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에머슨의 눈을 통해 바라본 소로의 ‘느린 삶’
소년 에머슨의 눈을 통해 바라본 소로의 ‘느린 삶’
  • 인터넷팀 기자
  • 입력 2013-10-14 11:15
  • 승인 2013.10.14 11:15
  • 호수 1015
  • 5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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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

 

▲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

이 책은 소로 곁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이 훗날 성년이 되어 기록한 ‘소로 회상’이다. 당시 소로의 후원자로서 길고도 끈끈한 25년 우정을 나눈, 아버지 랠프 월도 에머슨에 이어 2대째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이들의 이야기는 책이 쓰인 1917년 이후 처음으로 완역되어 공개됐다. 소로 특유의, 깨달음으로 빚은 언어들이 시와 산문으로 곳곳에 인용되었고, 거기에 역자의 친절하고 상세한 주석이 덧붙여졌다. 유소년 시절, 에머슨의 정신세계에 방향을 잡아준 소로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압축본으로서 이 책은 새롭게 주목받아야 한다. 에머슨은 소로와의 만남을 통해 지식을 섭취하고 인생의 정수를 배웠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실천으로 보여준 소로는, 너무 많은 것을 탐해 불행해지는 우리 삶에 깊은 경종을 울린다. 살아가면서 다시금 진정한 삶의 가치를 되짚고 싶다면 에머슨의 시선을 따라 이 가을, 소로의 삶과 철학을 만나는 ‘지적 여행’을 경험해보는 것이 어떨까.


소로는 누구인가. 그는 게을렀는가. 구두쇠에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는가.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는가. 자연주의자로 알려진 것과 달리 자급자족에 소홀했는가.
이 책은 소로를 둘러싼 오해와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그의 진짜 모습을 다루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에머슨은 이를 위해 소로와 한 마을에 살며 자주 강변산책을 즐겼던 절친한 이웃들과 노동자, 초절주의 클럽에서 활동했던 문필가들, 노예해방운동에 함께 앞장섰던 목사들, 소로에게 실제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 개중에는 소로에게 직접 체벌을 당한 학생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을 직접 만났다.
이들은 문인들이 결코 찾으려 하지 않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머릿속에 각자 다른 기억의 날줄과 씨줄로 엮인 소로의 모습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은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는 우리에게 숲 속에서의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숲은 소란한 자와 부주의한 자에게는 어떠한 보물과 지혜도 나눠주지 않는 법임을. 인간은 뱀이 흉측하다고 죽여서도 안 되며 놀라게 했다고 복수해도 아니 됨을, 아무리 열심히 새알을 모으는 사람일지라도 대부분의 알을 어미새에게 남겨야 하며, 둥지를 보러 너무 자주 가서도 안 된다는 이치를 알려주었다.”(본문 중) “그는 위선과 가식만 없다면 어떤 종류의, 어떤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본문 중) 등 책 곳곳에 구체적인 증언으로, 인용으로, 일상 속 단면으로 되살아난 소로는 지칠 줄 모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나무와 꽃, 샘의 보호자였으며 때로는 날카롭고 냉철했으며 위트가 넘쳤다. 혼자 조용히 사색을 즐기며 매 순간 순간을 깊이 바라보고 사유하는 생의 찬미자이기도 했다.
소로의 숨은 진심, 실제 성격, 취미와 습관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에머슨의 회상을 따라 이 작은 책 한 권에 오롯이 되살아난다.
속도와 경쟁, 물질적 풍요가 더 이상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걸 눈치 챈 순간 사람들은 당혹스럽다. 그토록 시간과 속도에 쫓기며 생의 즐거움을 반납한 채 살아왔지만, 진정한 행복은 늘 요원하기만 하다. 소로는 이런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는 인생을 자기 의도대로 살면서 삶을 깊게 응시하기를 원했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더 이상 집의 노예로, 재산의 노예로, 일의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이것이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에서 기거한 이유다. 그는 ‘의미 있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본질’이며, 이에 가까워지려면 삶을 간소화하고 물질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월든』에서의 고백처럼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제 삶에 완벽하게 투영해냈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때로 고립을 자초했고, 세상과 부딪혔으며, 글을 썼다. 이것이 21세기에 와서 그의 책들이 더 주목을 받으며 널리 사랑받는 이유다.
느리더라도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에머슨이 전하는 소로의 생애는 삶을 다시 재정비하고 본질을 되짚는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 지음
| 서강목 옮김 | 책읽는오두막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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