견되기도 했는데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뒷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가 먼저 손을 내민 경우도 있었다. 한 협력업체 사장인 E대표는 지속적인 납품을 위해 대우조선해양 직원 3명에게 3억700만 원을 찔러줬다. 또 다른 협력업체의 F대표는 대우조선해양에 바친 돈을 메우기 위해 국가보조금 2억5000만 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다.
문제는 비리에 연루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대부분이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생계형 비리가 아니라 사익을 편취하는 분위기에 젖어 이를 반복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조선사 중 ‘빅3’로 꼽히는 대형사지만 아직 정부가 지분을 보유 중이다. 앞서 대우그룹이 1999년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 당시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이 분리되면서 설립된 대우조선해양은 2001년 공적자금 2조9000억 원으로 회생했다. 사실상 국민의 혈세를 들여 살린 정부 소유 기업이 ‘갑 아닌 갑 노릇’을 하며 협력업체들을 울린 셈이다.
이에 울산지검 특수부는 협력업체에서 납품 편의를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를 산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11명을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된 임직원들이 받은 액수는 모두 35억 원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주인 없는 회사가 되다 보니 내부 감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리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전 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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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