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만화에 대한 인식 변화 이제는 필요해”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집에서 만화가가 되는 걸 엄청 반대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만화가가 엄청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상 앞에 혈서로 ‘만화가가 될 거야’라고 써놓기도 했어요. 주변에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만화가의 길을 택했다는 작가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정말 만화가 좋아서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거예요.”

김순생 작가는 시대에로티시즘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그는 만화가 유해매체로 지정돼 규제와 억압을 받는 시대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만화가에 대한 낮은 처우와 한국 만화의 수요가 줄면서 하나 둘씩 만화계를 떠날 때도 그는 꿋꿋하게 만화가로 외길을 걸어왔다.
그의 주 활동 장르는 ‘성인만화’다. 하지만 김순생 작가는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 공모전에 당선된 실력파다. 당시 함께 당선된 동기가 허영만 작가이라고 하니 그의 작품을 보지 못했어도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주변에서 여체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인지 점점 잘하는 쪽에 주력하게 되더라고요.”
김 작가는 1980년대 한 만화잡지에 ‘코믹펀치’라는 작품을 연재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코믹펀치는 성 풍속도 안에서 일어나는 세태풍자를 담은 만화다. 이 만화가 인기를 끌자 곧 김 작가는 단행본 청탁을 받게 됐다. 신인작가가 곧바로 단행본을 낸다는 건 당시만 해도 엄청난 기회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김 작가의 대표작인 ‘어우동’이다. 어우동의 인기가 많아지자 애니매이션 혹은 영화로 제작하자는 제의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작사의 부도로 제작은 무산됐다.
“만화는 얼마나 재밌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재미가 있으면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전부 제작되잖아요. 만화가 독자들의 입맛을 잘 맞춰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이후 김 작가는 ‘역풍’, ‘서울의 악녀들’ 등을 연재했다. 하지만 반응이 뜨거워질 무렵엔 항상 항의와 제지를 받아 연재를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김 작가는 김순생이라는 필명 외에도 전천후, 한마음 등의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필명에 따라 그림체를 달리하는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 활동이 가능했다.
“제가 지금까지 현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다양한 이름 때문일 거예요. 아마 저보다 필명을 많이 가진 작가도 없을 거예요.”

만화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김 작가는 만화가 문화의 한 장르로 인정받는 현재에 감사하다고 했다. 만화가 무조건 불온도서 취급을 당해 어린이날마다 만화책이 불태워지는 시대적 역경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김 작가는 성인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지기를 바랐다.
“성인만화를 무조건 사회악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덕의식에 대한 선만 넘지 않으면 사회악으로 불릴 만한 장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독자들도 그런 구분은 할 수 있고요. 성인만화도 문화매개체인 만큼 작가들을 너무 압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순생 작가의 대표작 ‘어우동’은 다음호(1016호)부터 본지에서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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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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