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습은 비단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룸살롱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상황에서는 우리 업소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 대부분의 룸살롱들이 ‘접대 실명제’로 인해 매출이 급감, 대책마련에 고심중이다. 논현동의 C룸살롱 관계자는 “경기 불황 탓인지 최근 언론에서 과다 소비를 고발하는 측면에서 룸살롱의 실태를 자주 보도한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언젠가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발 빠른 일부 룸살롱들은 여러 개의 사업자등록을 해놓고 다른 상호로 나눠 결제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C룸살롱 관계자의 말처럼 밤 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며 화제를 모았던 10층짜리 R룸살롱도 이 여파로 대책마련에 고심하기는 마찬가지. 이곳은 이례적으로 신문광고까지 내며 대대적으로 홍보해 유명세를 탔다.이곳의 특징은 중저가 룸이라는 점이다. 양주는 10만원 이하고, 안주도 3~4만원대로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룸살롱이 밀집되어 있는 선릉역 주변의 군소 룸살롱의 업주들은 “그간 룸살롱 간의 과다 경쟁으로 가격도 내려갈 만큼 내려갔고 서비스 아이템도 거의 고갈상태”라며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룸살롱업계의 타격이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업소 관계자는 “룸살롱 접대 못지않은 것이 골프접대인데, 최근 부쩍 늘기 시작한 골프접대는 보통 4명 이상 어울리기 마련”이라며 때문에 “골프에서 50만원 이하로 결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면 술 접대는 1차와 2차가 별도의 접대로 인정돼 상대적으로 영수증 처리가 용이한 룸살롱 접대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강남불패라 불리는 소위 ‘10% 룸살롱’만이 최근 장기화된 경기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자랑하며 이번에도 역시 느긋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접대보다는 즐기러 오는 최고의 VIP들이 주고객들이기 때문에 실명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동 룸살롱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서준혁(36·가명)씨는 “손님들 중에는 현금계산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부담을 가질만한 사람이 없어 매출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룸살롱에선 살아남기 위해 아가씨 스카우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속칭 ‘에이스’라 불리는 A급 아가씨들 단속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고급 룸살롱으로 자부했던 강남의 일부 룸살롱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보다 과감한 대책들을 강구 중이다. 그 동안 지향했던 고급화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중저가대의 손님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것. 과감한 변신을 추진하고 있는 업소도 있다. 강남의 J룸살롱은 그동안 고수했던 고급화를 버리고 중저가 손님들의 수준에 맞춰 기존의 서비스에 북창동 스타일을 접목, 보다 화끈하고 질펀하게 바꾸는가 하면 물 관리 차원에서 집단 성형수술을 하기도 해 화제를 낳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볼멘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강남에서 고급 룸살롱을 운영하다 얼마 전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D룸살롱의 사장 황정만(55·가명)씨는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영업한다”며 “ ‘접대 실명제’는 관계 당국이 현접대 실태를 한번에 뿌리뽑기 위해 기업과 업계의 현실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또 “현재 A급 아가씨 한명을 데려오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게는 수천 만원에서 많게는 억대를 넘어간다”며 ‘50만원 이상 접대 실명제’의 비현실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모 기업의 경제 전문가는 “이번 국세청의 조치는 거대한 국내 주류시장에 소비 위축을 가져오게 되고 이는 바로 내수위축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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